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물머리, 안녕한가요] 두물머리 네 농부 인터뷰②: 농부들의 근미래

로맨스조, 벌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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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로–로맨스조, 임–임인환, 병–김병인, 왕–최요왕, 규–서규섭, 디–디온)

3. 네 농부의 `근미래’

허공과 땅 그리고 양지와 음지. 그리고…
`농사 잘 짓자는 거지. 뭐’


규: 나는 근황이 곧 나의 미래야.

로: 그쵸. 상황적으로 보면 근황과 근미래가 같다고 볼 수 있는데, 상황 말고요. 본인이 갖고 있는 공간이나 농사, 생활 방식에 대한 다른 계획이 있는지 궁굼해요. 그럼 쫌 더 미래?

왕: 다들 그럴 거예요. 4대강 일이 커지기 전에, 이명박이가 지랄치기 전에도 두물머리에서 농사짓는 것은 반영구적인 거라고 우리는 생각을 했다고. 하천부지는… 본인이 포기하지 않는 이상은 임대농이지만, 거기서 안정적으로 농사지을 수 있는 거니까. 거기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이 주로 있었지. 앞으로 향후 농사를 어떻게, 지금 농사를 어떻게 다르게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농사를 계속 그 형태로 갈 것인가. 그런 고민들을 하고 있던 차에 완전히 뒤집어 버리는 상황이 생겼던 거고. 3년 동안 싸우게 된 건데. 지금은 그때와는 다른 의미로 자기 농사를 준비하는 그런 시기라고. 자기 농사를. 평생 지을 농사를. 평생이 될 수 있고 안 될 수도 있지만 어쨌든 평생이라는 가정을 상정해두고 자기 농사를 준비하고 있는 그런 상황이라고. 그래서 앞으로 여기서 어떤 틀을 잡아서, 왁구를 잡아서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다들 해 나가고 있는 거라고.

로: 확실히 예전과는 농사의 무게감이 다르겠어요.

왕: 완전히 달라지지. 거기다 맘 편하게 내가 할 수 있는 농사만 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은 아니고 많은 비용을 들여서 시작한 농사이기 때문에 그걸 어떻게 풀어가고 갚아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같이 해야 되고. 그래서 훨씬 부담감이 큰 상황 이예요. 예를 들어서 나 같은 경우는 땅 사는데 ***억 3~4000정도 들었고 시설 지원받으면 ***억 이상 든다고 하면 합이 내가 새로 농사를 시작하면서 투자하는 돈, 내가 빌렸든 내 돈을 썼던 간에 어떻게 지원을 받았던 간에 ***억 이상이야. 거의 ***억 가까이 되는 거야. 그러면 웬만한 중소기업 설립할 때 투자되는 비용 이상이야. 거기에 걸 맞는 농사를 해야 하는 거야. 거기에 걸 맞는. 그런데 농사가…거기에 걸 맞는 농사가 있는 진 모르겠는데 (웃음) 애초에 귀농을 했을 때의 마음. 나는 왜, 이러저러한 것들 때문에 농사를 지어야 쓰것다 하고 작심했을 때의 마음과… 그때는 허공에 떠 있잖아. 아. 씌바. `라퓨타 성’ 이잖아.

이제는 철저하게 땅에 발을 대고 하지 않으면 떠 있던 라퓨타가 떨어져서 박살이 나는… 그런 상황이라서. 그렇다고 라퓨타를 포기하는 건 아니지만 땅에 발을 딛고 해야 하니까. 그렇게 됐지. 그런 것들에 대한 개인적인 고민들을 할 거라고. 아주 심각하게. 처음에 귀농할 때 내가 라퓨타처럼 허공에 떠 있다는 생각은 못했지. 근데 이제 살다 보니까 내가 떠있었구나 판단을 하게 된 것도 있는 거니까.

로: 지금 상황이 내가 떠 있었구나를 깨닫는 계기가 됐다는 건가요.

왕: 꼭 4대강 사업을 통해서 알게 된 건 아니고. 살다 보니까. 농사를 짓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고. 4대강 사업이 더 그렇게 되게 한 것뿐이지. 농사 자체가 그런 게 있지.

로: 많은 사람들이 그럴 거 같아요. 지원은 받았지만 농사의 부담치가 커진다면.. 아까 재밌게 말씀하시느라고 라퓨타 얘기도 하셨지만, 우리가 그런 이상을 쫓는 이유가 있잖아요. 더 나은 걸, 더 대안적인 걸 찾기 위해서… 그랬던 것들에 압박이 커진다면 원래 하시던 농사방식-유기농에서 멀어지게 되지는 않을지 걱정이 들어요.

