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의 인권이야기] 통증의 역치, 연대의 역치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심리.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 토론회를 다녀오며

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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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에 식사하러 오는 관리자를 보면서 내가 몇 발자국 뛰어가면 저자를 찌를 수 있을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찌르고 나서 내가 식당을 뛰쳐나가 도망칠 수 있을지, 거리와 시간을 계산해보고 직접 죽이는 상상을 해 보는 조합원도 있습니다.”
-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심리․정신건강 실태 발표와 대책 마련을 위한 지역 토론회에서 홍종인 조합원의 발표 내용 중


지난 4일 열린 ‘금속노조 유성지회 노동자 정신건강 실태조사 발표 토론회’에 다녀온 뒤, 오랜만에 ‘역치’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역치란 생물이 자극에 대해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의 세기이다. 이 역치보다 더 작은 자극에는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경생리학 연구자들이 오징어 신경에 미세전류를 흘러 넣고 근육이 꿈틀대는지 관찰해봤다. 처음에는 미세전류의 크기를 점점 증가시켜도 근육은 수축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전류의 크기가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고 나서야 근육이 수축했다. 이게 역치다.

위 사진:2011년 집회를 하는 유성지회 조합원들에게 경찰이 물대포를 쏘고 있다. (출처: 금속노동자)

토론회에 가기 전까지, 유성기업의 노조파괴는 지나간 일인 줄만 알았다. 2011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성기업 노조파괴와 폭력 탄압의 원인은, 어이없을 정도로 소박한 요구인 ‘밤에 잠 좀 자자. 잠 좀 자게 주야 맞교대 대신 주간 연속 2교대제를 하자’는 것이었다. 회사는 이미 합의했던 교대제 변경 실시를 미루고 대화를 회피하면서, 노조파괴 컨설팅 회사를 동원하여 해고, 손해배상 청구, 직장폐쇄 등 조합활동 방해에 나섰다. 이후 전국에 생중계되던 공장 폐쇄와 폭력적인 파업 진압, 머리가 깨져 피를 뚝뚝 흘리던 노동자의 처참한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거기까지였다. 폭력 사태 이후 수년이 지난 뒤까지 이어지던 굴다리 농성, 고공 농성, 단식 투쟁, 연대 단식 등도 기억나지만, 연대하는 발걸음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부당노동행위가 일상이 되고, 여기저기 농성장이 늘어나는 이 시대에 지속적인 연대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는 사이,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정신 상태는 피폐해지고 있었다. 충남노동인권센터 심리치유사업단 ‘두리공감’에서 2012년부터 매년 조합원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하고 있는데, 4년이 지난 올해도 여전히 10명 중 4명은 우울증이 의심되었다. 죽음의 공포를 느낀 뒤에나 발생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위험군 비율도 절반이 넘었다. 5명 중 1명은 알코올 남용이나 중독이 의심되었다. 지난 4년간 ‘두리공감’에서 꾸준히 심리 치료와 상담을 진행 중이지만 2012년부터 우울증 고위험군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위험군 비율은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다. 치유를 위한 선결 조건, 그러니까 2011년 사태에 대해 책임을 묻고, 역사를 제대로 정리하는 작업이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위 사진:2012년 굴다리에 올라 투쟁하던 홍종인 전 유성기업 아산지회장 (출처: 금속노동자)

그뿐만이 아니다. 얼굴을 마주치는 것도 싫은, 폭력 사태 당시의 관리자가 지금도 여전히 조합원에게 차별과 배제, 인신 모욕을 가하며 괴롭히고 있다. 쓰라린 경험을 안고 일터에 복귀한 조합원들은 이제는 임금 차별, 감시와 인신 모욕적 질책, 업무와 관련 없는 지시 등 ‘가학적 노무관리’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니 ‘힐링’이 될 리가 없다. 유성지회 조합원들에게는 출근하는 일이, 매일 상처에 소금을 뿌려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런 스트레스가 불건강의 극단인 자살이나 타인을 향한 폭력과 같은 형태로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는 합리적인 걱정이다. 조합원들이 보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 불안 장애, 알코올 사용 장애는 모두 일반 인구에 비해 자살 사망률이 훨씬 높은 질병이다. 토론회에서 발표된 상담 사례 중에는 자살을 생각하며 노끈을 준비한 조합원 얘기도 있고, 우울증, 적응 장애 등으로 산재 요양 중인 조합원들도 있다. 이미 자살한 노동자도 있다.

우리 사회는 ‘노동 문제’에 대한 통증의 역치가 너무 높아진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언론의 관심이라도 받고, 국회의원이라도 찾아와주고, 동료 노동자들이 먼 곳에서 모여들어 함께 집회라도 열어 보려면 유혈 낭자한 활극이라도 벌어지거나, 수십 일 굶다 쓰러지거나, 그것도 아니면 정말로 누군가 죽어 나가야 한다. 가해자가 정당하게 처벌받지 않는 일, 노동조합 만든다고 인격을 모욕당하는 일, 회사가 복수노조를 만들어 하루아침에 동료가 서로 등 돌리는 일 따위는 매번 분노하기가 힘들 만큼 흔하게 벌어지기 때문이다.

실제, 생물학적으로도 자극이 지속되면 역치가 상승해 감각이 둔해진다. 자극이 계속 오는데 매번 반응하고는 살 수가 없으니 아예 반응을 무디게 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후각인데, 처음에는 느낄 수 있었던 냄새에 금세 적응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폭력과 탄압, 패배와 수탈이라는 자극이 지속되면서 우리 사회가 공감할 수 있는 노동자 고통의 역치도 너무 높아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소식은, 이번 실태조사 발표 이후 반응이 조금씩 나타난다는 것이다. 일부 국회의원도 관심을 보인다고 하고, 지역에서는 노동․인권․시민․사회단체가 모여 지역 대책위원회를 꾸린다고 한다. 새롭게 마음을 추스르는 이 연대가 유성지회 노동자들에게 힘이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과 동시에, 나 자신을 포함해 이 정도 심각한 상태라는 것이 알려져야 겨우 반응을 보이나 싶어 씁쓸하기도 하다. 우리의 공감과 연대의 역치를 낮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먼저 끊임없이 지속되면서 우리 감각을 무디게 하는 저 ‘자극’을 없애야 한다.
덧붙이는 글
최민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이며 직업환경의학전문의입니다.
인권오름 제 462 호 [기사입력] 2015년 11월 12일 17: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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