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 공룡트림] 삶, 죽음 그리고 다시 삶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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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려 하지 마. 다 정해져 있어. 세상의 주인공은 네가 아냐.
이 멋진 세상을 그냥 받아들여. 어차피 넌 이세상의 주인공이 아냐!"

앞이 보이지 않는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솟아오르고 욕이 튀어나올 듯하다. 하지만 책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모두가 날 비웃는 것만 같다. 내 모습이 한없이 초라하기만 하다. 하지만 텔레비전에서는 세상의 중심이 바로 ‘나’란다. 세상은 나에게 똑바로 줄을 서라 다그친다. 세상이 바라는 기준에 나를 맞추느라 헉헉대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 소리친다. ‘가슴 뛰는 삶을 살아라!’ 도대체 나의 청춘은 어떤 모습일까?
가슴 벅찬 허무함을 채워준 수많은 멘토들, 열등감을 한껏 부풀려 나를 채찍질 하는 자기계발서들 속에서 꾸역꾸역 청춘을 살고 있었다. 그때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 나타났다. 거꾸로 눌러 쓴 야구모자, 덥수룩한 수염, 배불뚝이에 말을 더듬는 달빛요정은 내게 말했다.
“세상의 주인공은 네가 아냐!”
꽉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린 느낌이었다. 다시 한 번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다른 사람들은 절대 이야기 해 주지 않는 나의 진솔한 모습. 그의 노래는 다른 사람들처럼 가식적이거나 위선적이지 않았다. ‘나도 너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어. 나도 다 알아.’ 하고 나를 다독였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은 절망스러운 삶과 희망 없는 세상을 노래한다. 한마디로 말해 찌질한 청춘의 삶이다. 하지만 그의 멜로디는 언제나 밝고 경쾌하고 명료하다. 비록 찌질한 삶이지만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겠노라는 다짐이 그의 노래에 담겨있다.
달빛요정의 노래를 통해 나의 삶을 당당하게 바라본다.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나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리고 살아간다.
“덤벼라! 건방진 세상아. 이제는 더 참을 수가 없다!”

삶을 오롯이 바라보는 지혜

『마레에게 일어난 일』(티너 모르티어르 글, 카쳐 퍼메이르 그림/보림 출판사)의 주인공 말괄량이 소녀 마레에게 가장 친한 친구는 할머니다. 할머니는 자신을 닮은 손녀, 마레를 너무나 사랑한다.
어느 날, 할머니가 쓰러지셨다. 한동안 침대에서 누워 계시다 깨어난 할머니는 예전의 모습과 달랐다. 함께 이야기 하고, 뛰어 놀던 할머니가 이제는 병실에서 종일 멍하게 텔레비전만 보신다.
어른들은 할머니를 병실에만 모시려 했다. 그리고 할머니가 하는 말들을 알아듣지 못했다. 마레는 이런 어른들에게 화가 났다. 마레는 할머니의 병실을 예쁘게 꾸미고, 할머니 옆에서 그림을 그리며 함께 놀았다. 어른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할머니의 말들을 마레는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얼마 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른들은 더 바빠졌다. 전화를 하고, 편지를 쓰고 이리저리 바쁘게 다녔다. 어른들은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할머니의 슬픔도 알아차릴 수 없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어 하셨지만 어른들은 고개를 저으며 안 된다고만 했다. 마레는 또 화가 났다. 할머니를 모시고 할아버지에게로 모셔다 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저리 비켜! 너희들이 도와주지 않겠다면, 우리끼리 갈 거야!”

할아버지를 본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셨다. 그리고는 마레를 향해 웃으며 말씀하셨다. “과자.”

불교경전『아함경』에는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는 말이 있다. 첫 번째 화살은 살면서 만나게 되는 시련이다. 우리는 살면서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을 만난다. 죽음, 질병, 실패, 사고 따위의 순간은 첫 번째 화살이 되어 가슴에 박힌다. 이 첫 번째 화살은 이미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피할 도리가 없다. 사람들은 이 첫 번째 화살의 상처를 다스리기보다 두 번째 화살을 만들어 스스로의 가슴을 향해 쏜다. 두 번째 화살은 삶의 시련에 대해 스스로 만들어낸 고통과 슬픔이다. 삶에 좌절하고 비관하게 하는 것은 대부분 이 두 번째 화살에 의한 것이다.

마레는 가족에게 찾아온 첫 번째 화살, 할머니의 병환과 할아버지의 죽음을 당당하게 바라보고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가족들은 첫 번째 화살에 힘겨워하고 곧 두 번째 화살을 만들어 낸다.
마레에게 할머니는 여전히 사랑하는 존재, 할머니일 뿐이다. 알츠하이머병을 갖게 되었어도 말이다. 그래서 할머니의 변화에 당황하지 않고 소통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에게 할머니의 존재는 알츠하이머 환자가 되었다. 할머니의 변화를 받아들이려 노력하기보다 그저 슬퍼하고 힘들어하며 할머니의 병환을 떨쳐내려 하는 데만 애를 쓴다.
할아버지의 죽음에 있어서도 마레는 지혜롭게 두 번째 화살을 만들지 않는다. 할머니와 슬픔을 함께 나누고 담담하게 미소로 할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하지만 정작 어른들은 할아버지를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에 당황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슬픔과 어른으로서 해야 하는 역할 사이에서 갈팡질팡할 뿐이다.
내게 찾아온 시련을 대하는데 있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시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자신에게 설명하고 스스로를 다독여야 한다. 그리고 지혜롭게 삶을 이어가야 한다.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 앞에서 할머니가 마레에게 한 말은 ‘과자’다. ‘과자’는 마레가 세상에 태어나 제일 먼저 한 말이다. 어린 마레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지켜보고 응원해주었던 이가 할머니였듯, 이제는 마레가 할머니를 지켜보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서 삶의 이유를 찾는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삶의 이유가 된다. 삶은 이렇게 계속된다.