왕: 그렇지. 언뜻 그런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을 거라고 보고. 휴… 꼭 다 그렇지는 아닌 것 같고…잠깐 규섭이한테 물어봐봐. 나 담배 좀 피고 ..

(일동 웃음)

디: 아휴. 나까지 속이 탄다.(웃음)

규: 우리 넷 뿐만이 아니라 두물머리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들의 방법이 수막 농사였거든. 수막농사라는 게 지하수를 끌어올려서 이중하우스 사이에 밤새 물을 뿜으면서 보온을 하는 농법인데 겨울 농사를 짓는 비용으로 따지면 가장 저렴한 방법이거든. 모터 하나로 물만 뽑아 올리면 되니까 지하에 물만 있으면 되는 거거든. 그런 조건에서는 두물머리가 좋은 거지. 석유나 석탄이나 보일러를 전기로 때우지 않아도 되니까.

다만 그렇다고 하더라도…두물머리나 팔당댐 주변에 물 많은 데는 농민들이 무분별하게 비닐하우스를 처 수막을 지으면서 지반이 앉는 일이 생겼어. 내가 농사를 5년 짓고 나서부터는. 지하수는 라인을 따라 흐르기 때문에 이 라인에 너무 많은 관정을 파 버리면 지반이 가라 앉아버리거나 물이 고갈되거나 해. 송촌리 같은 경우는 두물머리의 몇 배 크기이기 때문에 몇 년 전부터 그런 일들이 계속 발생하기도 했고 그래서 자기들끼리 모여서 이제 이 라인은 관정을 더 파지 말자라고 하기도 했어. 그런데 그게 지켜질 수가 없지. 그렇게 싼 비용으로 겨울 농사를 지으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는데. 그건 제어를 스스로 하기 힘든 부분이고. 그렇게 봤을 땐 어떻게 보면 두물머리에서, 교각 저 안쪽으로는 지하수를 뽑아 올려서 농사를 짓는 일은 더 이상 못해. 생태계로 봤을 때는 다행스러운 게 있는 거지. 근데 복합적인 의미가 있으니까.

요왕 형도 ***억 넘게 돈을 들여서 땅을 사고 그게 3년 뒤에 원금 상환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나게 부담이 돼. 그렇기 때문에 그 땅에 소득이 되는 작물을 심어야 하는 부담이 있는데 다만 유기농을 하는데 그 기본이 자기 땅이 아니면 유기농을 꾸준히 하기 되게 힘든 조건이야. 우리나라가.

지주들이 1~2년 지나면 땅을 내놓으라고 그런 다던가 임대인들에게 묻지 않고 땅을 팔아 버린 다던가 그래서 기껏 땅을 가꿔 놓으면 그 땅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건데. 유기농을 제대로 하는 가장 기본이 자기 땅, 자기 농사를 지을 때 가능한 거거든. 그런 관점에서 보면 또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다는 거지.

보기 나름인데 아까 요왕 형이 `나는 5월부로 ***억이 넘는 빚쟁이가 됐어’ 라고 볼 수도 있는 거지만 `나는 5월부로 내 땅이 있는 지주가 됐어’ 이렇게 볼 수도 있는 거야. 그리고 17년이 아니라 10년 만에 그 돈을 갚으면 자기가 하고 싶은 농장, 요왕형 같으면 늘 관심 있던 똥에 관한 농장을 할 수 도 있는 거고. 그런 부분에서는 뭐랄까. 양지가 있는 거고. 다른 쪽에서 보면 두물머리라는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강제로 이주를 하다 보니까 짊어져야하는 음지가 있고 그런 건데. 이런 부분을 어느 한 쪽만 보고 너무 부각 시킬 필요는 없다고 보고 있어. 양 쪽을 볼 수 있어야 하고 개인적으로는 농민들이, 이 음지부분은 극복해야 하는 부분이고 양지부분은 지향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이 쪽을 보고 긍적적인 마인드로 가면 좋지 않나 그런 생각이고. 왜냐하면 두물머리 문제는 작년부로 끝났으니까. 그리고 시설부분이 지원이 안 되고 있는 부분을 놓고도 다시 정부를 고발 한다던가 두물머리에서 다시 농성 집회를 한다던가 하는 여러 가지 의견들이 있었지만

