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록의 인권이야기] 너무 고맙고 존경스러운 사람들

정록
print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쌀쌀해지니, 생각나는 음악이 있다. 꽃다지의 ‘내가 왜?’라는 노래다. 여름 끝자락에 조계사 앞마당에서 열린 ‘노동자와 함께하는 시민초청 무차(無遮)대회’에서 들려진 노래다. 불교의 오랜 전통 중 하나였던 무차대회는 승려·속인·남녀노소·귀천의 차별 없이 평등하게 널리 일반대중에게 열린 법회였다고 한다. 그 무차대회 자리에 함께한 투쟁사업장 노동자들과 꽃다지의 노래를 들었다.

찬바람 부는 날, 거리에서 잠들 땐 너무 춥더라 인생도 시리고
도와주는 사람, 함께하는 사람은 있지만 정말 추운 건 어쩔 수 없더라

내가 왜 세상에 농락당한 채 쌩쌩 달리는 차 소릴 들으며 잠을 자는지
내가 왜 세상에 내버려진 채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됐는지

찬바람 부는 날 거리에서 잠들 땐 너무 춥더라 인생도 춥더라

- 꽃다지 ‘내가 왜?’


노래 부르기 전, 꽃다지가 말한 것처럼 참 심란한 노래다. 노래가 끝나고 대회장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투쟁 100일을 갓 넘긴 골든브릿지 노동자들부터 8년째 투쟁 중인 코오롱 노동자들, ‘도와주는 사람, 함께하는 사람’도 못 되는 나까지 침울하게 만드는 노래였다. 노숙, 천막 농성은 몸으로 버티는 투쟁이다. 그 누가 쌩쌩 달리는 차 소릴 들으면서 자고 싶겠으며,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되고 싶겠는가. 막무가내로 떼쓰지 말고 합리적으로 대화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요구를 하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누구는 노숙 농성이 대화, 소통, 인간에 대한 신뢰 등을 버린 다음 시작되는 투쟁이라고 한다.

1년 만에 다시 찾은 부산

10월 6일, 1년 만에 부산에 내려갔다. 작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뜨겁게 불타올랐던 희망버스 이후, 한진중공업 사측이 합의한 1년 내 복직과 생계비 지급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고, 어렵게 건설된 민주노조를 무너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도 한진조선소 앞에서 노동자들의 천막농성이 122일째 이어지고 있었다. 버스 1대의 조촐함, 승리한 줄 알았던 한진 상황의 답답함 등이 섞여 부산으로 가는 길은 참 멀었다.

그런데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해운대에서 몸짓패 ‘선언’의 힘찬 율동에 몸이 들썩이더니, 저녁에 한진조선소 앞에서 펼쳐진 문화제까지 너무 즐거운 자리가 이어졌다. 공연도 좋았지만, 어느 순간 한진 노동자들이 조선소 앞에서 천막을 치고 싸우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1년 만에 부산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는 뒤늦은 깨달음이 있었다고나 할까? 회사 관리자, 함께 하던 동료에게서 인간에 대한 신뢰, 믿음을 잃기도 하지만, 그런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며 시작된 천막, 노숙 농성이 오히려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전혀 다른 종류의 연대와 우정, 신뢰가 싹트는 것이다. 시청 앞 재능, 대한문, 영도 한진, 과천 코오롱에 자리 잡은 천막이 있어서 나 같은 사람이 함께할 수 있고, 연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지가 된다. 당장은 앞이 안 보이고 어렵더라도, 이렇게 버텨온 사람들, 포기하지 않고 싸워온 사람들이 있어서, 희망버스가 출발할 수 있었고, 4년 전 벌어진 쌍용차 문제가 다시 떠오를 수 있었고, 도가니 소설과 영화가 나올 수 있었다. 어떻게 해야 많은 사람들이 투쟁에 함께하고, 그래서 승리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사람들이 모일 수 있도록 벽을 허물어야 하고, 싸움의 불씨를 꺼뜨려서는 안 된다는 것, 포기하지 않고 버티고 있어야 새로운 투쟁의 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얻었다.

불심검문에 불응해 공무집행방해죄로 기소되어 1심 유죄, 2심 무죄를 받았다가 대법에서 파기 환송된 분의 사건이 있다. 파기 환송심에 대응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그분이 자기가 외롭게 싸우고 있었는데 인권단체에서 손을 잡아주셔서 너무 감사하단다. 나는 그렇게 버티고 싸우는 사람들이 눈물 나게 고맙다. 도저히 승산이 없을 것 같은 싸움이지만, 훼손당한 자기 존엄, 인권을 되찾는 길은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당당히 말하고 끝까지 싸우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그들은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있어서 우리 모두의 권리와 인권을 쟁취하는 싸움이 펼쳐진다.
덧붙이는 글
정록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318 호 [기사입력] 2012년 10월 17일 19:34:52
뒤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