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맘대로 해고 맘대로 임금, 이게 끝이 아니다

정부지침(공정인사/취업규칙)은 무엇을 향하고 있나

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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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주

세상에 너무나 크고 작은 일들이 넘쳐나지요. 그 일들을 보며 우리가 벼려야 할 인권의 가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질서와 관계는 무엇인지 생각하는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넘쳐나는 '인권' 속에서 진짜 인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나누기 위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매주 논의하고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권감수성을 건드리는 소박한 글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때로는 촉촉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자정 가까운 시간이었다. 회의를 마치고 나오던 모 단체 사무실에 아직 퇴근하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더니 웃으며 답했다. “야근이 차라리 좋아요.” 일주일에 한 번 육아를 남편이 맡기로 한 그날은 그녀가 ‘마음껏’ 일할 수 있는 날이었다.
보통의 직장 풍경은 조금 다를 것이다. 어린이집이 끝날 시간에 맞춰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눈치를 봐야 하고, 어쩌다가 저녁이 자유로워지면 밀린 일에 허덕거리며 괴로울 것이다. 눈치 보더라도 퇴근을 할 수 있다면 다행일지 모른다. 공단에서는 잔업이나 특근을 거부하기가 어렵다. 한 노동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평가에 반영되니까요.”

고용노동부의 2대 지침

일터에서 평가받는다고 느껴본 적 없는 노동자가 있을까? 일자리를 구하는 순간부터 고용을 유지하는 내내, 동료나 상사나 회사의 평가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 “아이가 자주 아프네요.”라는 상사의 말이 위로로 들리기보다 추궁으로 들리기 쉬운 게 일터의 사정이다. 그런데 평가가 제도화되고 해고의 사유가 될 수 있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당신의 아이가 유난히 자주 아프다거나, 당신이 부당한 걸 보면 그냥 넘기지 못하는 성격이라거나 하는 사실이 해고의 사유가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지난 22일 고용노동부는 두 개의 행정지침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알려진 대로 하나는 해고를 다루고 하나는 임금을 다룬다. 물론 정부가 발표한 지침은 <공정인사 지침>, <취업규칙 지침>이라는 매끈한 제목을 달고 있다. 발표 하루 전 황교안 국무총리도 “쉬운 해고, 일방적 임금 삭감은 결코 사실이 아니”라며 말을 보탰다. 그러나 속아주는 사람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지침을 읽어봐도 속아주기가 쉽지 않다.
<공정인사 지침>은 두 파트로 나뉜다. 두 번째 파트가 해고를 다루고 있다. 정부는 근로기준법의 ‘정당한 이유’라는 해고 요건이 추상적이라 해고를 둘러싼 분쟁이 증가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분쟁이 늘어날 정도로 억울한 해고가 증가하는 것은 정부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래서 지침은 ‘해고를 정당하게’ 하기 위한 친절한 안내서가 되고 있다. 사용자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해고를 하려거든 어설프게 하지 말고 똑바로 해라!”

위 사진:정부의 일방적인 2개 지침 발표 후 1월 23일 열린 민주노총 총파업 결의대회 (출처: 민주노총)

이미 쉬운 해고, 더 쉽게 더 싸게

정부는 노동개악을 밀어붙이면서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사실을 왜곡한다며 비방해왔다. 그러나 고용노동부가 지침을 발표하자 해당 페이지에는 이런 댓글이 달렸다. “노조가 없는 화이트칼라 근로자나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지금 있는 법만으로도 찍소리 못하고 짤려 나간다. (…) 이제는 쥐꼬리만큼 주던 명예퇴직급도 못 받고 저성과자로 낙인 찍혀 불명예스럽게 퇴출시키는구만.”
해고를 법대로 당하는 것도 ‘기득권’이 되어버린 세상이다. 일을 하다가 사용자가 그만두라고 할 때 개인이 맞서기는 쉽지 않다. 노동청이나 법원을 찾아가 부당해고라고 주장하며 싸우기란 더더욱 쉽지 않다. 서둘러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 먹고 살 수 있으니 말이다. 구제 신청은 복직을 포기하고 나서 시작되기도 한다. 이미 모욕당한 일터로 어렵게 다시 돌아가더라도 마음 편하게 일할 수는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위로금이라도 받아야 분이 풀리겠으니 구제 신청을 한다.
부당해고가 성립하면, 해고당하지 않고 일했다면 받을 수 있었던 만큼의 임금을 사용자가 지급해야 한다. 그러니 정부는 미리 잘 살펴서 싸게 해고하도록 안내한다. 해고를 줄이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들을 안내한다. 해고를 하려면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미리 하라며 평가의 방법과 절차도 제안한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평가는 사용자의 재량권이 인정되는 부분임을 확인시켜준다. 일하는 사람들은 안다. ‘객관적이거나 공정한 평가’는 평가하는 자에게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평가받는 자에게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렇다면 ‘쉬운 해고’는 노동조합이 없는 곳의 노동자들만을 겨냥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노동조합 활동에 적극적인 노동자들을 저성과자로 만드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지금까지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노동조합을 고립시켜왔다면 이제는 ‘해고를 정당하게’ 할 수 있게 된다. ‘정리해고’로 인정받기 위한 ‘경영상의 어려움’이 모호할 때도 사용자에게 효과적인 선택지가 될 것이다.