우선 정부가 농민들과 사인까지 한 약속 문서가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을 지자체나 아니면 두물머리 협의 기구나 4대강 관련해서 조사를 하고 있는 야당 정치권을 통해서 왜 안되는지 속 내막을 알아보고 도저히 안된다고 하면 다른 방법을 쓰는 게 순리적으로 해결이 됐을 때 그게 또 순리적으로 옳지 않나 하는 거고 다행히 그동안 이런저런 애를 쓴 덕분에 다음 주 중으로 경기도가 답변을 준다고 했어. 의원들한테는 다음 주 중으로 확답을 하겠다 그랬다고. 그 약속이 지켜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지. 만약 그게 안되면 두물머리 협의기구는 협의기구를 중단시키면서 까지 농민 이주 대책 문제를 먼저 풀겠다고 의원들이 나오고 있으니까 지켜보고 있는 거지. 하여튼 내 속내는 그래. (**인터뷰 이후 시설지원 문제는 잘 해결되었습니다.)

로: 그래서 미래가 뭐라는 거예요?

왕: 농사 잘 짓자는 거지. 뭐

로: 듣고 싶은 건 규섭 형님의 농사의 미래. 전체 유기농의 미래라기 보다는 내 농사의 미래.

솔직히 난 두려워

규: 전체 유기농의 미래? 그건 난 몰라. 요왕 형이 천공의 성 라퓨타 얘기도 했지만, 2009년도 4월 달에 두물머리 싸움을 처음 할 때 생각이 나. 전부 어리버리하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4대강 사업이 뭔지도 모르고. 어리버리한 상황이 2009년도 5월이었는데 그때는 구호도 단순했어. `그냥 이 땅에서 농사를 짓게 해 달라’ `이 땅을 뺏기지 않아야 겠다’ 이런 거였어. 4대강이란 구호를 넣을 수도 없었어. 근데 나는 개인적으로 처음의 그 구호가 제일 정직했다고 보거든. 나는 내 땅에서 국가가 싼 임대료 주니까 내가 농사를 짓고 싶은 만큼 지었으면 좋겠다 그런 건데 그런 부분이 시간이 지나면서 약간 정치색이 섞인 구호로 많이 바뀌면서 아마 농민들은 주변에 시선도 집중적으로 받고 농사짓다가 인터뷰도 많이 하게 되니까 발이 땅을 떠난 건 맞는 거 같애. 특히 내가 좀 그랬었고. 작년 이후에 자의든 타의든 그런 처지에 놓여있는데 땅에 내려오려고 발버둥을 치면서 노력을 하고 지금 내가 땅에 내려와 있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 난 스스로 자신이 없어. 1년을 농사를 쉬었지. 작년 8월부터. 형들은 임대 땅이 있었는데 난 임대 땅이 없었어. 개군으로 이주를 했고 낯선 마을에 가서 혼자 가 있는데 거기는 다 할아버지들, 할머니들 밖에 없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며가며 나한테 묻는 말이 그거야. `아니 젊은 사람이 왜 이 마을에 왔어. 저 땅을 사서 뭐해.’ 땅을 사서 몇 달 동안 놀리고 있고. 풀이 계속 허리 위로 크는데 아무 기계가 없으니까 부탁할 데도 없고. 그냥 예초기 있는 거 하나 가지고 심심하니까 깍고… 지금 세 번째 깍고 있는데.(웃음)

솔직히 난 두려워. 왜냐면 두물머리 투쟁 하면서, 두물머리 대표는 정치 진출에 욕심도 가지고 하고 그랬었잖아. 거기에 우리도 따라 다니고 그랬었고. 혹시 내가 그런 게 더 재미있어 하는 심리가 아닌 가 그런 생각도 들고. 농사를 12~3년 지었는데 다시 옛날처럼 그런 마음으로 지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고. 개군에 가서 한달 가량 있어 봤더니 엄청 심심해. 자꾸 어디로 나가서 모임하고 싶고, 만나고 싶고. 그런 게 있어. 이게 삼년동안 두물머리 있으면서 나도 모르게 내 몸에 밴 게 있어서 자꾸 나서서 얘기하려고 하는 그런 게 있는 거 같애. 그래서… 하여튼 엄청나게 외롭기도 하고. 어떨 때는 술도 많이 마시고 싶은데 옆엔 친구도 없고 또 어떤 때는 내가 답답해서 요즘 청문회니 이런 거 하니까 혼자 라디오 듣고 있으면 이런 얘길 하고 싶은 친구도 그립기도 하고 이런 건데. 그거 다 제껴 두고 땅에 코 박고 이 더운 여름에 땀 삐질삐질 흘리면서 농사지을 수 있는, 그런 자세로 돌아가야 원래 나의 자센데 나한텐 아직까지 그런 게 없구나 그런 걸 느껴.

