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당신의 거리] 그들은 충분한 거리를 원하지만

셋째날 핵_평화_거리

임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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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주> 5월 19일부터 22일까지 나흘 동안 15회 인권영화제가 열린다. <인권오름>은 15회 인권영화제가 내건 ‘나와 당신의 거리’라는 슬로건으로 각 상영일의 주제와 연관된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한다. 나와 당신 사이의 거리, 나와 당신이 함께 서 있는 거리, 그리고 더욱 다양한 거리들. [나와 당신의 거리]를 읽고 마음이 술렁이는 당신, 마로니에 공원에서 펼쳐질 ‘나와 당신의 거리’로 나오시라.


“이라크에도 미선이와 효순이가 있습니다.” 2003년, 단상 위 연사의 말은 확신에 차 있었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압사당한 미선이와 효순이를 위해서 촛불을 들었던 것처럼 이라크 전쟁을 막기 위해서도 함께하자고 했다. 거리를 좁히기 위한 노력이었으리라. 좁아졌을까? 처참한 전쟁 밑으로 깔려가던 이라크의 사람들에게, ‘미선’과 ‘효순’이란 이름을 붙여야만 겨우 좁아질 수 있는 거리라면, 그건 이미 좁혀질 수 없는 거리이다. 이라크 무장 세력에게 피랍되어 죽고 싶지 않다고 절규하던 김선일 씨의 목소리에 사람들은 눈물을 지으며 거리에 섰지만, 이름 모를 ‘아랍인’들의 죽음은 그저 대략의 숫자로 전해질 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늘 실패한다. 왜 병역거부를 했습니까? 병역거부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신이 왜 병역거부를 했는지를 대답하는 과정이다. 팔짱을 끼고, 병역거부의 이유를 추궁하는 질문 앞에서 더듬거리며 자기를 꺼내보여야 한다. 비루하지만, 포기할 수 없다. 그러나 난 매번 만족할만한 답을 말하지 못한다.

이라크 전쟁을 보면서 병역거부를 결심했습니다. 총을 들지 않는 것이, 군인이 되지 않는 것이 이런 추악한 전쟁을 멈추기 위한 행동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감옥까지 결심한 사람의 이유로는 성에 차지 않은 답변이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뭐 다른 것은 없습니까? 당신이 이라크에 가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난 병역거부자들은 대단한 경험을 가진 이들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당신과 내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마땅히 특이한 종교, 사상, 경험을 가지고 있어야 할 병역거부자가 한 발 다가가려고 하자 사람들은 뒤로 물러선다. 그리고 수군거린다. “그냥 군대 가기 싫어서 그랬던 거 아냐?”

욕심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군대는 가야지”라는 거대한 상식 앞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일곱 글자는 외계인의 언어이다. 그 외계의 언어를 이해해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과 나의 거리는 멀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충분한 거리를 원했을 수도 있다. 멀면 멀수록 좋았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구타를 당했습니다, 식구 중에 상이군인이 있습니다, 모기 한 마리 잡지 못합니다. 이런 대답에 사람들은 나와 자신들 사이의 거리가 충분함에 안도감을 느낄 것이다. 이런 예외적인 사연에 동정해주면서 감옥에 가는 건 심하다며 대체복무에 동의해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 점점 다가가면서 불편하게 하고 싶다. 단순한 욕심이 아니라, 그게 평화라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묻는다. 나와 당신의 이라크는 달랐습니까? 2003년 4월 2일 국회 앞 아스팔트에서, 파병이 결정되었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울컥 눈물을 쏟았다. 이렇게 다 죽는구나. 전쟁은 이렇게 시작되는구나. 포장할만한 명분조차 없었지만 권력자들은 정해진 절차를 밝아가며 전쟁을 시작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미사일의 소리가 내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미친 듯이 시위대를 가로막은 전경차를 흔들고 울부짖었지만 전쟁은 계속되었고,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이게 전쟁입니다. 미선이 효순이를 이라크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지금 왜 죽지 않고 살아있는지를 물어야 하는 것이 전쟁입니다. 당신이 사람 모양의 사격판에 겨누는 총이 결국 당신을 겨누게 되는 것이 전쟁입니다. 이라크 전쟁을 보고서도 군인이 될 수 있다니요.

이렇게 바짝 다가가자, 팔짱을 낀 채 질문하던 당신이 말을 시작한다. 우리가 본 이라크는 다르다고. 우리 군대의 잘못이 아니지 않느냐고. 우리 군대는 우리를 지켜주는 군대라고 말한다. 이라크 사람들에게 한국 사람의 이름과 얼굴을 붙이려고 했던 노력은 결국 이렇게 끝이 난다. 저 사람들은 우리가 아니라고. 우리가 아닌 이들에게 우리 군대가 총을 겨누는 것은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고.

