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 공룡트림] 나쁜 어른들 때문에 어린이는 불행할까? 작품집 『하위권의 고수』의 불편함 ②

이기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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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 공룡트림] 나쁜 어른들 때문에 어린이는 불행할까? 작품집 『하위권의 고수』의 불편함 ②

하위권에서도 하수라면?

나병승 작가의 『하위권의 고수』는 학원비를 벌기 위해 자기 반에서 가장 공부를 못하는 친구 우재에게 과외를 시켜주는 주인공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엄마가 보내주지 않는 좋은 학원에 다니기 위해 과외를 시작한다. 우재는 할머니와 함께 컨테이너에 살고 있는 가난한 집 아이이다. 주인공은 공부도 하지 않고 엉뚱한 우재의 모습에 실망하지만, 우재가 책을 많이 읽고 꿈을 가진 친구라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주인공은 우재가 돌대가리가 아닌 하위권의 고수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하위권의 고수』 는 작가 특유의 재미있는 문체와 여운 있는 이야기가 매력적이지만, 안타깝게도 이야기 속 아이들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시험을 보고 등수를 매기며 상위권에는 상을 주고 꼴등은 나무라는 교사가 있는 학교의 모습도 낯설지만, 책을 좋아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가난한 아이인 꼴찌 우재도 학교에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빈곤 어린이는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철저히 소외되는 것이 현실이다. 책을 읽은 기록조차 스펙으로 수치화되는 요즈음, 도서관을 찾아가고 책을 읽는 것도 빈곤 어린이에겐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 컨테이너에 살아도 꿈을 잃지 않는 주인공이란 이야기 속에서나 등장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래서 이 책 『하위권의 고수』 의 우재보단 비슷한 등장인물이 나오는 유은실의 『만국기 소년』이 현실에 더 가깝다.
만약, 우재가 책도 읽지 않고 꿈도 없는, 하위권에서도 하수라면 작가는 우재에게 어떤 희망을 발견할까? 한국의 어린이 작가들은 이 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어야 할까? 단지 희망을 잃지 않고 꿈을 가지라고 이야기하면 되는 걸까? 불행히도 그러기엔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엔 우재보다 하위권에 있는 아이들이 더 많다.

김중미 작가의 『우리, 다 같이 살아요』는 귀농한 아빠와 도시에 남은 엄마를 둔 여자아이의 이야기다. 7살까지 할머니와 농촌에서 살았던 주인공은 아빠와 농촌에서 살고 싶지만 잘나가는 중소기업의 과장인 엄마와 공부밖에 모르는 동생 지훈이는 도시의 삶을 원한다. 이렇게 바뀌지 않을 것 같던 농촌과 도시라는 대립 구도는 일밖에 모르던 엄마가 암 수술을 받게 되면서 흔들리게 된다. 주인공과 동생 지훈이가 아빠가 있는 농촌 마을에 잠시 살게 된 것이다. 이 때 부터 동생 지훈이가 변화하기 시작한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도시의 경쟁 속에서 벗어나 넉넉한 자연이 있는 농촌의 삶을 살 것을 권유한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도시의 생활을 청산하고 농촌으로 가게 되면 삶의 문제는 정말 해결되는 것일까? 암에 걸릴 정도로 억척같이 일하는 엄마가 욕심을 버리면 가족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일까? 작가의 해법은 너무 간단하다.
“엄마가 너희에게 일류대학에 안 가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여기서 살 수 있지……. 도시 생활에서는 돈 들어갈 일이 많지만, 시골 살면 그런 돈은 필요 없어. 좀 불편하고 좀 가난해지긴 하겠지만, 그 대신 여유롭고 건강하게 살 수 있어.”
하지만 귀농한 아빠의 목소리로 대신 전달하는 작가의 목소리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농촌의 삶은 정말 여유로운가? 농촌의 삶은 정말 건강하고 행복할까? 물론 작가가 그려낸 주인공과 같이 도시에서도 여유로운 삶을 살았다면 그들의 귀농은 훨씬 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상 한국의 농촌과 도시는 모두 빈부의 문제에 자유롭지 못하며, 산골 마을에도 학원버스가 다니는 요즘, 경쟁 교육의 문제는 도시와 농촌을 초월한다. 왕따 문제, 외지에서 온 아이와 토착민 가정의 아이 사이의 갈등 등 농촌 학교에서도 여러 가지 갈등과 문제가 발생한다. 또한,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착취는 오히려 도시보다 농촌에서 더 심각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정말 좀 불편하고 좀 가난해지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모두들 농촌에서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을까? 여유로운 농촌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중산층이 아닌 도시빈민에게도 농촌은 행복한 곳일 수 있을까?
덧붙여 아이들의 불행을 엄마의 욕심 때문이라고 그려낸 시선도 불편하다. 아이들의 교육 책임은 정말 엄마에게만 있는 것일까? 아이들의 생활과 교육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엄마의 억척은 그냥 욕심이라고 치부해야 할까? 혼자 귀농하여 농촌의 삶을 만끽하고 아빠의 모습은 정말 바람직하게 그려져도 되는 것일까?

강요된 삶이 아니라...