그래서 두렵기도 하고. 난 어떻게 할거다 이런 얘기들이… 난 다시 땅으로 돌아가서 더도 말고 농민다운 농민으로 살 수 있을까. 나머지 삶. 내가 46살인데, 난 내가 아직 젊다고 믿거든. 농사 외에 다른 것도 하고 싶을 수 있고 그런 건데.

왕: 헛된 믿음이니라…(웃음)

규: 유기농에 대해서 전도사처럼 두물머리에서 떠들고 그랬었는데 이런 것에 대해서 내가 얼마나 유혹을 뿌리치고 거기에, 정말로 아무 거리낌 없이 농민으로 남아있을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도 없고. 그러려고 애는 쓰는데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는 생각도 많이 들고 그래. 그래서 내가 땅을 나는 ***억 8,700 주고 샀거든. 내가 제일 조금 주고 샀는데 저기 산 땅이 갑자기 ***억 그렇게 가면 내가 갑자기 팔아 버릴지도 모르겠다…

(일동 웃음)

팔아가지고 정부 비 ***억 넘게 갚고 그러면 내 앞에 ***억 정도 남잖아. 이걸로 돈 되는 일을 해볼까.(웃음) 하여튼 이런 것으로부터 난 자유롭지 않아. 혼자 있어 보니까 자신이 없어. 현재 상태가 그렇고 좋은 방향으로 잘 풀렸으면 좋겠다 싶어.

왕: 그니까 이제 어쩌다 보니까 시설 지원이라는 것들이 화두가 되버렸는데 우리 입장에서는 그게 좀 떳떳하지가…못 한 건가.. 아무튼 우리가 사람들한테 대놓고 `와~ 씨바 우리~ ‘ 이러기가 참 지랄 같은 그런 거야. 예를 들어서 4대강 사업하면서 쫓겨난 농사꾼들이 어마어마한 숫자가 있고 농지도 그렇고 우리는 극히 일부일 뿐이고. 그 사람들이 대부분이 아마 그랬을 거야. 시설에 대한 보상만 받고, 시설보상, 농지 손실 보상. 그러면 몇 천 만원 씩, 농지가 큰 사람들은 일억씩 후려치고 떠났을 거라고. 근데 이게 토지를 새로 구하고 시설을 새로 하기엔 택도 없는 돈이야. 새로운 농업 기반을 갖추기에는. 어영부영 하다가 2~3년 사이에 까먹을 수 밖에 없는 거라고. 우리도 보상 얼마 받았지. 5천 받았나. 딱 찾는 순간 뾰롱 하고 사라졌지. 어쨌든 우리는 그런 지원과 보상이 있어서 힘들지만 새로운 모색을 할 수 있는 기반은 돼. 모, 이러네 저러네 앓는 소릴 하더라도. 나머지 사람들은 대부분 그게 안 될 거야. 그것에 대해서 좀 찾아가면서 취재하는 언론 기사도 안 나오더라.

뭐 아무튼 앓는 소리를 하는 것도 쪽팔려? 음. 암튼 되게 어정쩡하다고. 실은. 그런데 지금 현재 스코아 우리는 쉽지 않고. 만약에 지원이나 그런 게 없었다면 땅 융자해주고 지원해주고 그런 게 없었다면 다른 모색을 진작에 했을 거야. 임대를 새로 해서 진작에 농사를 하고 있을 거라고. 어렵지만. 유목민이 되는 거지. 임대농은 유목민이다. 노마드여. 그렇게 되더라도 그렇게 시작을 할 수 밖에 없어요. 오마이뉴스랑 인터뷰할 때도 뭐 시방 되게 힘들데. 인터뷰를 당하는 게. 맨날 근황. 농사꾼이 농사를 못 짓고 있으니까 뭔 말을 못하겠더라고. 어쨌든 간에. 나나 인환이나 도지에 얻어놓은 땅이 있어서 거기서 개기고 죽치고 뭉개고 그러고…그거 없었으면 나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어. 진짜로. 겨울에 어디 갈 데도 없고. 아…거긴 노지 농사니까. 겨울엔 못 하니까. 봄 됐을 때 맨 날 거기 가서 개기고 있는 거야.

