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 공룡트림] 나쁜 어른들 때문에 어린이는 불행할까? 작품집 『하위권의 고수』의 불편함 ①

이기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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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은 2015년이 되어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것은 단지 세월호와 관련된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다. 세월호 사건 이후에도 학교와 사회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보는 어른들의 시선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어린이와 청소년의 생각과 주장은 참고 사항일 뿐, 그들의 삶과 관련된 모든 것은 어른들이 판단하고 결정한다. 그래서 좋은 어른과 좋은 교사, 좋은 부모만 만나면 어린이와 청소년의 삶은 행복할 수 있다고 쉽게 해결책을 제시한다. 과연 정말 그럴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적극적인 어린이와 청소년의 모습은 어린이 책에서 거의 그려지지 않는다. 스스로 일인 시위도 하고 서명도 받으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아이들이 현실세계엔 분명 존재하지만 어린이 책의 아이들은 대부분 수동적이다. 그래서 실제로 어린이 책 원고 중에 학교 앞에서 일인 시위를 하는 어린이가 나오는 장면을 바꾸어 달라고 요청하는 출판사도 있다. 학부모들이 불편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불편함은 사실 어린이는 이래야 한다는 어른들의 닫힌 사고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러한 닫힌 사고에 어린이 책들도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세월호 사건이 후 나온 어린이 책 중 작품집『하위권의 고수』는 현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어린이 작가 열 명이 ‘아이를 살리는 10가지 약속’이라는 어린이 잡지『고래가 그랬어』의 캠페인의 취지에 따라 작품을 연재한 것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고래가 그랬어』의 ‘아이를 살리는 10가지 약속’은 다음과 같다.
1. 지금 행복한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행복합니다.
2.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공부는 '마음껏 놀기'입니다.
3.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게 성공입니다.
4. 아이와 노동자가 행복해야 좋은 세상입니다.
5. 교육은 상품성이 아니라 인간성을 키우는 일입니다.
6. 대학은 선택이어야 합니다.
7. 아이 인생의 주인은 아이입니다.

과연 이 책은 현재 우리나라 대표 어린이 작가들은 ‘어린이를 살리는 10가지 약속’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그리고 어린이 삶에 대한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하위권의 고수』를 꼼꼼히 살펴보자.

응원과 위안의 목소리를 넘는 새로운 시선은 없을까?

이반디 작가의『별난 개구리 별개』는 말하는 개구리 별개를 우연히 만나게 된 만수의 이야기다. 할머니와 함께 사는 가난한 만수는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다. 그런데 만수는 별개를 만나고 장기 자랑에서 개구리 소리를 흉내 내고 작은 자신감을 얻게 된다. 별개의 갑작스런 등장과 퇴장은 개연성이 부족하지만 남들이 보잘 것 없게 여길 만하는 작은 성공의 소중함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다는 점에서 이 글은 긍정적이다. 그런데, 이 글에서 고민이 생긴다. 만수의 소심함,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만수의 현재는 만수 스스로가 만든 것일까? 별개가 등장해서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고 격려해주기만 하면 만수의 삶은 앞으로 행복할까? 빈곤과 소외의 문제는 과연 개인의 다짐과 희망으로 이겨낼 수 있는 것일까? 이런 현실적 문제에 대한 대안은 어린이 문학은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단순히 응원과 위안의 목소리를 넘는 새로운 시선은 없는 것일까?

송미경 작가의『벌레 만들어 드립니다』는 세 명의 뚱뚱한 아이들이 엄마들의 성화에 못 이겨 강제로 벌레스쿨에 들어가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아이들은 벌레스쿨에 들어가 나비가 그려진 상자의 과자를 먹고 모두 애벌레가 되어 버린다. 우리 아이가 일벌레, 공부벌레 같은 벌레가 되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다는 엄마들의 모습의 모습이 성공하기 위해서 어떤 일이라도 시키는 오늘날의 부모들을 상징하고 있고 벌레가 되어서라도 부모들의 간섭을 피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은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 글의 아이들의 모습을 단순히 통제를 벗어난 자유를 만끽하는 아이들의 모습으로 보기엔 불편함이 존재한다. 우선 아이들은 이 자유를 스스로 선택 하지 않았다. 벌레 스쿨에 강제로 보낸 것도 어른들이고 벌레스쿨에서 아이들을 벌레로 만들어버린 것도 어른이다. 벌레가 되고 싶다 아니면 되고 싶지 않다를 판단하고 선택하는 권리는 애당초 이 아이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냥 그들은 갑자기 벌레가 되어 누군가 만들어준 이상한 자유를 누리고 있을 뿐이다. 이것이 정말 행복 할까? 작가는 벌레가 된 이후에 아이들의 삶은 보여주지 않고 이야기를 끝맺고 있다. 이후의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아이들은 정말 스스로 자유로울까? 작가 스스로도 적절한 답을 찾지 못한 건 아닐까? 어른들이 만든 통제와 어른들이 만든 자유는 결국 어린이 입장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는, 같은 것이 아닐까?

