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라의 인권이야기] 주목받지 못한 삶, 가려진 죽음들을 기억하자

박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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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의 겨울 중 올해가 가장 추운 것 같다. 그래서일까? 한파로 인해 땅바닥의 냉기를 온몸으로 받아 안고 웅크린 채 간신히 새우잠을 주무시는 거리홈리스와 벽 틈새로 들어오는 찬 공기에 코끝이 시려 제대로 된 잠을 잘 수 없는 쪽방에 사는 홈리스의 안부가 더욱 궁금해지는 때이다.

날씨 변화가 변덕스럽기 때문에 홈리스가 건강을 잘 지키려면 잘 먹고, 잘 자고, 잘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맨몸뚱이로 거리에서 생활하는 사람에게,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쪽방 등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에게 이 쉽고도 쉬운 기본적인 앎을 실천하기란 어렵기만 하다. 본인이 알아서 균형 잡힌 음식을 잘 챙겨먹고,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푹 자고, 또 제때 잘 치료받는다는 것은 보기 좋고 듣기 좋은 말뿐인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노숙인등법(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도 만들어지고, 어느덧 시행 2년이 지났지만 홈리스의 현실은 아직도 나아지지 않았다.

진료 진입장벽으로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다 간신히 들어간 병원에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홈리스가 있다. 방을 얻고 싶어도 시설만 주구장창 권하는 통에 거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홈리스, 가뜩이나 주거비가 부담되는데 그 쪽방마저 리모델링되는 통에 다른 살 곳을 알아봐야 하는 홈리스가 있다. 또 허기진 배를 안고 멀리 와서 급식을 먹는데도 잦은 취소로 헛걸음을 하기도 하고 영양가 없는 음식에, 종교도 다른데 밥을 먹으려면 그 종교행사에도 어쩔 수 없이 참여해야 하는 홈리스가 있다. 이밖에도 많은데...... 참......
이들의 삶은 법이 있기 전과 후가 똑같다. 여전히 제자리걸음 중인 홈리스의 삶에서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를 정확히 보고, 듣고, 바꿔가는 것이 필요하다. 상처를 만드는 모가 난 곳을 치우거나, 부드럽게 갈아주거나, 다치지 않게 꼼꼼하게 덮어씌울 수 있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홈리스복지는 홈리스라는 상처에 덕지덕지 반창고만 붙여대는 꼴이라 아쉬움이 많을 수밖에 없다. 부실한 홈리스지원 체계가 홈리스들이 빈곤을 벗어나지도 못하고 속절없이 죽음을 맞이하게 하는 데 한 몫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보니 다수는 자신의 얼굴을 담은 사진 한 장 남겨둘 여유도, 자신의 삶을 타인과 공유할 시간도 가지지 못한 채 죽어갔다. 이들도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땅 위에 똑같은 목숨값을 가지고 태어났건만, 우리는 이들의 삶을 주목하지 않았고, 높은 빌딩과 눈부시게 화려한 도시의 불빛에 가려진 이들의 죽음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니 애써 눈치 채지 않으려 노력했다.

얼마 후면 낮은 짧고 추운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冬至)가 찾아온다. 매년 최극단의 빈곤에 놓인 채 죽어가야 했던 수많은 홈리스를 추모하고, 살아남은 이들의 결단이 요구되는 홈리스 추모제(원래 명칭은 ‘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 추모제’였다)도 진행될 것이다. 그 자리에 함께하자. 빈곤과 차별로 인해 더 많은 홈리스가 죽어가지 않도록, 이들의 삶을 공유하고 그 얼굴들을 기억하자.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삶들을 주목하고, 쓸쓸한 죽음을 위로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홈리스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자. 그렇게 된다면, 겨울의 차가움이 풀리고 봄의 따뜻함이 찾아올 때쯤 아니면 조금 더 늦어지더라도 지금의 홈리스 현실이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 덧붙여, 불과 한 달 전까지 만나면 웃으며 이야기 나눴던 사랑나라 님, 갑작스럽게 좁고 캄캄한 쪽방 생활을 마치신 것도 놀랐지만,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주신 그 마음까지 놀랍습니다. 이제는 아프지 않고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박사라 님은 홈리스행동 활동가 입니다.
인권오름 제 419 호 [기사입력] 2014년 12월 12일 0: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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