로: 그러게. 이게 `근미래’ 라기 보단 일단 이번 겨울을 어떻게 나실…

왕: 지금은 상황이 좀 다르지. 자기 땅이 생겼으니까. 농막이라도 짓고 거기서 책을 보던 새끼를 꼬던 지랄을 하던. 이제는 그렇게 되지.

로: 규섭 형님은 겨울에 농사지으실 건가요.

규: 난 지을 거야. 땅을 파봐야 아는데 물이 얼마나 나오는지 봐야 돼.

로: 수막농사가 가능한지 보고?

규: 그 쪽에도 일부 수막 하는 사람이 있거든. 땅에 물이 얼마나 나는지를. 금요일 날 와서 우물을 파기로 했는데 비가 와서 못 왔어.

로: 주변엔 유기농 농법에 대한 생각이 있으신 분 들이예요?

규: 거기는 유기농 하는 사람이 없어. 어제는 참, 낮에 더워서 샤워를 하고 있는데 개가 한마리 난리를 치는 거야. 화장실 문을 열고 쑥 봤더니 빽차, 경찰차가 쑥 들어와. 동네 사람들이 저 새끼 맨 날 혼자 처박혀 있는데, 친구도 없고, 뭐 죄 졌나보다. 경찰차가 딱 들어와서 묻지도 않고 문을 딱 열고 들어와서 `규섭씨. 어딨어’

왕: 오 형사구나. 오 형사.

규: 오 형사 알지? 두물머리 미사 때 왔던 정복 형사.

규: 두 형사가 정복을 입고 권총을 차고 둘이 방에 들어오는 거야. 샤워하는 데 들어오더니 빨리 나와. 나와서 경찰관이랑 커피 한잔했어. 내가 반가워서.(웃음)

(일동 폭소)

규: 그래서 내가 차 타고 돌아다녔다. 심심해서. 순찰 도는 차 타고.

로: 시트콤 같네요.

규: 조용하대. 사람 수도 적고. 시골 동네니까. 사건이 없는 거야.

왕: 그것도 골치 아파. 일이 없으니까 우리도 돌아버리는 거잖아.

규: 삥 뜯을 데도 없고 경찰들이.

디: 어떻게 또 오 형사님이 거기로 가셨을까. 인연이 깊네요.

왕: (웃으며) 규섭이 때문에 갔다고 나는 봐. 규섭이가 먼저 갔거든. 내가 신고식 받으라고 했는데.

농업과 농민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어야 해

로: 음.. 이게.. 이번 소식지 취지에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지금 정부의 지원정책은 개별 농부에 대한 지원이지 공동체를 위한 건 아니잖아요. 농부들이 흩어져 있어도 상관없고, 근데 이전의 두물머리는 제게 공동체로 보였거든요. 일단 지역적인 특성 때문에라도…

왕: 지리적인

로: 그런 것도 있는가하면, 취지나 목적, 방향성 때문에 모였을 수도 있고. 지금은 이제….

왕: 분산이 됐지.

로: 그랬을 때…

왕: 편하게 물어봐.

로: 어떻게.. 이게.. 이 상황에서라도 다시 해볼 것들에 대한 생각이 있으신지.

왕: 생각이 있어. 할 수 있는 건 하는 게 좋지.

로: 그게 뭐가 있을까요. 현재 상황은 서로 농지도 떨어져 있고, 전 보다 자주 보지도 못할텐데..

왕: 출하에 대한 거를. 집단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모색을 할 수 밖에 없지. 어쨌든 우리야 싸움하기 전에도 영농조합에 농민들이 조직을 만든 거잖아. 농사짓고 같이 출하하고 그런 것들 때문에. 그런 것들은 기본 적으로 있는 거고. 물리적인 거리가 규섭이 같은 경우는 멀어서 어려울 수 있겠지만 가능할 수 있는 것들은 하는 거지. 가능 한 할 수 있는 것들은 하고 싶은 마음들은 기본적으로 있는 거 같고.

로: 뜻 맞는 사람들이 가까이서 농사짓는 건 되게 중요한 거 같아요. 근데 지금은 하나의 지명에서 여러 개의 지명으로 흩어지신 거잖아요. 떨어져 지내시면서 어떻게 같이 갈 수 있는 건지..

왕: 기본적으로 마음들은 있다고 보고 농사를 해 나가면서 차츰차츰 방법을 모색하고 만들어내고 그래야 될 거 같고, 그러다가 어려운 부분도 있고 그러겠지. 당연히.

