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 공공부문 여성비정규직 삶과 노동을 드러내다

송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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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에는 정규직을 써야 한다’는 당연한 말이 당연하지 않게 된지 오래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공공부문에서 상시·지속적으로 일하는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하지만 이 공약은 벌써 전체 공공부문 비정규직 250,000명 중 26%에 불과한65,700여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순차적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공공부문에서 여성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6년 63.2%, 2011년 62.2%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3명 중 2명이 여성비정규직이다. 이는 전체 여성비정규직 비율(53.8%) 보다 약 10%p 높은 비율이다. 또한 기간제와 시간제 비율을 성별로 비교해보면 기간제의 경우 여성 비율이 2006년 69.2%→ 2012년 64.8%로 줄어든 반면 시간제는 2006년 61.7%→2012년 74.2%로 증가하였다. 간접고용도 성별 비율을 비교해보면, 일단 간접고용 용역노동자가 2006년 대비 2011년에 약 10% 가까이 증가한 가운데, 남성은 58.7%에서 51%로 줄어든 반면, 여성은 42.3%에서 48.9%로 증가하였다. 즉 공공부문에서조차 기간제는 줄어들고 시간제와 간접고용 용역노동자가 증가하여 여성비정규직 내부 구성이 더 열악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실에서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올해 진행한 ‘공공부문 여성비정규직 실태조사’는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여성비정규직 문제를 여실히 드러내게 할 수 있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내 여성 비정규직 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는 계기도 만들었다.

한국여노는 서울, 경기, 인천, 전북, 광주, 경남, 경북, 대구, 부산 등 9개 지역 지방자치단체의 본청, 사무소, 직속기관, 공사공단, 출연기관 등에서 일하는 기간제, 무기계약직, 단시간, 파견·용역 등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근로현실, 모성권과 성희롱 실태, 무기계약직 전환 사항, 개선방안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실태조사에 앞서 비정규직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 시·도청을 상대로 기초조사를 했으나,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실태에 대한 제대로 된 통계나 성별 분리통계를 찾기가 어려웠다. 정부가 확실한 비정규직 대책을 만들기 어려운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또한 공공부문 여성 비정규직 당사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계약직, 무기계약직, 시간제, 간접고용 노동자 등 9명의 심층면접도 함께 실시했다.

87% “나의 일은 상시지속적 업무”

무기계약직과 기간제 노동자에 대한 복지 및 처우가 아직도 비정규직 종합대책에서 권고한 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실상은 이번 실태조사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됐다. 무기계약직과 기간제의 주당근로시간의 차이는 2.5시간에 불과했지만 월평균 임금 차이는 30여만원에 이른다.

복지 및 처우실태를 보면 기간제는 예상 대로 무기계약직에 비해 열악한 복지혜택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간제는 4명 중 1명이 상여금, 복지포인트, 교통비 등 열거된 복지혜택에서 본인에게 적용되는 제도가 아무것도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무기계약직 응답자의 67%가 호봉승급제도가 본인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답해 임금격차 해소에 도움이 주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번 실태조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결과는 본인 직종의 업무성격에 대한 질문이었다. 응답자의 87% 가량은 자신의 일이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라고 답했다. 또한 파견·용역을 제외하고는 자신들이 하는 일이 공무원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업무라고 답한 비율도 절반 이상이었다. 이 결론은 정부가 무기계약직 전환 계획에서 대상자의 상당부분을 누락시키고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는 부분으로 매우 의미심장하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종사하고 있는 직종의 여성집중성도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동일 직종내 여성노동자 비중이 66% 이상이라고 응답한 노동자는 68%에 달했다. 이는 여성이 집중된 직종이 비정규직화됐거나 비정규직 일자리에 여성노동자를 많이 채용한 것으로 분석해 볼 수 있는 결과다. 이와 관련 응답자 중 25% 정도는 비정규직이라는 사실 외에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불이익 또는 차별이 있다고 답했다. 4명 중 1명은 비정규직과 여성으로서 2중 차별을 겪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차별의 내용은 여성집중이라고 임금이 낮다(35.7%), 단순·허드레 업무만 주어진다(29.5%), 주요 업무에서 배제 (12.7%), 여성의 전통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업무를 요구받는다 (12.7%) 등이다.

