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x젠더, 재생산을 말하다] 재생산권, 장애인권을 둘러싼 인권규범의 지형

류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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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주]

한국사회에서 임신과 출산은 인구정책의 기조에 따라서 국가로부터 관리되고 간섭받는 영역이었다. 임신을 중단할 것인가 지속할 것인가의 문제에서도 철저하게 국가가 허용하는 사유와 처벌하는 사유가 나누어져 있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성관계와 양육 등의 문제에 대해서 장애를 가진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해 고민하며 <장애/여성 재생산권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기> 기획단이 활동해왔다. 앞으로 8차에 걸친 연재를 통해서 장애/여성의 재생산권리에 대해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 연재는 비마이너와 공동게재된다.

1989년 크렌쇼가 ‘교차성(intersectionality)'의 개념을 소개했을 때는, 인종과 젠더가 상호작용하며 흑인 여성의 노동 경험의 다측면을 형성했던 것을 상기시키며, 기존 정체성의 정치(identity politics)의 한계적 측면에 대해 주지하였다고 보인다. 하지만 인권운동의 역사와 인권규범의 지형 및 이행에서도 교차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 여성운동/재생산권리운동과 장애(여성)운동. 30년 이상의 역사를 토대로 한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과 새롭고 역동적인 장애인권리협약(CRPD). 이 만남은 어쩌면 긴장과 충돌이 아니라 공통 의제(cross-cutting issues)를 맥락적으로 논의하고 대응하며, 그 자체로 다양한 우리를, 풍부한 삶과 경험 그 자체를 이야기하게 하는 장이 아닐까. <장애/여성 재생산권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기> 기획단의 논의는 그동안 분리되어 있다고 착각해왔던 이야기를 제대로 시작해보자는 시도였을 것이다.

장애 맥락에서의 여성 권리와 재생산권리
: 장애여성과 성적 및 재생산 건강과 권리에 관련된 몇 가지 것들


보통 ‘SRHR'이라는 영어 줄임말로 불리는 성적 및 재생산 건강과 권리(Sexual and reproductive health and rights, SRHR)는 서로 중첩되는 4개의 영역을 의미한다. 1994년 카이로 인구개발국제회의(International Conference on Population and Development, ICPD)에서는 재생산 건강에 성적 건강이 포함되는 것으로 정의했다. 그러나 성적 및 재생산 건강과 권리(SRHR) 개념은 그 목적이 오직 출산이 아닌 섹슈얼리티까지 포함하기 위하여 ‘성적’과 ‘재생산’을 서로 구분되는 개념으로 보면서도 동시에 함께 사용하는 접근이다. 개념의 출발 자체가 이 모든 것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건강과 권리의 문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장애여성에게도 마찬가지다. 장애여성이 성적 및 재생산 건강과 권리를 온전히 누릴 수 없게 하는 몇 가지 상황들을 알아보자.

강제불임수술 - 넓게는 강제/비자발적/강압에 의한(forced/involuntary or coerced) 불임수술을 의미한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남아있는 심각한 인권침해적인 관행이며 국제인권메커니즘에서는 끊임없이 이 문제가 다뤄진다. 국제의학기구 등에서도 강제불임수술 관행을 막기 위해 충분한 설명 후 동의(informed consent)를 얻는 프로토콜을 개발하여 의료실무자들에게 보급하고 있다. 2013년 UN 고문특별보고관 후안 멘데스는 이를 ‘고문’의 법적 틀거리로 포섭시켰다. 자주 등장하는 ‘정당화’ 이유인 당사자의 최대 복리를 위한다는 것이 사실은 돌봄제공자 자신의 최대 복리를 위한 것이 아닌지 판단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장애여성도 비장애여성처럼 모두 피임의 수단으로 불임수술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 이 맥락에서 강제불임수술을 막으려는 보호조치들이 장애여성들이 자발적으로 불임수술을 선택할 권리를 방해할 수는 없는 것이고, 이러한 선택이 자유에 의한, 충분한 설명 후 동의(informed consent)에 의한 것임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지원을 제공받을 필요가 있다.