로: 각자의 농사에 투여될 시간이 굉장히 많아지고 상대적으로 일상적인 만남이 줄어들다 보면 의미 있고 재밌는 일들을 많이 놓치게 되지 않을지.. 괜한 걱정인가.

왕: 시간이 지나봐야지. 뭔가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 지금 당장 구체적으로 나오긴 힘들 것 같고, 내가 라퓨타 이야길 자꾸 하는데, 우선 자기 기반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야지. 향후 할 것을 가지고 그걸 근거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그런 것이 되게 좀 그래. 일단 중요한 건 자기 농사들을 제대로 꿰차고 자기 기본을 갖추는 게 기본일 것 같고. 그런 다음에. 생각들은 많이 있지. 생각들은 많이 있지만 그런 기본을 근거로 풀어나가야지 싶네. 나도 이러저러한 사람한테 말을 많이 하고 있는데 내가 그런 말 하면서도 내가 쓰발 주둥이만 살아가지고, 큰일 났네. 콱 꼬매 버릴까 그런 생각도 한다고.

로: 이게 마지막 질문일 거 같은데요. 두머리 투쟁, 합의 후 1년 우리들의 상황을 전체적으로 놓고 볼 때. 밭전위 사람들은 부용리에서 농사를 짓고 있어요. 록빠도.. 근근히, 간신히(웃음) 에코 밭, 당중앙, 천주교 등등 농부들은 각자 농사준비로 바쁘고, 생태학습장… 뭔가 서로 소통이 잘 안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어쩌면 그래서 이 소식지가 만들어지고 있는 지도 모르구요. 하반기에 다 같이 모여 이런저런 얘기 나눌 자리, 장을 만들 생각은 있으신지, 어떠신지.

왕: 어떤 거에 대해서?

로: 두머리 투쟁에서 저를 포함한 밭전위 사람들이 네 농부의 말이나 행동에 영향을 많이 받았고, 자의든 타이든 간에 네 농부는 투쟁의 중요한 상징이었잖아요. 그런데 합의 후 생태학습장 준비하면서 점점 농부들이 보이지 않게 됐다는 거죠. 그와 동시에 생태학습장 소식도 귀에 잘 안 들어오고, 뭔가 소통의 중심축이 없어진 느낌이랄까..

규: 내 생각엔, 이건 내 생각인데. 네 명의 농민들 중에 생태 학습장 관련해서 개입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은 나 일 것 같애. 로맨스조가 말하려는 게, 공동체적인 요소가 많았었는데 그 이후에 흩어지면서 그런 게 약해졌다..?

로: 네

규: 난 좀 다른 시각에서 본 부분이 있는데 농업이라는 부분들이 우리가 어쨌든 농촌이나 농업이라는 부분들이 우리 사회에서 대접을 못 받는 지경에 와 있는 거고. 농촌도 피폐해졌고 농민수도 많이 줄었고. 경제적인, 전체 나라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농민은 없어져도 될 그런 지경까지 와 있고. 누가 농업을 대를 이어서 할까. 수명이 다 한 지경까지 와 있다고 봐. 그 속에서 두물머리가 보여줬던, 로맨스조가 말하는 공동체성이라는 부분은 두물머리에서 3년, 4년을 같이 지나면서 싸움을 하기 위해 모였기 때문에 연대나 공동체성을 더 강조할 수 밖에 없었던 거라고 생각해. 그 싸움이 끝났을 땐 다른 형태로 나타나야하지 않나 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어. 특히 유기농업 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농업의 미래가 유기농업으로 가야한다고 말하고 그 유기농업이 농민수도 많아지고 농지도 유기농지가 많아질 수 있도록 단체도 애를 쓰고 조직하고 있는데 그래봐야 3프로 5프로 미만 정도고. 너무 미미한 거지. 정부의 정책은, 지원을 많이 해주면, 이런 저런 지원을 많이 해주면 농업도 번성하고 살아 날거다 하는 정책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내놓았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은 없었어.