슬픔을 모두어 그리움을 만드는 법

죽음과 같은 상실의 과정에서 모든 사람들은 부정, 분노, 타협, 절망, 수용, 이 다섯 개의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무릎딱지』(샤를로트 문드리크 글, 올리비에 탈레크 그림/한울림어린이)는 엄마가 없는 세상을 살아가야하는 아이의 삶을 통해 이 상실의 과정을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다.

첫 번째, 부정. 아침의 커피냄새에 엄마가 있다. 라디오 소리에 엄마가 있다. 지그재그로 꿀이 발라져 있는 빵에도 엄마가 있다. 집안 곳곳에는 이렇게 엄마가 있는데... 아이와 아빠는 엄마가 죽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그래서 아침에는 더 이상 커피냄새가 나지 않는다. 라디오 소리도 나지 않는다. 아빠는 빵에 지그재그로 꿀을 발라 주지 못한다.

두 번째, 분노. 엄마는 나를 떠났다. 너무나 사랑한다고 했으면서, 엄마는 나를 떠났다. 아이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 “엄마가 돌아올 수 없다면 난 이제 엄마 아들이 아니라고, 이렇게 빨리 가 버릴 거면 나를 낳지 말지. 뭐 하러 낳았느냐고.” 아이는 울었다.

세 번째, 타협. 아빠도 엄마가 없는 세상을 사는 것이 쉽지 않다. 아이의 농담에 웃지 못한다. 모든 것이 다 끝난 것만 같다. 삶의 구석구석에 있는 아내가 떠오를 때면 어김없이 눈물이 흐른다.
아이는 엄마가 없는 삶을 아빠와 함께 살아가야 함을 알게 된다. 아빠의 눈물을 닦아주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걱정 마, 아빠. 내가 아빠를 잘 돌봐줄게.”

네 번째, 절망. 아이는 삶에서 엄마가 잊혀져가는 것이 두렵다. 창문을 열면 집안에 배어 있는 엄마의 냄새가 사라지는 것 같다. 다른 소리들을 들으면 엄마의 목소리가 지워질 것만 같다. 그런데 내가 아플 때마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괜찮아, 우리 아들. 누가 우리 착한 아들을 아프게 해? 넌 씩씩하니까 뭐든지 이겨낼 수 있단다.”
마당을 뛰어다니다가 무릎에 상처가 났다. 또다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는 딱지가 앉기를 기다렸다가 손톱으로 딱지를 뜯어낸다. 내가 아파야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까.

다섯 번째, 수용. 다시 무릎에 딱지가 생길 즈음 할머니가 오셨다. 여전히 아이는 엄마를 잊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눈물을 쏟아내고 몸부림을 쳤다. 그때, 할머니는 아이의 손을 잡아 가슴위에 올려주며 말하셨다.
“여기, 쏙 들어간 데 있지? 엄마는 바로 여기에 있어. 엄마는 절대로 여길 떠나지 않아.”
아이와 아빠는 엄마를 가슴에 담아두기로 한다. 그리고 엄마가 없는 세상을 사는 법을 조금씩 배워나간다. 그러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무릎의 딱지가 떨어지고 매끈한 새살이 돋아나 있었다.

『무릎딱지』를 보며 가장 크게 공감한 것은 ‘슬픔은 이겨내고, 견뎌내야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아이와 아빠의 삶을 통해 본 슬픔은 내게 주어진 세상을 진솔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이었고, 삶의 순간에 의미를 담아내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리고 삶의 곳곳에 흩어져 있는 슬픔을 모아 가슴에 품었을 때, 그 슬픔은 그리움이 되고 그 그리움은 다시 삶을 살게 하는 힘이 되어주었다.
슬픔과 고통은 분명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 이 힘든 과정이 지나고 나면 더 현명하고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딱지가 앉은 상처를 가만히 기다리다 보면, 딱지는 스스로 떨어지고 그 자리에 새살이 돋아나듯이 말이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공부는 내가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의문을 갖고, 진정 내가 알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정의로움, 사랑, 평등, 자유, 삶, 죽음 따위에 대해 모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나의 삶과 잇는 순간 머리가 하얘지고, 행동하는데 있어 주저하는 경험을 하곤 한다. 예를 들어 정의로워야 함을 알고 있지만 힘센 자의 부당한 폭력을 모른 척 하거나, 사랑이 이해와 희생임을 알고 있지만 아집과 이기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아프게 한다. 또 평등과 자유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생각하지만 정작 나와 다른 생각과 기준을 가진 사람들을 비난하고 꾸짖는다. 앎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선 자신의 앎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자신이 아는 대로 끊임없이 실천하고 연습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죽음에 대해 안다고 생각한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다.’ 어찌 보면 죽음은 충격적이고 절망적인 사건이 아니다. 자연스러운 것이다. 삶을 살다 보면 언젠가는 만나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맞닿았을 때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상실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지혜롭게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삶의 순간순간 찾아오는 크고 작은 상실을 진지한 자세로 경험하고 몸에 익혀 두어야 한다. 죽음 뒤에 또 다시 이어지는 삶을 위해서 말이다.
어른에게도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이들은 분명 죽음에 대해 혼란을 겪고 받아들이는데 버거움이 있을 것이다. 『무릎딱지』는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언젠가는 만나게 될 삶의 순간, ‘죽음’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할 수 있게 하는 좋은 책이 될 것이다. 그리고 ‘죽음’을 지혜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연습을 할 수 있는 좋은 연습장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김인호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의 활동회원입니다.
인권오름 제 410 호 [기사입력] 2014년 10월 08일 23: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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