이미 낮은 임금, 더 적게 더 쉽게

물론 이번 노동개악과 관련해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들에서 홍역을 앓았던 문제는 임금피크제 도입이다. 발등에 떨어진 불이익이니 그렇다. 정부의 말처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싸운 것이 아니다. 노동조합이라도 있어서 불이익에 맞설 수 있었던 것이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단체협약을 변경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없는 곳에서 기댈 것은 취업규칙밖에 없다. 정부의 <취업규칙 지침>이 여기를 노리고 있다.
사실 취업규칙은 노동자들에게 멀리 있다. 임금과 노동시간, 휴가 등 전반적인 노동조건을 다루고 있지만, 내용도 존재도 잘 알기 어렵다. 부모의 상을 당하면 몇 일을 쉴 수 있는지 궁금해도 답은 정해져 있다. 사장이 쉬라는 만큼. 퇴근하라고 할 때까지 일해야 하고, 통장에 들어온 만큼 돈을 받는 것이 대다수 노동자의 현실이다. 노동조합이 있다면 단체협약을 만들어볼 텐데 그렇지 않다면 굳이 뒤져보는 수고를 할 이유가 별로 없다.
가끔 뒤져보게 될 때가 생긴다. ‘법이 정년을 늘려줬는데 일한 만큼 임금을 못 받는다?’ 임금피크제 도입과 같은 경우가 그렇다. 법에 따르면 노동자에게 불이익한 변경을 할 때는 과반수 노동자의 동의를 받아야 효력이 인정된다. 누가 임금 덜 준다는데 동의를 하겠나. 그래서 정부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왔다.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주더라도 ‘변경의 필요성과 내용이’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는 경우’ 동의를 받지 않아도 효력이 인정될 수 있다고 안내하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밀어붙이는 이유?

근로기준법이 정한 불이익 변경 요건에 정부가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손대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침에서도 밝히고 있듯 결국 “임금체계 개편의 안정적 정착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고용노동부는 2016년 업무계획 보고에서 1,150개 사업장을 선정해 임금피크제 도입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청년고용을 늘리기 위해서라지만 신규 채용 효과나 정년 연장 효과는 분명하지 않다. 그래도 한사코 추진하는 이유가 업무보고에도 나와 있다. “임금피크제는 과도기적 조치이며 근본적으로는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이 정부의 목표다.
<공정인사 지침>의 첫 번째 파트도 바로 ‘직무능력과 성과 중심의 인력 운영’이다. 여기에서는 “보상관리(임금체계)”를 다양한 사례를 들며 소개하고 있다. 이와 같이 두 개의 지침은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공정인사 지침>에 따라 해고를 손쉽게 하려면 취업규칙도 손볼 필요가 있고, <취업규칙 지침>이 있으니 임금피크제 도입에 그치지 않고 직무와 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까지 이뤄내야 한다. 정부는 선포한다. 능력과 성과 중심의 사회로 재편하겠다!
누군가는 기대를 걸 수도 있다. ‘내 능력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취업경쟁에 시달려본 사람은, 마땅한 일자리를 만나지 못하고 떠돌아본 사람은, 성실히 일하지만 맨날 제자리인 것 같은 사람은 한 번쯤 중얼거려본 말이다. 그러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것은 내가 능력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내 능력’이 자본이 원하는 능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본이 원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면 낙오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라는 것이 ‘능력 중심의 사회’다. 자본이 원하는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쓸모없다는 것이 ‘성과 중심의 사회’다. 인간의 존엄에 앞서 능력과 성과를 따지려 든다는 점에서 최근의 노동개악은 ‘반-인권의 제도화’라 부를 만하다.

우리가 원하는 사회는 다르다

IMF 경제위기 이후 한국사회는 ‘경영이 어려우면 해고할 수 있다’는 걸 학습해왔다. 이제 우리는 ‘해고를 당하면 당한 사람 책임’이라는 걸 학습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다. 물론 지침은 법을 뛰어넘을 수 없다. 통상임금처럼 줄줄이 소송이 이어지는 사태도 우려된다. 그러나 법이 노동자의 권리를 지켜주지 않은지 오래다. 그러니 더욱 우려되는 것은 줄줄이 ‘투쟁’이 이어지지 못하는 사태다.
법무부는 벌써부터 민주노총의 총파업 선언을 불법으로 규정하며 나섰다. 총파업은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 국민의 불안을 야기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우리의 불안은 다른 데 있다. 근속년수 1년을 채우지 못하는 노동자가 35%이고 전체노동자 평균 근속년수가 5년밖에 안 된다. 권리를 내팽개치는 법과 지침 때문에 맘 편히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못 찾고, 나날이 오르는 임대료 때문에 발 뻗고 누울 자리를 못 찾고, 최저임금에 붙들린 임금 때문에 꿈꾸며 살아갈 자리를 못 찾는 것이 우리의 불안이다.
최근 수년간의 경제위기에 정부는 아무런 능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성과도 내지 못했다. 정부는 그저 자본의 시험대에 한 사람씩 세우고 사장의 맘대로 노동자를 처분할 수 있도록 할 뿐이다. 함께 살기를 도모하지 않는다. 정부는 이런 구호를 내걸었다. “임금은 공정하게, 근로시간은 유연하게, 고용관계는 투명하게”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르다. “임금은 먹고 살게, 노동시간은 병들지 않게, 고용관계는 울지 않게!” 이것을 이룰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모여서 함께 싸우기.
덧붙이는 글
미류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72 호 [기사입력] 2016년 01월 28일 16: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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