어린이가 노력하면 되는 걸까?

김리리 작가의『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는 우연히 이무기를 만난 미르가 소원을 말하고 나서 엄마, 아빠의 간섭 없이 살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소원을 빈 이후 혼자 살게 된 미르는 처음에 신나게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지만 집안에 쓰레기가 가득 차는 등 문제들이 생기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점차 혼자 생활하는 것에 익숙해진다. 어린이가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의 좋은 점이다. 하지만 고민할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르의 소원은 단지 부모의 과도한 간섭과 싸움이 없는 것인데 이무기는 그냥 부모들을 사라지게 하는 것으로 해결한다. 이는 마치 부모들이 존재하는 한 부모의 과도한 간섭은 어쩔 수 없다는 의미로 읽히기 쉽다. 게다가 미르는 나중에 부모가 보고 싶어 이무기에게 소원을 철회할 것을 요청한다. 결국 부모는 어떤 변화나 반성 없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된다. 오히려 변한 것은 미르 쪽이다. 이 글에서는 미르의 변화가 부모의 변화를 이끌 것이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끝맺고 있지만 그 변화가 자기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는 아이로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뉘앙스는 불편 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 알아서 하는 아이가 아니라면 아이들의 자기 결정권은 존중받지 않아도 되는 걸까? 어른들의 인정과 존중을 받기 위해 결국 어린이가 노력해야만 하는 걸까?

또 성공만 이야기하는 부모들이 사실 어렸을 때 기억들을 이무기에 의해 모두 빼앗겨서라는 설정으로 합리화 시키는 면이나 성공을 쫓는 인간을 비판하는 이무기가 용이 아닌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는 모습 등은 이 글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의도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도 이 책의 한계이기도 하다.

김기정 작가의『꼴찌를 찾습니다』은 경쟁 중심의 학교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이 구현된 이야기다. 박달 선생님은 꼴찌로 교사 시험에 붙어서 교장 선생님에게 3개월만 근무 할 수 있는 허락을 받는다. (사실 학교에서 교장이 교사를 임용할 권한이 없고 등수와 상관없이 시험에 합격하면 교사 임용은 보장받게 된다) 이 이야기에서는 박달 선생님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꼴찌들이 모인 이름도 없는 반을 맡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교장 선생님이 꼴찌한 반 아이들을 학교에서 내쫓는다는 설정이 경쟁 중심의 학교에 대한 우화로 읽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가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경쟁 교육의 대안이 재미있는 수업을 통해 꼴찌 반이 일등반이 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교육의 목적은 단순히 일등이 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면 작가는 좀 더 신중하게 교육에 대한 고민들을 풀어내야 했다. 대안학교에 대한 평가조차 명문대를 얼마나 진학하는가로 판단하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 교육을 바라보는 시선이라면 이에 맞서 삶과 일의 가치를 알고 정의에 목소리를 높이는 당당한 노동자를 키우는 교육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을 가진 어린이 작가의 시선이 이제는 필요한 때가 아닐까?

어린이와 함께 만드는 희망에 대해 고민해보자.

남찬숙 작가의『아무도 우리에게 사과하지 않았다』는 학교에서 일어난 교장의 어린이 성폭력 사건을 다루고 있다. 교장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어른들의 시선과 어린이들의 시선 그리고 학교에 대응 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으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어린이의 생각과 주장을 철저히 배제하는 현실적인 학교의 모습, 어른들의 태도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면에서 다른 작품들 보다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도 사과 하지 않고 물어보지 않는 세상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하면 좋을까? 사실 이 부분에 대해 작가는 답을 하지 않고 있다. 작가의 이야기가 아쉬운 점은 여기에 있다. 글을 읽는 어린이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문제 외에 다른 가능성들을 이야기하지 못한다면 이 글을 굳이 읽을 필요가 있을까? 사실 아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학교의 꽉 막힌 구조, 선생님들과 부모님들의 논리에 대해 이미 충분히 알고 있고 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어른들은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손을 내밀고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이제는 어린이 작가들이 현실을 넘어 어린이와 함께 만드는 희망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다음에 계속>
덧붙이는 글
이기규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회원입니다.
인권오름 제 422 호 [기사입력] 2015년 01월 14일 18:4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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