이제 당신과 나, 서로가 어디쯤인지가 조금은 보인다. 거리를 확인하는 법은 이랬어야 한다. 팔짱낀 당신들에게 내 이유를 끙끙대며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라크 인들에게 한글 이름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총을 들어야 하는 이유를 말해달라고 했어야 한다. 국방의 의무가 신성하다는 판에 박힌 이야기 말고, 당신의 이유를 말해주길 부탁한다, 이라크 전쟁을 보면서도 그래도 군대는 우리를 지켜주기만 할 것이라 굳게 믿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를 말하면서, 당신도 내가 나의 이야기를 했을 때와 같은 곤란함을 겪는 것 같다. 결국 우린 다른 이라크를 본 것이 아니다. 슬픈 눈물을 간직하고 있는 누군가를 향해 방아쇠를 당겨야 하는 것, 그것이 전쟁이고 이라크이다.

평화는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내가 죽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의 사이의 팽팽한 긴장이다. 한 쪽만 있다면 평화가 아니다. 당신과 나는 이 두려움의 양쪽에 서 있다. 이 사회는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만을 강요했고, 그 두려움은 더 큰 군대, 더 센 무기를 갈구하도록 했다. 그 속에서 남을 죽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철저하게 제거 당해야만 했다. 병역거부자는 남을 죽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말한다. 이 사회가 막아버린, 그래서 존재도 언어도 부재했던 그 두려움을 이제 조금씩 자신의 언어로 꺼내놓고 있다. 소말리아 해적들을 ‘성공적’으로 죽인 것이 너무 기뻐 카메라 앞에 냉큼 선 대통령에게 모두 박수치는 사회에서 여전히 병역거부자의 언어와 자리는 희박하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말할 것이다. 왜 총을 들지 않았는지를. 그리고 물을 것이다. 당신이 본 이라크를. 물론 당신과 나의 거리가 쉽게 좁혀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같은 이라크를 봤다.

15회 인권영화제 셋째 날 (5.21. 토) 핵_평화_거리

12:00 버마 군인 Burma Soldier
애니 선드버그, 닉 던롭, 리키 스턴 | 2010 | 다큐 | 70분 | B ES KS
버마 군부로부터 도망쳐 나온 전직 군인인 묘를 인터뷰하는 영화. 내전으로 팔과 다리를 잃었을 때, 그가 하고 있는 일이 독재자에게 복종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그는 정권에 저항하기 시작한다.

13:10 두려움, 그 너머 Jigdrel: Leaving Fear Behind
돈둡왕첸 | 2008 | 다큐 | 25분 | T ES KS
중국의 지배 아래 살고 있는 티베트인들의 진실한 감정을 티베트 본토의 티베트인이 큰 위험을 무릅쓰고 기록한 특별한 필름. 이 다큐멘터리는 티베트인 20여 명의 인터뷰를 담고 있으며 베이징 올림픽을 바라보는 시각, 현재 티베트의 상황과 달라이 라마의 귀국에 대한 정서 등을 기록하고 있다.

14:00 ⓥ엄친아 만들기 Making PerfectGuy(Um-Chin-A)
김은태 | 2009 | 극 | 5분 38초 |
슈퍼히어로보다 완벽하다는 엄마친구아들 일명 엄친아.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를 엄친아로 만들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세계 최고의 청소년 자살률이라는 부끄러운 자화상이 감춰져 있다. 이래도 당신의 자녀를 엄친아로 만들려 하시겠습니까?

14:06 ⓥ가면 Mask
이하은 | 2009 | 극 | 3분 30초 | K KS TA
만약 모두가 억지로 똑같은 가면을 쓰고 살아가야 한다면? 그 가면이 절대로 벗겨지지 않는다면? 이 사회가 그리고 학교가 청소년들에게 강제로 씌운 공부라는 가면을 고발한다.

14:10 ⓥ게임 GAME
강은진 | 2009 | 극 | 2분 14초 | K KS TA
교사와 학생의 한판승부! 과연 누구의 에너지가 먼저 제로가 될 것인지 궁금할 뻔 했지만… 교사에게 매가 있는 한 이미 승부는 정해져 있다! 교육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사랑의 매 덕분에 힘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야생의 세계나 다름없는 학교의 모습을 보여준다.