강제피임 - 장애여성도 다른 여성과 다름없이 안전하고 효과적인 피임을 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장애여성을 무성적(asexual)이거나 혹은 성과잉(hypersexual)으로 보는 차별적인 태도 때문에 이러한 기본적인 권리가 부정되고 있다. 이러한 부정적 태도, 가치, 스테레오타입 때문에 피임에 대한 선택지의 정보를 얻는 것은 매우 어렵다. 피임 욕구가 비장애여성과 다르지 않음에도 피임방법으로 불임수술 혹은 장기적인 주입형 피임시술을 많이 사용하고, 경구 피임약을 사용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알려진다. 전반적으로 장애여성에게는 자신이 사용하는 피임방법에 대한 자율성이 보장된다고 볼 수 없다.

성폭력(gender based violence) - 비장애여성과 마찬가지로 장애여성도 같은 종류의 성폭력에 노출되지만, 장애와 젠더가 중첩하여 사뭇 다른 형태와 결과를 낳는다. 집, 지역사회 등 피해 장소는 다양하며, 물리적․신체적․성적․경제적 폭력, 방치, 사회적 고립, 감급, 인신매매 등 폭력의 형태 또한 다양하다. 돌봄제공자가 가해자인 경우가 많은 편이다(친권자, 친척, 이웃, 활동보조인 등). 지적 장애를 가진 피해자는 자신이 겪은 일을 범죄로 인식하기 어렵고, 수사기관은 이런 사건을 다룰 만한 충분한 전문지식을 갖추지 못할 때가 많다. 재판부는 증거방법으로서 장애여성 피해자에 대해 증언의 신빙성을 낮게 평가하는 경향도 있다. 따라서 신고율, 기소율, 유죄율은 현저히 낮은 편이며, 재발생율이 높다. 피해 이후 지원체계도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성폭력 문제는 장애여성의 성적 및 재생산 건강과 권리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

모성, 양육권, 친권의 부정 - 장애인에게 양육은 정말 어려운 문제이다. 주변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을 말리거나 막는 경향이 많다. 주변에서는 그들을 무성적이고, 의존적이고, 돌봄제공자로부터 돌봄을 받아야 하며, 아이를 돌볼 수 없는 미성숙한 존재로 보기 일쑤다. 한편, 지적장애를 가진 여성에 대해서는 성과잉으로 보고 장애를 가진 아기의 재생산을 두려워하며 불임에 대한 정당화를 하기도 한다. 한 외국 통계는 ‘방치’를 이유로 장애여성이 기관에 자신의 친권/양육권을 박탈당하는 경우가 비장애여성에 비해 10배나 된다고 한다. 장애여성은 아이를 학대하거나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편견으로 친권/양육권을 제한하는 경향이 있다. 영화 'I am Sam'에서는 다른 요소가 아닌 장애만을 이유로 친권 박탈당하는 아버지 사례가 나온다.

행위능력 및 의사결정의 부정 - 종전 금치산자제도 그리고 현행 성년후견제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다. 피성년후견인 본인은 유효한 법률행위를 단독으로 할 수 없고, 그의 법률행위는 취소할 수 있다. 이러한 의사대체제도는 자율성과 자기결정권에 대한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 ‘법적 무능력’은 자신의 의료적 조치, 가족계획, 친권 행사, 생활환경 등 삶을 선택하는데 제한을 주고, 의료환경에서 스스로 선택을 할 수 있는 상대방으로 평가받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성적 및 재생산 보건 서비스 및 프로그램에 대한 접근권 미비 - 생리 관리, 피임, 낙태, 성건강 관리, 임신, 출산, 양육, 보조생식기술, 완경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거나 적절하지 않거나 접근이 어렵다. 물적인 문제로는 장소, 이동의 문제, 종사자들의 전문성의 문제 등으로 많은 서비스 및 프로그램에서 배제된다. 인적인 문제로는 의료인들이 장애여성을 ‘손상’의 문제로만 접근하고, 그 사람이 겪는 복합적인 사회적 맥락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할 수 있어서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성적 및 재생산 권리에 대한 정보 및 교육 접근권 미비 - 연애관계에 대한 욕구를 가졌으나 연애를 하고 관계를 협상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장애유형에 맞는 형태로 다양하게 정보나 교육이 제공되는 것이 중요하다.