나는 단순히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사회적으로 정당하게 대접받고 존중받으면 많은 사람들이 귀농할거고 농사라는 부분들이 푸대접 안 받을 거라고 봐요. 그건 우리가 공동체를 만든다, 노력 한다 그런 부분은 아닌 거고 그런 부분에선, 이 뭐랄까 농업, 생산, 좋은 먹거리, 유기농을 매개로 하는 좋은 사회 운동들이 활발하게 진행되어야 한다고 보고, 그 속에서 산 속에 들어가서 그들만의 공동체를 만들 수도 있는 거고. 난 그거 의미 없다고는 보지 않는데 우리나라 농업, 우리나라 사회 풍토가 농민이 정당하게 대접받고 존중받고 있는가 할 때는 너무나 천민 대접을 받고 그러면 누가 농사를 짓겠어. 아버지도 내 아들한테는 농사짓지 말라고 공부를 시켰다고 대놓고 다 말하는데. 이런 세상이니까. 그래서 그런 것들이 존중받는 형태로 그런 지향을 가지고 젊은 농민들이 농사를 지었으면 좋겠고 지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 속에서 뜻 맞는 유기농업, 지역 공동체도 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굳이 역량과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이상과 꿈을 무리하게 적용 시켰을 때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도 있지 않나 싶고. 내가 생각하는 것은 옛날에 우리 60년대 70년대 가지고 있던 농촌의 모습들. 그 마을을 이루어가며 살아가는 모습들. 그 속에서 품앗이도 하고 위,아래 계층이 살아가는 모습들, 그런 정신을 담아내는 농촌이 되면 좋지 않을까 싶고. 그런 의미에서 두물머리에서 싸움을 했기 때문에, 두물머리에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에코나 록빠나 이런 친구들이 더 가치 있는 일을 해도 좋고. 어디에 가든 간에 거기서 농민들이 자기 역활을 할 거라고 봐.

내가 간 개군에는 유기농이란 게 없더라고. 그래서 유기농을 같이 이웃과 할 수도 있는 거고. 또 이게 판로 문제나 생산의 문제는, 지역에서 품목별로 묶여지기 때문에 그런 부분도 양평군이라는 걸로 많이 묶여질 거 같고. 협의기구도 막바지 두물머리 프로그램 용역하고 운영주체 문제를 엊그제부터 논의하기 시작했는데 내가 볼 땐 거기에 인터뷰 하면서 했던 부분들이 가장 솔직하고 많이 실릴 거라고 봐. 인터뷰했던 연구 박사들이, 지역의 농민, 지역의 상권,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받아서 하면 지금까지는 너무 배가 산으로 가거나 그러진 않았고. 우리가 백프로 만족하지는 못하지만 웬만한 선에서 협의 기구가 용역 결과를 내놓지 않을까. 그런 부분에서 에코나 록빠도 필요한 부분에 결합해서 연구 용역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하나의 역활을 한다는 거, 결과에 따라서 운영주체나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졌을 때 거기에 참여하는 문제를 고민하면 되지 않을 까 싶어.

주) 에코 밭, 록빠 밭 이란. suyunomo.net/?p=10967

위 사진:[사진: 부용리밭에서 토마토 줄 작업 중인 에코 작목반]
로: 두물머리의 시간, 비슷한 시기의 투쟁과 비교했을 때 몇 가지 특별한 점이 있는데요. 그 투쟁의 방식이나 투쟁 이후의 관계랄지… 생활로 이어지는 공동체는 별로 없었던 거 같아요. 물론 투쟁의 목적에 따라 다를 수 도 있겠지만.. 음.. 농사짓는 것이, 곧 투쟁, <농사가 투쟁이다>라는 슬로건이 있었죠. 그리고 이후 삶으로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고리가 됐다는 점. 특히나 저 같은 외부세력?들이.. 표면상 투쟁은 종료가 됐어도 두물머리에서 만난 사람들과 아직까지 농사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은 놀라운 일인 거 같아요. 근데.. 그런 만큼 뭔가.. 아쉬움도 있는 게 사실인데요. 특히 요즘 같은 땐.. 투쟁을 위해 농사를 짓다가, 지금은 개인의 일상 또는 공동의 삶을 위한 농사로 돼가고 있는 지금.. 뭔가 같이 할 수 있는 재밌는 일 없을까.. 어떻게 모이면 좋을까.. 생각보다 왜 서로 교통이 원할치 않나..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거든요.

미래는 불확실 할수록 가능성이 많은 겨

왕: 그런 것들이…음..내가 무슨 말인지 충분히 아는데. 그리고 바라는 것들이 어떤 것인지 충분히 감이 잡히고 그러는데 그게 나도 이제 농사를 지은 지 십년이 되었단 말이야. 십년동안 그렇게 살 다 보니까 아, 그렇게 마음먹고.. 그런데 우리가 지금 상황은 기반들이 없으니까 그것도 중요하고. 기본적으로 차이는 있겠지만 다 마음은 있고. 기반들이 닦이고 준비가 되면 농사를 하게 되면 그런 것들은 하나씩, 하나씩…될 거라는 믿음이 있어. 난 그런 게 있어. 근거 없는 믿음이 있어. 실은. 로맨스조가 얘기하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대답을 못해주는 …(웃음)

그런 느낌이 있어. 규섭이도 그런 맥락에서 이야기했을 거야. 구체적으로 보이고 그런 것들이 잘 할 줄도 모르지만, 잘 할 줄 몰라서 그런가? (웃음) 슬슬 풀어나가면 중요한 건 마음이지. 그러네.

