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날다] ‘문제행동대응법’의 문제성 파헤치기

누가 문제행동을 정의하는가

우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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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와 교총이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개선해보겠다고 ‘문제행동대응포럼’이라는 것을 시행하였다. 그 내용을 보니 인권조례가 되었으니 폭력적인 방법을 쓰지 말고, 말로 노련하게 하라는 제압하라는 메시지였다. 인권이 제기하는 것은 “정말 이것이 문제인가?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는 것을 억압적으로 가르쳐야할 정도로 큰 문제인가?” 였는데, 결국 인권을 빙자해서 남은 것은 ‘애들 살살 다뤄라’였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인권교육에서 이것을 역 이용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 행동’은 정말 문제인가? 라는 질문을 통해 살살 억압하라는 메시지는 인권이 아님을 얘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연수 제목으로 교사들을 낚고 싶었다. 제목은 ‘문제 행동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대안’

우선 선생님들에게 ‘나를 당황시키는 문제 행동, 문제 상황’을 받았다. 선생님들을 당황시켰던 행동은 이런 것이었다.

'문제행동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대안'이라는 연수 때 나온 사례들

<사례1>2011년도, 쉬는 시간에 우연히 화장을 하고 있는 여학생을 발견, 학생이 가지고 있지 말아야할 물건이라 압수함(마스카라). 여름방학이 끝나고 자기 물건을 돌려달라고 요구해서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한 적 없고, 너에게 유해한 물건이므로 돌려줄 수 없다함.

<사례2>6월에 학습플래너를 쓰게 했는데 한 아이가 잃어버렸음. 사실은 조00이 교실밖으로 던져버린 것이었음. 조00에게 왜 버렸냐고 했더니, 자기가 생각할 때 필요없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며, 자기는 필요한 것과 필요없는 것을 구분할 정도는 된다고 너무 태연하게 말함. 우리반 아이들 모두 억지로 쓰고 있는 것이어서 필요없다고 해서 매우 당황스럽고 화가 많이 났음.

<사례3>수업 중 맨앞에 앉아서 입으로 거품을 만들어 수업내내 불어대고 있었음. 나의 지도에 아랑곳 하지 않고, 나머지 아이들은 나와 그 친구만을 바라보았음.

<사례4>말없이 울기만, 1년이 다가도록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사례 5>친구들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학생 A가 있었는데 B학생의 핸드폰에 A학생의 이름으로 욕설이 섞인 문자가 보내지고, B학생은 흥분하여 주변친구들과 A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A학생은 본인의 행동이 아니라며 진범을 찾겠다고 하고, 그런 와중에 A학생은 더 외톨이가 됨.

여러 사례들이 있었지만 유형화해보면, 사례 1,2,3처럼 이것이 ‘문제’라는 사실을 교사가 학생과 공유하지 못하거나, 사례 4처럼 소통자체에 실패하거나, 사례 5처럼 진실에는 접근했으나 교사 혼자서 해결책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연수의 목적을 ‘문제’의 기준을 교사와 학생이 공유하는데 맞추었다. 지금까지는 문제를 교사가 정의하고 해결책을 지시하는 것을 교육이라고 여겼으나 ‘문제의 기준’을 공유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고 ‘그 기준은‘ 인권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라는 제안을 하였다. 그리고 기준이 공유되지 않은 상황에서 강압적인 조치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경우 오히려 학생들의 반발을 사고, 반발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공유하였다. 결국 문제 상황을 함께 공유해야 해결책도 함께 찾을 수 있고, 학생들이 문제 해결의 주체로 설 수 있다는 것이 연수의 요지였다. 다음은 마무리 강연의 내용이다.

누구에게 ‘문제 행동’인가?

평화=침묵?
‘문제 행동을 제압한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나타내는가?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눈에 드러나는 상황만 보자면, 우선 학생을 침묵시키고 교사가 내리는 구체적인 상황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도록 만드는 상황이다. 새 학기 때 학생들은 학교에 대해 잘 알기도 하지만, 잘 모르기도 한다. 공동체가 함께 살기 위해 행동할 때 유념할 것이 무엇인가를 ’안내‘받고, 행동의 여러 유형 중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은 아주 구체적인 것까지 교칙의 이름으로 ’지시‘받는다. 사실 이런 상황이 학생들이 인간으로서 학생들이 제대로 놓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강압적인 지시 없이는 구현될 수 없는 상황을 우리가 ’정상‘으로 간주하는 것은 아닐까?

누가 ‘문제’를 ‘정의’하는가?