사법접근권 미비 - 사법제도에 대한 접근권이 전반적으로 낮다. 증인으로서 신뢰성을 얻기 어렵고 따라서 사법절차에서의 피해자 구제가 쉽지 않다.

중첩적인 정체성 - 장애여성은 단일하지 않다. 예를 들면, 장애를 가진 소녀, 고령의 장애여성, 농촌지역 장애여성, 레즈비언/성소수자 장애여성, 시설 및 수형시설의 장애여성 등 이러한 교차성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아직 확정되지는 않은 장애인권리차별위원회의 여성 조항에 대한 일반 논평 초안에도 위와 같은 사항들을 언급하고 있다.

성 및 재생산에 대한 권리(7항)

장애여성은 자주 그들의 성적 권리 및 재생산권(reproductive rights)에 대한 통제가 없거나 없어야 하는 것처럼 대우를 받는다. 예를 들어, 후견인에 관한 법률은 “(당사자의)최선의 이익”이라는 이름으로 강제 불임 또는 당사자가 원함에도 불구한 강제 임신중절 등을 허용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장애여성과 여아의 법적 능력(legal capacity)을 재확인하는 것은 특히 중요하다.

강제불임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장애여성과 여아가 재생산권 및 모성권을 가진 성적 존재로 인식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적 권리는 존엄성, 신체적 및 정신적 완전함(integrity), 사생활, 건강 및 평등, 그리고 비차별 등 인권에 기본적으로 내포되어 있다.

재생산권과 장애인권을 둘러싼 인권규범의 지형

위 사진:유엔에서 낸 성과 재생산 건강 및 권리에 대한 시리즈 리플렛 중 낙태 편

이러한 성과 재생산 건강 및 권리에 대한 국제인권기준에 대하여,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지난 7월 1일 이벤트를 시작으로 간단한 시리즈 리플렛을 냈다. 이를 통해 재생산권과 관련하여 각 조약기구의 해석 등 국제인권기준을 포괄적으로 제시해왔다. (성과 재생산 건강 및 권리에 대한 시리즈 리플렛 링크)

그중 낙태 편에서 장애와 젠더가 교차하는 지점을 목격할 수 있다. (낙태 편 리플렛 링크)

이 리플렛의 “인권규범은 국가에게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낙태를 합법화할 것을 요청합니다(Human rights mechanisms have requested States to legalize abortion in certain circumstances.)” 부분에서 조약기구들의 최종권고를 종합하며, 임신이 여성의 생명이나 건강을 해치는 상황일 때, 강간과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의 경우에 비범죄화할 것을 권고한다고 하고, 또 태아의 장애(fetal impairment)를 이유로 한 낙태에 대한 접근권도 보장하라고 하면서, 한편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조치를 채택해야 한다는 균형을 이야기한다.(“In their concluding observations, treaty bodies have also recommended that States review their legislation and decriminalize abortion in cases when the pregnancy endangers the life or health of a woman, and in cases of pregnancy resulting from rape or incest. Treaty bodies have also recommended ensuring access to abortion services in cases of fetal impairment, while also putting in place measures to ensure the elimination of discrimination against persons with disabilities.”)

