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 공룡트림] 서로 함께

치마를 입은 남자아이,「꽁치의 옷장엔 치마만 100개」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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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소망은 문명의 가장 오래된 제도 중 하나로부터 배제되어 고독함 속에 남겨지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법 앞에서 동등한 존엄을 요청하였다. 연방헌법은 그들에게 그럴 권리를 부여한다.”

2015년 6월 25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동성결혼 합헌을 결정했다. 판결이 나오자 기자들은 대법원 판결문을 들고 힘껏 달려 이 사실을 전했다. 법원 밖에서 판결을 기다리던 성소수자와 인권활동가들은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SNS와 인터넷은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빛깔로 가득했다. 이 소식은 우리 사회에도 꽤 큰 이슈가 되었다. 우리 사회의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을 다시금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유명 연예인의 커밍아웃, 김조광수 감독 커플의 결혼, 퀴어문화축제 등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조금씩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는 아직 낯선 개념이다. 사회구성원으로서 그들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너무도 부족하다. 또 한편으로는 성소수자가 우리 사회에 해악을 가져올 것이라 믿고 이를 염려하며, 더 나아가 그들의 존재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다. 서울시청 광장에서 있었던 퀴어문화축제에서는 어느 기독교 단체가 반퀴어를 외치며 맞불 집회를 열었고, 대구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서는 한 보수단체의 회원이 인분을 뿌리며 방해했다. 얼마 전에는 ‘무민(Moomin)’의 작가 토베 얀손이 레즈비언이었다는 사실을 숨겼던 출판사가 여론의 빈축을 산 일이 있었다. 10년 전부터 제정이 추진된 ‘차별금지법’은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이라는 두 단어의 포함 여부에 대한 논쟁으로 아직도 제정되지 못하고 있다.

치마를 입은 남자아이

「꽁치의 옷장엔 치마만 100개」 (이채 글, 이한솔 그림/리젬)는 우리나라에서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담은 첫 번째 동화다. 우리 사회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성소수자의 존재를 일러주고, 그들의 삶을 이야기하고자 한 노력만으로도 이 책은 큰 의미를 담고 있다.

“꽁치는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치마를 입고 아빠가 구워준 달걀 프라이를 먹고 형이랑 마당에서 농구를 하고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에 갑니다.”

꽁치는 남자아이다. 하지만 옷장에는 치마가 가득하다. 꽁치는 언제나 치마를 입고 학교에 간다. 담임선생님은 꽁치의 모습이 탐탁스럽지 않다. 하지만 친구들은 치마를 입은 꽁치의 모습이 이상하거나 어색하지 않다. 꽁치와 친구들은 함께 공부하고 함께 놀이를 한다.
어느 날, 꽁치는 ‘사과소녀 선발대회’ 포스터를 보게 된다. 꽁치는 설레는 맘을 갖고 열심히 대회를 준비한다. 하지만 그때, 엄마는 꽁치에게 자신의 걱정과 염려를 전한다. 그리고 꽁치에게 치마를 입지 말라는 부탁을 한다.
꽁치의 옷장에 치마가 사라졌다. 그리고 일상에서 꽁치가 사라졌다. 아침 식탁에도, 마당에도, 학교에도 언제나 그곳에 있던 꽁치가 없다. 친구들은 사라진 꽁치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치마가 사라져 학교에도, 사과소녀 선발대회에도 나갈 수 없는 꽁치를 위해 치마를 찾아준다. 꽁치는 친구들이 전해 준 치마를 입고 대회에 참가한다.
사과소녀 선발대회에 나간 꽁치. 하지만 관객들은 꽁치의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꽁치의 모습을 보고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그때, 관객석에서 큰 소리가 들려온다. 가족들이 꽁치를 응원하러 온 것이다.