학생들이 하도 문제를 일으켜서 괴롭다고 하지만, 상황마다 그 문제의 내용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교사는 학생들이 화장을 하는 것이 ‘문제’인 반면, 어떤 교사는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휴대폰을 하는 것이 문제이다. 화장을 하는 것이 문제라고 인정하는 교사들도 그 기준이 다 다르다. 어떤 교사는 썬크림, 메이크업 베이스는 인정하지만 색조화장은 안 된다고 하고, 어떤 교사는 메이크업 베이스도 안 된다고 한다. 휴대폰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교사는 휴대폰을 꺼내기만 해도 압수하고, 어떤 교사는 사용했을 때 문제라고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다양한 층위의 규범이 있다. 지켜야할 매너를 교육하고 홍보해서 문화를 만들어가려는 단계의 규범, 법규수준의 강제조항과 처벌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인권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는 규범, 조례 등 지역이나 공간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되는 규범이 있다. 어쨌든 규범의 첫 원칙은 ‘상호간의 약속’이라는 것,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적용되어야한다는 것’, ‘누구의 눈에 보기에도 명확한 객관성을 띠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이러한 원칙을 넘어서는 것들이 많다.

우선 상호간의 약속이라는 것이 제안되지만, 학생들의 약속은 교칙의 이름으로 강제되지만 교사나 학부모가 지켜야할 것은 부탁에 그친다. 용의복장 등 학생에게만 적용되는 교칙이 여전하다. ‘누구의 눈에 보기에도 명확한 객관성을 띠어야한다’는 것 역시 수업방해 행위를 판별하는 역할은 교사가 한다는 점에서 한정되어있다고 할 수 있다.

수업방해 행위 사례

지구과학 교사인 K는 중생대 백악기에 대해 수업하고 있다. 중생대 백악기 공룡의 종류에 대해 나열하는 순간 일짱인 P가 영화 ‘쥬라기 공원’에 대해 이야기해서 수업을 이어나가지 못하게 한다. 설명을 계속할 수 없는 K는 P에게 ‘떠들지마’라고 하자, P는 ‘제가 쥬라기 공원에서밖에 공룡을 못봤는데요’라고 삐딱하게 대답한다.

위 사례의 경우 교사가 설명을 이어나갈 여지를 주지 않고, 학생이 영화 얘기를 한 것이 ‘문제’로 지목되었다. 하지만, 학생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배경지식으로, 가장 수업과 연관된 이야기를 한 것이다. P의 입장에서는 자기 수준의 ‘수업 참여’가 교사 입장에서는 ‘수업 방해’행위가 된 것이다. 수업시간의 소통은 다차원적으로 일어난다. 학생들은 교사의 말을 일부만 듣고 일부는 흘린다. 그 일부를 듣고 자극된 자신의 지식을 말할 때 그 일부와 본래의 지식 사이를 연결하는 것은 교사의 몫이다. 교사의 어떤 말이 학생의 그 배경지식을 자극했는지 묻고, 원래 설명의 의도로 유도할 수 있을 때, ‘수업 방해행위’는 ‘수업 참여행위’가 된다. 오히려 문제로 봐야할 것은 교사가 설명을 덧붙일 타이밍을 학생도 교사도 놓쳤다는 것이다. 쥬라기 공원에서 본 어떤 공룡이 오늘의 수업과 관련 있는지에 대해 서로가 공유하지 못했기에 수업과 연관된 하나의 소재는 방해의 근거가 되어버린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학생 스스로 이것이 문제라는 점을 자각할 과정이 제시되지 않은 것이다. 어느 것이 문제인지 스스로 자각하는 과정, ‘문제’의 기준을 공유하는 과정 없이는 다음번에도 그런 실수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문제’가 되는 상황인지, ‘문제의 기준을 교사와 학생이 서로의 입장에 대해 공유’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과부의 문제행동대응포럼 자료를 봐도 ‘문제행동’의 기준은 상황에 따른 구체성이 없이 교사가 느끼는 것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것’,‘수업을 방해하는 것’의 경우도 어떤 상황을 이렇게 봐야할지 명확하지 않다. 수업의 형태가 일제식, 강의식 수업으로 고정되어있을 때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도 ‘눈을 반짝이며 가만히 있는 모습’으로 정형화된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소리를 내거나 다른 행위를 하는 것은 모두 수업을 방해하는 행동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모둠별 프로젝트식 수업이나 과제 완성형 수업의 경우, 수업에 참여하는 것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뭔가 수업시간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이다. 소리를 내거나 다른 행위를 하는 것도 수업 참여 행위의 보조적인 행위일 뿐, 적어도 다른 사람의 학습을 방해하는 행위는 아니다. ‘꼼짝없이 조용히 가만히 있는 것’만이 유일한 수업참여행위로 간주될 때 이런 태도를 생물학적으로 오래 취할 수 없는 학생들의 생리적인 자연스러운 반응은 ‘수업방해행위’로 간주되고 제지당하게 된다.