고용불안에 대한 질문에서는 무기계약직이 기간제에 비해 고용불안 정도가 낮긴 했으나, 5명 중 1명이 예산이 배정되지 않거나 사업 축소 내지는 폐지로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불안감을 안고 있었다. 같은 질문에 기간제 노동자는 절반 가까운 노동자가 고용불안을 느낀다고 답했다. 정부는 무기계약직이 다른 비정규직과 달리 정년이 보장된 일자리라고 홍보하고 있으나 노동자들은 여전히 다양한 사유로 고용불안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된 것이다. 무기계약직인 심층면접자는 “조직개편 때문에 내 일자리가 없어진다거나 예산문제 때문에 일자리를 유지할 수 없을 때 다른 일자리로 옮겨줄 수 없다면 정년을 보장한다는 것을 허울뿐”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노동자들이 무기계약직을 ‘무기한 계약직’이라고 하거나 ‘중규직’이라고 조롱하는 이유일 것이다.

공공부문 조차 모성권 확보와 성희롱 대처 미흡

모성권과 직장내 성희롱 항목에서는 공공부문이 모범을 보이기 보다는 민간부문 보다 나은 점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성권 제도 사용과 관련한 질문에서는 잘 모른다는 응답이 42.9%로 가장 높았다. 응답자의 연령이나 학력으로 볼 때 이례적인 결과로 볼 수 있는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권리 자체를 주장할 기대를 안하고 있기 때문에 관심이 없거나 혜택 여부에 대한 정보 획득 노력조차 안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기간제 노동자의 경우에는 고용불안으로 인해 출산과 동시에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는 응답이 3분의 1을 넘었다. 여성노동자가 출산육아기에도 계속 일할 수 있도록 출산전후휴가와 육아휴직이 법적으로 보장돼 있음에도 공공부문 조차 여성노동자들의 경력단절을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성희롱 관련 질문에서는 기간제가 무기계약직 노동자에 비해 직장에 알렸다는 비율이 훨씬 높았는데 무기계약직은 해당직장에서 계속 근무하게 되면서 성희롱 피해 사실이 어떠한 방식으로도 영향을 미칠 것을 염려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직장내 성희롱 사실을 직장에 알렸을 경우 65.6%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답한 것이다. 13.3%만이 제대로 조치를 취했다고 답했다. 공공부문이 직장내 성희롱 발생사실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은 ‘생색내기용’?

정부는 상시지속적 업무 종사자를 무기계약직 전환대상자로 선별하고 이에 대해 개인별 평가를 거쳐 전환여부를 결정한다. 개인별 평가에 근무실적, 직무수행 능력 및 태도 등 평가자에 따라 주관성이 개입될 여지가 높다. 이러한 평가기준, 방법, 절차가 자의적이고 비체계적일 가능성이 있으며 평가를 근거로 한 노동강도 강화 및 불합리한 내용과 방식의 근로가 요구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근무평정을 실시한다고 답한 응답자 중 무기계약직 56.7%, 기간제 노동자 60.3%이 근무평정 결과가 징계 혹은 고용계약 해지 사유에 참작되는 경우가 많다고 답했다. 근무평정이 호봉승급이나 교육훈련 및 연수대상자 선정 등 긍정적으로 반영된다고 답한 비율은 20%대에 불과했다.

이번 실태조사에서 또 놀라웠던 결과는 파견용역 고용형태에 대한 것이었다. 파견용역직 노동자 148명 중 56.8%가 해당 업무가 지금 일하고 있는 기관에서 과거(2006년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 이전)에 기간제로 채용하던 일자리였다고 답했다. 응답자 중 절반 이상은 현재 사업장에서 일하는 동안 파견용역업체가 적어도 1번 이상 바뀌었다고 응답했는데, 파견용역업체가 바뀌어도 한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업무가 상시지속적 업무에 해당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또한 현 직장 근무기간도 평균 4년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에는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어 심각한 상황이다.

이번 조사는 전반적으로 무기계약직 전환이 기간제 노동자의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에 근본적 해결이 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태조사 참여자 중 기간제 노동자들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면 전보다 나아지겠지라는 높은 기대감을 갖고 있으나 전환된 무기계약직들은 자신들의 삶이 전보다 획기적으로 나아졌거나 차별이 완전히 해소됐다고 느끼기에는 아직 요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형태에 관계 없이 금품, 교육, 작업조건, 휴가, 휴게시간, 인격적 대우 등과 관련하여 그 차별의 정도가 매우 심하거나 심한편이라는 응답이 매우 높았다.