14:13 ⓥ잃어버린, 잊어버린 In The Box
권해빈 | 2011 | 극 | 20분 1초 | K KS TA
공부만 하는 평범한 학생인 보라에게 정체 모를 상자가 배달된다. 학교에 상자를 가지고 가서 보니 물품명에 쓰인 꿈이란 단어. 반 아이들 모두 그 상자에 관심을 보이게 된다. 영화는 획일화된 교육현실 속에서 사라져 가는 학생들의 꿈을 재조명 해본다.

15:00 저수지의 개들-take1. 남한강 (with 윈디 시티) Reservoir Dogs-take1. South-Han River (with Windy City)
최진성 | 2010 | 뮤직다큐 | 8분 | K KS TA
“강은 강이고, 산은 산이다.” 영화는 레게 밴드 윈디 시티와 함께 4대강 공사가 한창인 남한강 현장으로 간다. 남한강 공사장 옆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아름다움을 지켜주었으며 하는 바람은 노래를 타고 강물처럼 유유히 이어지지만 거대한 굴삭기는 강도 노래도 다 끊을 태세로 난폭하게 달려든다.

15:08 ⓥ농민 being Farmer-being
박명순 | 2011 | 다큐 | 15분 | K TA
농민 노태환 씨는 다른 농민들과 함께 팔당 두물머리와 유기농을 지키기 위해 지난 2년여 동안 4대강 사업에 맞서 정부와 싸워왔다. 사업 강행으로 압박이 심해지고 농가 사정도 힘들어지면서 11농가 중 4가구는 남고 7농가는 철수하기로 결정한다. 노태환 씨는 협상과 투쟁 사이에서 고민한다.

15:23 ⓥ땅 Farmland
강세진 | 2011 | 다큐 | 17분 | K TA
장진수 씨는 영주댐 시공설비부지의 논이 강제수용 되었으나 거부하고, 자신의 논을 지키기 위해 보리 파종을 한다.

15:40 ⓥ죽지 않았다 Still Alive
김성만 | 2011 | 다큐 | 15분 | K TA
살려야 한다던 강, 그 속에는 엄청난 생명들이 정부의 삽날에 죽어가고 있었다.

15:55 ⓥ저문 강에 삽을 씻고 River Workers
김준호, 박채은 | 2011 | 다큐 | 20분 | K TA
강바닥을 파헤치고, 수도 없이 모래를 퍼다 나르는 4대강 건설노동자들의 고단한 삶과 내려앉을 자리를 찾지 못해 공중을 맴도는 겨울철새들의 풍경이 쓸쓸하고 아리다.

17:00 아들의 이름으로 In the Name of the Son
박일헌 | 2011 | 다큐 | 60분 | K KS TA
2005년 5월 30일 원폭2세 환우 김형률은 서른다섯 짧은 생을 마쳤다. 김형률의 어머니는 1945년 8월 6일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에 있었다. 원폭2세의 유전적 질병을 앓으며 원폭2세 환우에 대한 관심과 대책을 촉구하던 김형률 씨가 떠난 빈자리에서 아버지 김봉대 씨는 인권운동가로 아들과 함께 걷던 길을 걸어간다.

18:30 야만의 무기 Sweet Nuke
이강길 | 2010 | 다큐 | 102분 | K KS TA
정부의 위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유치 결정에 맞선 부안 주민들의 3년여 간의 싸움. 결국, 방폐장 유치 신청에 동의했던 위도 주민들마저 반대로 돌아서며 부안은 국책사업 유치 결정을 두고 사상 초유의 주민투표를 진행한다. 지역이기주의, 님비현상이라는 언론과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서도 그들은 왜 맞서 싸웠나. 또 다른 주민투표 경쟁을 통해 방폐장을 유치한 경주는 오늘 어떤 모습인가.

20:40 영원한 봉인 Into Eternity
마이클 매드센 | 2010 | 다큐 | 75분 | E KS
핵 폐기물 처리 문제를 다룬 영화. 핀란드에서는 22세기에 완공될 온칼로라고 불리는 핵 폐기물 처리시설을 짓고 있다. 핵에너지에 대한 광신적 믿음, 위험에 대한 경시는 핵 폐기물에서 나오는 방사선과 함께 십만 년 동안 인간에게 해를 끼칠 것이다.

원어 K한국어 E영어 S스페인어 Q퀘추아어 B버마어 T티베트어 L라다크어
자막 KS한글자막 ES영어자막
장애인 접급권 화 화면해설 더빙 한국어녹음
TA 관객과의 대화
덧붙이는 글
임재성 님은 평화연구자, 양심적 병역거부자입니다.
인권오름 제 248 호 [기사입력] 2011년 04월 26일 15: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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