“치마 입은 꽁치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

꽁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가족과 친구들의 태도는 맘을 뭉클하게 한다. 무엇보다 꽁치의 정체성이 존중되지 않고 부정되었을 때, 꽁치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일상마저 무너지게 된다는 표현은 우리의 삶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성소수자로서의 삶

이 책이 가진 의미와 기대만큼이나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크다. 이야기는 꽁치의 이야기지만, 정작 꽁치의 생각과 목소리,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와 태도가 담겨있지 않다. 꽁치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은 꽁치 자신이 아닌 가족과 친구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언제나 꽁치를 옹호하고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 꽁치의 소극적이고 타율적인 태도가 성소수자의 삶을 얼마나 설명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성소수자를 인정하고 그들을 대하는 태도를 설득하는 데 머물러 있다.
체육시간에 꽁치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여자탈의실로 향했다. 하지만 선생님의 제지로 남자탈의실로 가게 된다. 친구들은 힘을 합쳐 꽁치를 여자탈의실로 보낸다. 꽁치가 여자탈의실로 향한 것은 성별 정체성과 관련된 것이다. 꽁치가 치마를 좋아한다는 것만으로 설명되기 어려운 개념이다. 왜 꽁치는 여자탈의실로 가려고 했는지, 친구들은 왜 꽁치를 그곳으로 보내고자 했는지를 공감할 수 있는 좀 더 친절한 설명이 필요하다. 또 여기에서 꽁치가 자신의 정체성을 직접 표현하고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 없이 친구들의 행동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쉽다.
꽁치는 옷장에서 치마가 사라지자 학교에 가지 못하고 대회에도 참여하지 못한다. 결국, 친구들이 꽁치에게 치마를 찾아주고 대회장으로 데려가 주었다. 여기에서도 꽁치는 삶에 있어 주체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치마가 사라지자 꽁치가 한 일은 벌거벗은 채로 집안에 머무는 것이었다. 치마가 꽁치의 성별 정체성을 상징하는 소재지만, 꽁치가 치마만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모습은 안타깝다. 그리고 이번에도 좌절된 순간을 벗어나게 되는 것은 역시 친구들의 도움이다.

꽁치의 이야기를 보면서 문득,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의 주인공 동구의 한 마디가 떠올랐다. 동구의 단짝친구 종만이는 자신의 막막한 진로에 대해 푸념을 늘어놓고는 여자가 되고 싶어하는 동구에게 ‘너는 되고 싶은 것이 있어 부럽다’는 말을 한다. 동구는 화를 내며 말한다.

“나는 뭐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살고 싶은 거야.”

많은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성적 지향을 받아들이고 정체성을 수립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태어나면서 당연하게 주어진 것, 가장 근본적인 것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혼란스러워한다. 남들과는 다른 성적 지향에 대해 죄책감과 고독감을 갖는다.
영화를 통해, 또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본 성소수자들의 삶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내게 주어진 것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내가 당연하다 생각한 것을 당연하게 행하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게 했다. 그들에 대해 알아가고 그들의 고민에 귀 기울이면서 성소수자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고 조금씩 공감하게 되었다.
꽁치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확립해가는 과정과 그에 따른 고민들이 이야기에 묻어났다면, 아이들과 성소수자들에 대해 그들의 삶과 고민에 대해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았을까.

우리의 거리

심리학 용어에 ‘고슴도치 딜레마’라는 것이 있다. 이는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우화에서 비롯된 말이다.
어느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 두 마리가 겨울잠을 자기 위해 한 굴에 들어왔다. 고슴도치들은 너무 추워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서로의 온기를 나누어 따뜻했지만, 서로의 가시가 너무나 따가워 이내 떨어졌다. 떨어진 고슴도치들은 다시 추위에 떨었다. 결국, 둘은 다시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이렇게 몇 번을 반복한 고슴도치들은 적절한 거리를 찾을 수 있었다. 서로의 온기를 나누면서, 서로의 가시를 감내할 수 있는 거리를.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는 낯선 개념이다. 아직 성소수자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그에 따른 갈등은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숙제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생김새, 가치관, 욕구, 취향 등 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러한 다양성은 때때로 서로에게 가시가 될 수 있다. 상대의 가시가 두려워 상대의 존재를 부정하고 멸시한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함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서로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용기를 내어 낯섦에 기꺼이 부대껴야 한다. 서로가 부대끼고 또 부대껴 서로를 알아가야 한다. 고슴도치들이 적절한 거리를 찾아 온기를 나누듯, 서로가 가진 다름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닮음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꽁치의 이야기는 분명 다름에 대해 한발 다가가 닮음을 찾기 위한 노력이다. 앞으로 성소수자를 이해하고 그들의 삶을 공감하며 함께 살아갈 용기를 품을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김인호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의 활동회원입니다.
인권오름 제 450 호 [기사입력] 2015년 08월 04일 20: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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