즉 ‘문제 행동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생각은 ‘학교 수업이 천편일률적’이라는 것, 배우는 과정 사이에 ‘쉼’과 ‘회복’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문제 상황은 결국 어떤 행위라기보다는 지금 바로 이 순간에 어떠한 이유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배움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신호’인 것이다. 결국 문제 행위 그 자체가 문제인지,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학습자 또는 다른 이유로 기계적으로 짜여있는 바로 이 시간에 참여할 수 없는 학습자에게 대체 공간이나 ‘쉼’과 ‘회복’의 과정을 보장해줄 수 없는 상황에서 수업방해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이 문제 상황인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교사들이 수업방해 행위에 쉽게 심리적 상처를 입는 이유는 학생들의 그러한 행동이 교사를 무시하고, 교사에 대한 반항심을 의도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하는 행동으로 단정 짓기 때문이다. 교사에게 반항하기 위해 이런 행동을 하는 학생은 극소수이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이러한 행동들에 대해 강압적으로 제지하는 상황에서 교사와 학생과의 관계는 어그러진다. 대부분의 문제 행동에서 학생은 그냥 학교생활을 겪으면서 맘과 몸속에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을 표현하는 것이며, 특정 대상에 대한 분노를 품고 의도적으로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따라서 어떠한 상황이 학생들의 맘과 몸을 수업에 참여하기 어렵게 만드는지에 대한 관찰과 소통, 수업에 참여하기 어려운 개인의 상황이 전체 수업에 대한 방해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 교사가 취해야할 전략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지금 바로 이 순간에 어떠한 이유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배움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신호’를 접한다면, 그 이유를 알기 위해 교사는 ‘어떤 소통 전략을 쓸 것인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고등학교 교사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문제인 ‘자는 행위’ 역시 교육의 문제적 상황이 낳은 결과인지, 수업에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인지 다시 생각해볼 문제이다. 일정시간 의무적으로 시간을 보내야하는 공교육에서 수면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본인에게 가장 손해가 나는 행동이다. 그나마 다른 사람이 듣는 것을 방해하지 않고 취할 수 있는 자해행위인 것이다. 물론 학생에 따라 ‘포기’는 전략적 선택일 때도 있다. 그럼 ‘포기’를 전략적으로 선택하게 만드는 제도나 요소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이 이루어져야지 포기행위를 금지시킨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 않을까?

문제 행동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대안
중요한 것은 소위 수업방해 행위라고 불리우는 상황들에 대해 다른 시선을 갖는 것이다. 그를 위해서 ‘문제 상황’을 접할 때는 아래와 같이 분석하면서, 학생들이 학교의 구성원으로 소통하고 참여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문제 상황을 접할 때 고민할 것들

-이 문제는 누구의 입장에서 정의된 것인가?(학생들 입장에서도 이것이 문제인가?)
-학생들의 어떤 심리적인 욕구를 바탕으로 한 것인가?
-어떤 바람을 표현한 신호인가?
-그런 선택을 하게 하는 구조적인 문제(수업의 구조, 학교의 구조, 사회의 구조)는 없는가?
-내 수업에서 쉼과 회복을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인가?
-학생들로 하여금 어떻게 소속감과 기여한다는 느낌을 갖게 할 것인가?
-소속감과 기여한다는 느낌을 향상시키기 위해 수업에 대한 발언력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즉, 자신감을 주고 소속감을 갖게 하는 것, 그것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 수업과 교육과정을 바꿔내는 것, 그것을 통해 학생들이 짜인 수업시간뿐 아니라 교육과정이나 배움의 내용에까지 참여할 통로를 마련하여 기여하게 하고 진정한 소속감을 갖게 하는 것이다. 다만 궁극적인 과정에 다다르기까지 어떤 행동이 문제상황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눈감아주기, 격려하기, 출구 전략 마련하기 등 적절한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 근본적으로는 날로 처참해지고 있는 교육, 사회 상황을 바꿔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리가 문제 행동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대안이다.

가장 좋은 범죄정책은 가장 좋은 사회정책인 것처럼, 가장 좋은 문제 행동에 대한 대책은 가장 좋은 교육에 대한 대책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우돌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회원입니다.
인권오름 제 338 호 [기사입력] 2013년 03월 19일 23: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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