[서녕의인권이야기] 나는 활동가가 되고 싶다

서녕
print
지난해부터 이중 멤버쉽을 가지게 되었다. 하나는 인권운동사랑방의 돋움활동가, 하나는 인권재단 사람의 활동가. 인권활동가로서 내 한 몸 불살라 보리라는 각오는 아니었다. 재단에서 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을 찾기 힘들 것 같아서 그랬다. 항상 긴장되는 돈 관리를 비롯해 세무신고, 관공서 업무, 각종 전화업무, 자동출금(CMS) 관리 등은 활동가로서 맡게 되는 업무라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단체나, 재단 만큼은 아니지만 이러한 업무가 있고 돌아가면서 나누어 맡고 있음도 알게 되었다. 또 “재정업무 말고 다른 업무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란 말에 나도 다른 활동을 할 수 있고 조금 지나면 활동가라는 정체성을 갖게 될 것이라 기대를 했다. 인권서적 만드는 일도 배울 수 있을 것이고, 잡지 만드는 일도 배워볼 수 있겠지 했다. 옆에서 책을 만들고, 뭔가 일을 기획하고 열심히 일하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 참 많이 부럽다. 말은 또 얼마나 잘 하는가. 재단 상근을 결심하면서 많이 보고 배워야겠다는 포부가 조금 있었다. 그랬다.


재단에서 인권단체에게 가장 큰 도움을 제공하는 자동출금(CMS) 대행. 나의 업무다. 단체의 재정 안정화에 도움이 되는 일이지만 단 한번 보람을 느껴본 적이 없다. 혹시 돈을 더 이체하지는 않을까, 덜 이체하지는 않을까 매번 긴장이다. 세무신고 철이 되면 한달 전부터 메일을 보내기 시작해 마감 전 두세 번은 메일을 보내지만 기간을 지켜 보내주는 단체는 50개 중 몇 개 안된다. 세무신고 하기 직전까지 안 보내주는 단체들에게는 성난 메일을 보낸다. 끝까지 안 보내주는 단체들은 전화를 하는데 그때 보내주는 단체도 있고 나보고 해달라는 단체도 있다. 이렇게 50개 인권단체 활동가들과 나는 얼굴도 모르고 메일만 잔뜩 주고 가끔 받는 사이, 불편한 전화통화를 하는 사이가 된다. “선생님~”하는 말은 정말 들을 때 마다 불편하다. 내가 나이가 적음을 알아서 그런지 ‘선영씨’라고 바꿔 말할 때 역시 불편하다.

그나마 요즘은 자동출금(CMS) 지부를 몇 개 늘리게 되었는데, 단체들이 자동출금 서비스를 이용하게 돼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조금은 감사하다. 그러면서 살짝 두렵기도 하다. 성난 메일을 보낼 정도로 독촉해야하는 단체가 더 늘까봐서…….

업무 회전이 될까

인권센터 마련을 위해 재단은 아주 바쁘다. 더불어 나도 재정 투명성을 위해 회계프로그램을 도입하라는 명을 받고 지금 공부중이다. 이뿐인가. 주말마다 홈페이지 제작 프로그램도 배운다. 하면서 앞으로 업무를 나누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지금껏 업무 회전이 없었던 것도 그렇고, 점점 서로의 업무가 복잡해지고 일의 양이 늘어날 텐데 더 더욱 힘들어 질 것 같았다. 행사를 앞두고 다들 행사에 집중하고 회의를 하는 중 내가 대뜸 물었다.
“업무 회전이 될까요?”
“올해는 힘들지. 또 업무가 전문화 되고. 사람이 더 들어오면 모를까.”

업무가 전문화된다는 건 내가 다른 사람의 업무를 할 수 없다는 뜻인 것 같고, 사람이 부족하다란 말은 결국은 새 사람을 고용해 나의 업무를 나누겠다는 뜻 같아 좀 못마땅했다. 나는 다른 업무를 배울 여건, 나눌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달라는 얘기였는데 내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는지 너무나 절망적인 답을 받아서 우울하다.

매일 아침 10시까지 출근해서 아르바이트가 있을 땐 6시까지, 없으면 좀 더 일을 한다. 그 사이 재단 메일은 몇 번이고 들락날락 하지만 정작 내 메일은 들어갈 생각을 못한다. 주간지 요금은 내가 챙겨 내는데 당최 볼 짬이 안 난다. 출퇴근길에 재단에서 만드는 잡지만 간신히 본다. 아무튼 내가 원했던 건 완전한 업무 회전은 아니더라도 서로의 업무를 나누어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건데 전혀 안 된다. 재단은 단체보다 그나마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다만 행정업무 등이 많아서 활동가로서 재미없는 업무가 많다. 이런 업무가 귀찮고 성가시지만 전문성까지 운운할 만큼 어려운 업무는 아니다. 문제는 재단에서는 이런 업무가 모두 나에게 집중되어 있다.

얼마 전 다른 단체의 신입활동가 소식을 들었다. 그 단체는 신입활동가에게 특정 활동만 맡기지 않고 모든 활동에 관여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준비기간을 거친 후 비로소 자신의 영역을 맡는 것이었다. 나도 그런 기회를 가져보고 싶다. 재단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려면 활동가의 정체성이 꼭 필요한데 나는 그 정체성이 아직 없다.
덧붙이는 글
서녕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244 호 [기사입력] 2011년 03월 29일 16:29:17
뒤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