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민중의 인권현장] 인신매매, 사기…언제쯤 끝날까요?

태국으로 이주한 버마 여성 난 라트웨의 편지

난 라트웨/ 번역-이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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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는 60만 명의 버마 사람들이 있는데, 대부분이 이주노동자로 살고 있다. 전쟁과 가난, 군부의 인권침해를 피해 태국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태국으로 오는 과정에서, 그리고 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살아가면서 온갖 부정의와 인권침해에 부딪히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언젠가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과 계속되는 군부독재의 절망 사이를 오가며, 소수민족과 여성의 인권을 위해 고민하는 활동가 난 와톤이, 그의 친구를 통해 버마 소수 민족 여성의 현실을 이야기해주었다.

위 사진: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난 와톤


참고로, 난 와톤은 학교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수 민족 억압 정책을 견디지 못하고 태국으로 건너와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4년간 네 번 태국 경찰에게 체포되어 버마로 송환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자유롭게 공부하고 싶어 태국으로 건너온 그녀는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꿈이다.


행운의 탈출(Lucky Escape)

제 이름은 난 라트웨입니다.

피난처를 찾기 위해, 또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 버마를 떠나 외국으로 건너온 버마 여성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드리고자 제 경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스무 살 때 처음으로 두 명의 친구, 난 캄 레이, 난 캄 킨과 함께 고향을 떠나 버마 샨 주의 킨 톤을 경유해 태국으로 건너왔습니다. 그 당시 제가 가장 어렸습니다. 우리는 고향을 떠나 키톤에 도착했습니다. 다음 목적지는 태국과 접경지역인 타칠렉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행에 필요한 신분증이나 여행증명서 등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저처럼 20세 이하의 여성들은 타칠렉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계속 여행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습니다.(버마 군부는 인신매매방지 차원에서 여성들, 특히 소수 민족 여성들에 대해 여행제한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이런 제한 조치는 오히려 브로커들의 주머니를 채워주고 있습니다) 타칠렉까지 가기 위해 필요한 1인당 3천 바트(약 7만5천 원)는 우리에게 엄청나게 큰 돈이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우리들 중 나이가 가장 많은 난 캄 레이가 먼저 타칠렉에 가서 상황을 본 뒤 우리를 데리러 오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우리는 난 캄 레이로부터 어떠한 소식도 들을 수 없었고, 집을 떠날 때 가지고 온 돈은 거의 바닥났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난 캄 레이를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어, 키 톤에서 타칠렉을 가는 오토바이 운전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는 1인당 3백 바트를 요구했습니다. 우리는 돈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타칠렉에 도착해서 돈을 주기로 했습니다.

이전에 타칠렉에 사는 한 아주머니가 저에게 일자리가 필요하면 연락을 달라고 하면서 주소를 건넨 적이 있습니다. 저는 운전사에게 그 주소를 보여주면서 그곳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타칠렉에서 그녀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운전사에게 우리의 모든 사정을 이야기하며 난감해 하고 있자, 운전사는 자기 친구네 집을 소개해 주면서 그 곳에 머물러 있으라고 했습니다.

운전사의 소개로 그 친구 집에 5일간 머물렀는데 그 친구가 우리에게 일자리를 알아봐 주겠다고 했습니다. 태국에 있는 식당에서 일을 하면 한 달에 2500바트를 벌 수 있다고 하더군요. 우리는 그 일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 친구를 따라갔는데 그 친구는 우리를 인신매매단에게 넘기고 말았습니다. 운전사 친구를 따라 간 곳에는 버마를 비롯해 몬, 샨, 파오, 카친 등에서 온 버마 소수 민족 출신 여자 아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 역시 우리처럼 속아 그곳까지 오게 되었다더군요.

우리보다 먼저 온 사람들에 의하면 우리 모두 성매매업소에 팔릴 거라고 했습니다. 저와 제 친구는 그 곳에서 도망치기로 결심하고 이른 새벽 그 집에서 빠져 나왔습니다. 우리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부엌칼을 가슴에 품고 무조건 달렸습니다. 새벽 3시 30분부터 저녁 6시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무조건 달렸습니다. 그 지역 사람들의 언어가 우리와 달랐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할 수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태국 군인들이 있는 곳까지 무조건 달렸습니다.

위 사진:태국 치앙마이에 있는 NY Forum의 활동가들. 소수 민족 출신 젊은 활동가들이 버마 또는 국경지역에서, 소수 민족 문제와 민주화 문제를 공부하기 위해 이곳에 모였다. 대부분이 불법체류자라 외부 출입이 자유롭지 않지만, 꿈과 용기를 나누며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우리를 발견한 태국 군인들이 우리에게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자, 자기네들을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너무 지치고 배가 고팠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그들을 따라갔습니다. 우선 태국 군인들이 주는 밥을 먹고 나서, 우리들의 상황을 설명하려고 했으나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태국 군인들이 나중에 버마 경찰서에서 경찰관을 한명 데리고 왔을 때 우리는 그 경찰에게 우리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요청했고, 경찰의 도움으로 타칠렉에 다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오토바이 친구 집에 가서 그 동안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인신매매범으로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사과를 하며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자기네 집에 머물러 있으라고 하더군요. 우리는 그 집에서 한 달간 머무르며 일자리를 찾아 다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방콕에서 온 아주머니가 저에게 파출부로 일하지 않겠냐고 제안했습니다. 제 친구는 피부가 까맣기 때문에 인도 사람처럼 보여 곤란하다고 하면서 저만 데리고 가겠다는 겁니다. 친구에게는 미안했지만, 그 당시 어쩔 수 없었기 때문에 저 혼자 그 아주머니를 따라나섰습니다.

1년간 방콕에서 열심히 일한 뒤, 고향을 방문하기 위해 집주인에게 그 동안의 월급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는 타칠렉에서 제 친구인 난 캄 킨에게 선불로 이미 다 지불했다는 것입니다. 눈물만 나더군요. 생각해보니, 집주인 아주머니와 타칠렉에서 방콕으로 떠날 때 그 친구가 아주머니로부터 무언가 받더니 그게 제 월급이었나 봅니다.

전 다시 집에 돌아갈 차비를 벌기 위해 1년간 열심히 일해야만 했습니다. 이런 저의 경험이 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게 슬픕니다. 브로커들에게 사기를 당해 어려움을 겪거나 인신매매를 당해 성매매업소에 끌려간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런 어려움을 감수해서라도 하루 한 끼 먹는 것조차 버거운 현실을 견딜 수 없어 버마를 떠나려고 하는 우리 민족 사람들의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태국에는 버마 이주노동자들과 버마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는 여성단체, 노동자 단체, 인권단체, 소수 민족 단체 등이 있습니다. 이런 단체들이 외국에서 정신적, 신체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며 살아가는 버마 사람들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며 희망을 주기를 소망해 봅니다.
덧붙이는 글
이 편지를 주선한 난 와톤 님은 태국 치앙마이에 있는 소수 민족 그룹 Nationalities youth forum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권오름 제 23 호 [기사입력] 2006년 09월 27일 10: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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