장애인차별금지조치에 대한 맥락은 이를테면 이렇다. 장애인권리협약위원회의 2013년 오스트리아에 대한 최종 권고(CRPD/C/AUT/CO/1)를 보면, “위원회는 여성의 재생산 자기결정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1995년에서 2006년 사이 오스트리아에서 다운 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난 아동의 숫자가 60%가 감소한 사실에 주목한다”고 하면서, 태아의 장애 가능성을 이유로 낙태가 가능한 시기가 더 늘어나서는 안 된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 권고는 장애만을 이유로 낙태가 허용될 수 있는 기간이 다른 경우와 차이가 없어야 한다는 반차별의 원칙에 근거하였다. 오스트리아에서는 12주까지 임신부의 요청에 의하여 낙태가 가능하다. 12주 이후에는 임신부가 12세 이하이거나, 임신부의 정신 신체적 건강에 크게 해가 되거나, 태아의 발달에 치료가 어려운 문제가 발생한다거나 하는 경우에 가능하다. 위원회는 이중에서 맨 마지막 단서가 장애인권리협약의 반차별원칙에 반한다고 본 것이다. 낙태가능기간의 다름 자체로 이것은 장애에 대한 낙인이며 두려움을 조장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각 조약기구 중 장애인권리협약위원회는 장애인차별금지원칙의 관점에서 심사하며 '임신부의 요청시 합법 국가'에 대해서는 태아의 장애 가능성을 이유로 가능한 시기가 더 늘어나서는 안 된다고 보고 있다. 여성권리협약위원회, 아동권리협약위원회, 사회권위원회 등에서는 여성의 성적 및 재생산 건강과 권리 관점에서 '형사적 처벌국가'에 대해서는 허용사유를 최대한 넓히는 취지에서 허용사유 중 태아의 장애 가능성까지도 포함하라는 권고들이 도출되고 있다. 이 두 측면은 분명 완전히 배타적인 것은 아니지만, 다른 권리의 측면에서 접근하므로 방향이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산전 검사와 선택적 낙태

한편, 현재의 재생산권 운동의 기원이 되는 초기의 산아제한운동에서 일부 우생학적 관점을 가졌었던 것도 사실이다. 최근 산전검사(pre-natal diagnosis) 기술이 발달하고 널리 보급되면서 선택적 낙태(selective abortion)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한 기사에서는 태아의 다운증후군 위험도를 진단하는 혈액검사의 확산을 소개하는데, 장애인 권리옹호자들은 다운증후군을 판별하는 혈액검사가 널리 시행되면 다운증후군이 많은 이들의 삶을 얼마나 크게 바꿔놓을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무조건 인공 유산을 택하는 커플이 늘어날 거라고 우려하였고 이는 사실 정당한 우려이기도 하다.

월스트리트저널, 낙태 논쟁에 불붙인 ‘태아 다운증후군’ 검사 (국문 기사 링크 / 영문 기사 링크)

위 사진:다운증후군 당사자인 캐런 개프니씨의 연설 모습

기사에서 다운증후군 당사자의 아버지 제임스 개프니씨는 이렇게 말한다. “.......제임스는 기술이 발전했다는 걸 이해하며, 다운증후군 판명이 인공 유산으로 이어지는 사태를 막기 위해 법까지 동원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면서 “그보다 더 나은 방법은 캐런 같은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널리 알려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애를 이유로 한 낙태를 줄이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장애와 육아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여 장애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것일 수 있다. 산전검사는 그 결과에 대한 함의와 맥락, 그리고 장애에 대한 풍부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 자체만으로 무엇에 대한 해결책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위 기사의 캐런 개프니, 감동적인 Ted 연설에서 그는 '산전검사의 시대에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미래는 있는가?'라는 너무나 무거운 질문에 ‘모든 삶은 소중하다'고 한다. (캐런 개프니씨의 Ted 연설 동영상 링크)

나가며

만트라처럼 읊어본다. ‘내 몸, 내 권리’, ‘차별에 저항하자’. 인권은 보편적이고 양도할 수 없으며, 불가분적이고 상호의존적이며 상호연관적이다. 우리의 권리는 어느 제한적인 공간에서만 논의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곳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가짜 ‘적’과 싸우지 않기를 기원한다. 만남에서 긴장은 있을지언정 그렇다고 분리를 택할 수 없는 것이다. 재생산권과 장애인권, 그리고 인권이 만나는 곳은 오히려 문제 해결을 위한 자원과 경험을 풍부하게 할 수 있으며, 어느 한 측면만 말할 수 없고 결코 평면적이지 않은 우리 삶 그 자체를 드러내 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류민희 님은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입니다.
인권오름 제 471 호 [기사입력] 2016년 01월 21일 23: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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