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김형준의 못 찍어도 괜찮아] 꽃 만져보기

박김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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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만에 정신보건센터 회원분과의 사진 수업을 시작합니다.
"잘 지내셨죠? 오늘은 사진으로 자기소개를 해볼까 해요. 제가 말씀드리는 거 한번 써보실래요?"
"뭐?"
"일단 자기가 잘하는 것 한가지 이상 적어보세요."
'잘하는 거 없어'라는 대답을 하실 줄 알았는데, 말하기가 무섭게 볼펜으로 써내려가시네요.
"어떤 거 쓰셨어요? 어떤 일을 잘하세요?"
"소 여물 먹이는 풀 자르기."
"와~ 처음 들어봤어요. 풀 자르기 잘하시는군요. 언제까지 소 키우셨어요?"
"십 년 전."
"재미나네요. 그럼 이번엔 어떤 걸 좋아하는지 써주세요."
"응."
"와~ 선생님. 세 개나 쓰셨네요. 어떤 거 쓰셨는지 읽어주시겠어요?"
"응. 꽃 보는 거, 꽃 보고 좋아하는 거, 꽃 만져보는 거."
차근차근 하나하나 읽어주십니다.
"좋아요. 선생님. 저는 선생님이 꽃 좋아하시는지 몰랐어요. 그래서 저번에 꽃을 찍어주신 거군요. 말씀 잘해주셔서 감사해요."
"응."
워낙 말씀이 없으시고 표현이 없으셔서, 좋아하는 것이나 잘하는 것에 대해 쓰지 않으실 거라 생각했는데, 이건 결국 제 선입견이었네요. 표현할 수 있도록 하지 못한 제가 문제였어요.
"자! 그럼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것 '꽃 만져보는 거' 찍으러 갈까요?"
덧붙이는 글
박김형준 님은 사진가이며 예술교육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56 호 [기사입력] 2015년 09월 24일 20:3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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