박관희 작가의 『웃음소리』는 전교 어린이회장 선거를 준비하는 준엽이가 겪는 이야기다. 준엽이는 억척스런 엄마 때문에 고생이다. 전교 어린이회장이 되기 위해 대학교수에게 연설을 배우며 거액을 들여 선거를 준비한다. 하얀 셔츠와 양복 그리고 구두까지 갖춰 입으며 완벽하게 준비했던 준엽이는 진흙탕 싸움을 하는 아이들 사이를 지나치다 옷이 더럽혀지게 되면서 자신에게 씌워진 갑갑한 굴레를 벗어던진다.
학교 안에서 거의 일어날 수 없는 진흙탕 싸움이라는 사건의 등장과 갑작스러운 결말은 아쉽지만, 어른들에 의해 강요된 삶을 살아가는 아이를 그린다는 점에서 『웃음소리』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움은 남는다. 준엽이는 회장 선거에서 아이들에게 과연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작가는 결말에서 준엽이가 자신이 할 말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다고 끝맺고 있지만, 작가 스스로도 준엽이가 자신 있게 할 말이 무엇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진흙탕 싸움, 자유에 대한 단 한 번의 경험만으로 준엽이가 원하는 삶을 살지에 대해서 여전히 의문이 들기 때문은 아닐까? 자유에 대한 깨달음과 갈망만 있으면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펼쳐진 견고한 학교 시스템과 교육 현실을 헤쳐갈 수 있을까? 아이들은 자유를 경험하지 못해서 침묵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마음껏 낼 수 없는 곳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준엽이의 외침이 변화의 싹이 되기 위해서는 작가의 고민이 한 걸음 더 나가야 하지 않았을까?

배유안 작가의 『낮도깨비가 돌아왔다』는 가족들에게 ‘낮도깨비’라고 불리는 삼촌을 처음 만나는 나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이야기다. 작가는 이야기를 통해 심장이 울리는 일을 하는 사람을 ‘낮도깨비’라 명명하며 ‘낮도깨비’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작가의 이런 강한 주장은 이야기를 매끄럽지 못하게 하는 단점으로 드러난다. 주인공인 나는 컴퓨터와 인터넷을 자유롭게 다루며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삼촌이 ‘낮도깨비’니까 뿔이 났을 거라고 상상을 하기도 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는 단순히 아이들의 순진무구함으로 이해하기엔 개연성이 부족하다. 가족들은 ‘낮도깨비’라 부르며 삼촌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불편해하지만, 막상 삼촌이 집에 왔을 땐 갈등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점 등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함께 고민하기 위한 이야기라기보다는 가르치기 위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소수자인 외국인 숙모에 대한 작가의 서술에서는 긍정적인 면이 보인다. 지금껏 우리 어린이 책 속의 소수자들은 차별의 대상이거나 동정의 대상 혹은 영웅적 능력을 발휘하는 등 특별한 인물이거나 문제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낮도깨비가 돌아왔다』의 외국인 숙모는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등장한다는 점에서 이후 어린이 책 작가들이 중요하게 보아야 할 부분이다.

김남중 작가의 『이륙준비』는 건담 프라모델이 취미인 나와 아빠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나는 아빠 몰래 건담 프라모델을 만들고 엄마는 아빠가 이 사실을 알게 될까 봐 전전긍긍한다. 할머니는 아빠의 화를 가라앉혀줄 거라며 불에 탄 플라스틱 덩어리를 나에게 준다.
건담 프라모델에 대한 현실적이지 못한 묘사나 할머니가 오랜 시간 플라스틱 덩어리를 가지고 있다는 설정 등이 조금 걸리지만, 어렸을 때 아버지에 대한 상처와 미움을 가진 아빠와 주인공 나 사이의 갈등과 화해를 매끄럽게 다루고 있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이해 못 하는 어른들의 폭력이 어떻게 아이들에게 상처로 남게 되는지, 폭력이 어떻게 대물림될 수 있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점은 이 이야기의 장점이다.

아이들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지금까지 『하위권의 고수』 에 실린 열 편의 이야기들을 살펴보았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어린이 작가들이 새로운 고민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기에 이 책은 일단 긍정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건, 이 작품이 대부분 좋은 어른들만 있으면 아이들의 삶은 변할 거라는 생각에 여전히 머문다는 점이다. 좋은 어른과 좋은 부모도 필요하지만, 아이들이 스스로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와 공간도 중요하다. 하지만 학교와 교육시스템 어디에도 아이들의 참여가 보장되지 않는다. 어린이가 스스로의 삶의 주인이 되지 않는다면 좋은 어른만으로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어린이 책 작가들이 어린이의 참여, 어린이와 함께 만드는 세상에 대해서도 더 많이 목소리를 높인다면 세상이 훨씬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아울러 이 책에 등장하는 어린이들이 단 한 편 『별난 개구리 별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중산층 이상의 어린이가 주인공이라는 점도 매우 아쉽다. 이 책에서 한 걸음 더 나가 많은 작가들이 어린이의 참여뿐만 아니라 가난한 어린이들의 삶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중에서 출발한 어린이 책들을 더 많이 쓰는 기회가 되길 소망해 본다.
덧붙이는 글
이기규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회원입니다.
인권오름 제 430 호 [기사입력] 2015년 03월 18일 12: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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