병: 올해 보면 인환이 밭 중심으로 해서 함께 했잖아. 물론 두머리 있을 때처럼 농부들이 자주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런 마음하고 네 농부도 틀 잡히고 자기농사 하게 되면 여러분들도 전업농으로 와야겠다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거고. 승욱이는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 그러면 같이 방국장, 김 유…이렇게 해서 조그마한 공동체 하나 만들면 되지 않을까. 절기에 맞는 농사, 농사 일이 힘들기 때문에 푸진 삶을 갈려면 놀이가 좀 있어야 하거든. 풍물을 하든 봄눈별이 음악을 하든 점점 같이 생활을 하다 보면 몇 년 후엔 우리가 생각했던 방향으로 공동체가 구성되어가지 않을까.

로: 시대적으로 볼 때, 농사와 환경의 최대위기.. 앞으로 계속 기록갱신을 하겠지만.. 그래서 그런지 생명, 평화, 생태 등 커다란 이름을 내세운 공동체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거 같아요.

왕: 공동체라는 게 왜 공동체를 고민하게 되냐면 전체적으로 큰 틀에서 국가든 사회든 간에 제대로 된 방법으로 정책을 이끌어 만들어서 죽 풀어 나가지를 못하면서 위기의식을 느끼니까 같은 생각을, 비슷한 생각을 많이 든 사람들끼리라도 어떻게 해서 뭔가 모색을 해 보고 싶어 할 때 공동체를 고민할 수 밖에 없어. 나도 공동체에 대한 생각들을 하게 되더라고. 농사를 시작하면서 거의 동시에. 공동체도 몇 번 찾아가 보고 그랬어. 난 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하는 건 기본적으로 맞다 고 봐.

그거대로 죽 가되 그게 하나의 방법은 될 수 있지만 그걸로 모든 걸 풀기는 어려울 거 같고. 이 이야기는 공동체 생각을 하지마라 그런 이야기는 아니고. 기본적으로 정도의 차이, 종류의 차이는 있되 공동체라는 용어를 적용할 수 있는 그런 집단들. 그런 곳은 숱하게 많은 것 같고. 우리 역시 공동체라는 말을 감히 쓸 수 있어. 쌓아왔던 걸 보면. 전에 역시도 적잖이 그런 모습이 있어. 생각들도 그런 게 있고. 그런데 이 시점에서 여러분들이 고민하는 것, 우리들이 고민하는 것. 겹치는 부분도 많이 있고 다른 부분도 많이 있고. 중요한 건 겹치는 부분을 서로 어떻게 이쁘게 잘 갖고 가느냐가 중요한 것 같은데. 내가 왜 이렇게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냐.(웃음) 그런 것 같애.

로: 제가 들은 게 있는데. 근미래 관련해서. 눈에 보이는, 손에 잡힐 듯한 근미래 랄까..
“최요왕 농부가 아지트를 만들고 있다“ 이건 또 무슨 말인지.

왕: 그건 되 봐야 아는 거지. 너무 의미두지 말자고.
미래는 불확실할수록 가능성이 많은 겨.


네 농부의 인터뷰가 끝났다. 식당을 나오니 어느새 해는 넘어가 컴컴한 하늘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또 어느새 그 자리에 함께 했던 사람들 손에는 누구 할 것 없이 요왕 형님이 건넨, 그날 수확했다는 옥수수가 들려있었다. `옥수수는 따는 순간 당도가 떨어져 버려. 가자마자 쪄서 먹거나 쪄서 바로 냉동실에 넣어 둬’ 나는 맛있는 옥수수를 먹으려면 농부의 말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커다란 냄비를 꺼내 물을 붓고 옥수수를 쪄냈다. 맛있었다. 옥수수는 꼭 `불확실하기에 가능성이 많은 미래’ 와 같은 맛이었다.
덧붙이는 글
로맨스조, 벌꿀 님은 두물머리 밭전위원회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365 호 [기사입력] 2013년 10월 10일 19: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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