이와 관련, 심층면접자들은 자신을 ‘소속감을 가질 수 없는 투명인간’, ‘사무실 벽체 같은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한 면접자는 “피라미드 구조처럼 서열화 되는 위계구조 속에서 윗사람은 아래 사람을 무시해도 된다고 사람의 뇌를 조직하는 것이 더 무섭다”고 했다. 이 위계구조 속에서는 제일 밑바닥에 있는 비정규직은 존재하지 않거나, 보이지 않는 존재처럼 취급받게 된다는 것이다.

‘사업폐지나 예산삭감시 배치전환을 통해 가급적 고용을 유지해야 한다’ 등 공공부문 비정규직 관련 개선방안에 대해 응답자의 대부분이 대체로 필요하다고 답했다. 교육훈련 기회 확대, 무기계약직 및 기간제 노동자와 공무원간의 임금 및 처우상의 격차 해소, 호봉 승급 제도 도입 등에 대해 80% 이상이 대체로 필요하다고 답했다. 비정규직 고용문제의 근본적인 개선책은 고용유지와 임금 및 처우개선이라는 두가지 문제로 집약된다고 할 수 있다.

공공부문 인력운용정책 근본적 변화 필요

공공부문 비정규직이 증가하게 된 원인은 정부의 복지서비스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콜센터 상담원, 의료급여관리사, 방문간호사 등 증가한 복지서비스 일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운 것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에 대한 잘못된 통념도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여성 중 많은 이들이 고학력자이거나 자격증이 있는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단순, 반복 업무를 하는 것으로 취급받는다는 것이다. 상시지속적 업무에는 당연히 정규직을 써야 한다는 생각보다 단순, 반복 업무에는 비정규직을 써도 된다는 생각도 문제지만 인건비(세금)을 아끼기 위해 비정규직을 쓰는 것이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문제다.

다산콜센터 상담원은 “없던 일을 우리가 하는게 아니라 원래 서울시 공무원들이 하고 있던 일을 하고 있다. 요새는 단순상담을 하기 보다 서울시 정책 등에 대한 상담을 많이 한다. 민간위탁을 해서 강사들이 교육을 해서는 업무효율성이 오르지 않는다. 비용 측면에서도 비효율적이다”고 말한다.

특히 이번 심층면접에서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시간제 일자리’가 얼마나 악용되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나기도 했다. 무기계약직 전환을 기대했던 방문간호사 면접자는 최근 급여가 삭감되는 시간제 계약직 공무원으로 신규채용한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정부의 무기계약직 전환방침이 법률로 규율되는 것이 아니라 공공기관이나 지자체에서 알아서 무기계약직을 선정하는 시스템이라 해당기관에서 예산이 없다고 하면 강제적으로 규율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또한 시간제 계약직 공무원 제도는 무기계약직 전환에 따른 예산부담을 피하기 위한 고용형태로 악용되고 있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이번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한 11월12일 토론회에서 다음과 같은 정책제언으로 결론을 맺었다. 첫째, 정부의 비정규직 인력 운용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과 가치의 재검토가 필요하다. 공공부문은 민간부문과 추구하는 철학과 가치와 달라야 한다. ‘돈(이윤)보다 생명(사람)’ 이 우선인 것이며 이러한 가치가 공공부문 인력 운용의 근본적 철학이 되어야 한다. 둘째, 무늬만 정규직인 무기계약직은 당사자가 원하는 정규직화 대책으로 대폭 개선되어야 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74%가 전환 제외 대상이 되었는데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자를 전면 확대해야 할 것이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추진을 위해서는 기관에서 임의적으로 처리하지 않도록 관리, 감독이 되어야 하며 중앙정부 예산이 투입될 수 있도록 법률을 제정하고 전환 여부를 법률로 강제해야 한다. 셋째, 간접고용이 확산되는 것을 규율하고 간접고용 노동자도 직접고용으로 정규직화해야 한다. 넷째, 시간제 일자리 양산 정책은 전면 폐지되어야 한다. 다섯째,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이 실효성을 거두려면 상시․ 지속 업무에 기간제 채용을 금지하고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한다. 여섯째, 공공부분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에 대한 인권보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공공부문 여성비정규직은 성희롱, 폭언, 모성권 침해 등 직장 내에서 인권침해를 당하지만 ‘없는 존재’로 취급당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문제를 하소연 할 곳 조자 없는 실정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이중, 삼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므로 공공부문 여성비정규직이 고충을 드러내고 개선을 요구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인권보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송은정 한국여성노동자회 노동정책부장 입니다.
인권오름 제 373 호 [기사입력] 2013년 12월 11일 20:4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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