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총무의 인권이야기] 1년 뒤 장수마을을 기대하며!

배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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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목수가 사무실로 쓰는 경로당 2층 한쪽 벽에는 장수마을 전경을 찍은 사진이 큼지막하게 걸려 있다. 마치 60년대 어느 달동네의 풍경처럼 한눈에 봐도 궁색하고 빈곤한 마을의 모습이다. 꼬불꼬불한 골목길하며 오랜 세월을 보여주는 벽이나 지붕을 보다보면 시대를 넘어 우리네 고단한 삶이 사진 속에 그대로 담겨 있는 듯하다. 그래도 그 골목길이 시작되는 어느 곳에는 오랜 세월 함께 한 평상이 자리 잡고 있고 그 평상 위에서 동네 어르신들이 건조한 일상의 삶을 추스르고 계신다. 그 골목길의 끝이 보이고 다시 새로운 골목길이 시작되는 곳에 또 다른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내는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다들 평범하지만 재미있는 무언가를 찾으면서 지내신다. 그런 점에서 나보다 더 재미있고 무미건조하지 않은 삶을 살아오신 것 같다.


쌀쌀한 날씨가 계속되자 할머니 쉼터를 이용하는 할머니들이 “빨리 바람막이 비닐 안쳐주면 우리 다 얼어 죽게 생겼어”하신다. 며칠 전 할머니들이 바라시던 대로 쉼터 정자에 비닐 막을 쳐드렸다. 비닐 막을 치는 내내 옆에서 감독을 하시던 할머니들은 완성된 비닐 막을 보시더니 “작년에 비해 완전 고급 아파트가 됐어”라며 흡족해 하셨다. 그러자 아랫길 정자를 이용하는 할머니들도 샘이 나셨는지 “우리도 저렇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하기 위해 사무실로 찾아오셨다. 동네에서 언덕으로 한참 올라와야 해서 길이 만만치 않은데, 대표로 한 분이 직접 오신 것이다. “가을에 비가 한 번씩 올 때마다 내복 한 벌 더 입는다”는 말이 있듯이 추운 겨울이 다가올 채비를 장수마을 어르신들은 하나둘씩 바지런히 하고 계신다.

장수마을로 이사 온지도 1년이 됐다. 처음에는 전수조사를 한다고 동네 어르신들에게 잠시 시간을 내달라고 부탁해도 썩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대하시던 분들이 이젠 ‘배총무’라고 자연스럽게 불러주신다. 마을통장으로 출마라도 할 것 같으면 바로 당선될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동네목수도 이젠 달동네 집수리 노하우가 제법 쌓여가고 있다. 요즘 하고 있는 293-7번지 집수리를 통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축대를 쌓는 기술을 알아가고 있다.

장수마을에서 동네 어르신들과 1년간 같이 살면서 나도 생각이 조금은 변한 것 같다. 삶이란 게 운동이란 게 내가 만족할 수 있는 것만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어느 순간 알았다. 다양한 삶에 관심을 갖고 관계를 맺을 때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결핍된 부분을 누군가는 들여다보고 채워가야 한다는 것을. 그게 보여주기 식이나 성과주의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말이다.

참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는 내가 지금은 장수마을에서 열심히 묵묵히 살고 있다. 쌍차나 재능 같은 수많은 비정규직 투쟁사업장에 지금 당장 달려가진 못한다고 하더라도, 장애운동의 현장이나 반빈곤운동 현장에 지금 나는 없더라도 누군가의 결핍된 곳을 내 자리에서 시간과 열정을 투여하며 채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생명평화대행진단이 서울로 들어오던 11월 3일, 함께 살자라는 외침을 같이 하고 싶어 동네목수 일을 마치고 서울시청 광장에 갔다. 무대에서 쌍차 해고자 분들, 그리고 단식 25일째를 맞는 김정우 지부장의 야윈 얼굴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드는 생각이 당장이야 이분들에게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면한 문제이긴 하지만, 차가운 자본의 시장으로 돌아가는 것 외에 어떤 대안이 있을 수 있을까?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비정규직 철폐’라는 구호와 연대 이상의 새로운 대안을 만들지 못하고 지금까지 왔다는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장수마을에서 마을경제를 활성화하고, 주민들 소득도 늘리고, 마을공동체 회복도 하고, 살맛나는 동네를 만드는 가치의 첫 시작은 그리 복잡하다고 보지 않는다. 마을주민들이 생계를 위한 노동 외에 다른 누군가와 같이하는 노동을 통해 마을을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옥상이나 마당에 마을 주민들 스스로 만들어 키우는 텃밭이나 야생화 같은 화단을 조성하는 것 역시 자기 치유 과정이자,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독립적인 공간을 스스로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공간이 앞으로 조금 더 확장되어 마을 안에서 주민들이 만들어 내는 여러 공동의 장들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내년에는 장수마을이나 동네목수에게 여러 변화가 있을 것이다. 당장은 장수마을의 물리적 환경이 개선되는 방향으로 변화가 있을 것이다. 위험한 축대도 새롭게 고치고, 방치되어 왔던 빈집은 주민들 공동시설로 탈바꿈할 것이고, 마을경관도 조금은 정리된 모습이 될 것이다. 이미 있는 환경을 크게 바꾸지 않고, 낡은 것을 불편한 것들을 조금씩 고쳐가는 것이다. 지역의 여러 자원도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함께 참여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마을에 활력이 생길 것이다.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마을주민들 스스로가 정든 이웃과 더불어 오래 같이 사는 마을을 만드는데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길 진심으로 바란다. 장수마을이 배제된 자들의 서사가 아닌, 새로운 주체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생겼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배정학 님은(주)동네목수 총무이자 장수마을 주민입니다. 장수마을 소식이 더 궁금하신 분들은 카페에 들러주세요. (cafe.daum.net/samsun4, 장수마을 안에 동네목수의 작은 카페도 있습니다.^^)
인권오름 제 321 호 [기사입력] 2012년 11월 07일 18:2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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