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어릴때의 인권이야기] 감정노동을 둘러싼 사회적 프레임을 바꿔야 할 때

나어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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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아끼자?!

텔레비전을 보다가 깜짝 놀랄 때가 많다. ‘노동개혁’이니 ‘금융개혁’을 밀어붙이는 정부의 국정광고에 놀라고 못지않게 선정적인 각종 공익광고에 놀란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새로 나온 박카스 광고를 본 뒤 당황스러운 마음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광고에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콜센터 여성노동자가 등장한다. 주말에 뭐하느냐, 나 힘들다, 나이가 몇 살이냐 등 상담과 아무 연관이 없는 전화에 시달린 퇴근길. 엄마에게 걸려온 전화에도 “네네, 고객님~” 기계적으로 응대하는 스스로를 깨닫고 콜센터 노동자는 어이없이 웃는다. 그리고 엔딩은 ‘나를 아끼자!’ 박카스.

콜센터 노동자가 겪는 일상적인 고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며 진상고객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하고 노동자 스스로 자신을 추스르는 ‘긍정적인’ 마무리다. 피로회복제 광고로는 적당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감정노동을 강요하는 구조와 원인이 완전히 가려져 있다. 감정노동의 원인은 무례함을 일삼는 진상고객에게 있고, 감정노동자는 인내든 무시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친절한 응대라는 본분을 잃지 않는다. 감정노동을 둘러싼 상호작용은 철저히 개인 간의 관계로 치환된다. 광고는 우리 사회가 감정노동을 대하는 태도를 가감 없이 반영하고 있다. 감정노동은 과연 성숙한 시민의식과 감정노동자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될 수 있는 것일까.

감정노동 해소를 위한 사회적 대응 그리고 한계

콜센터를 비롯한 서비스산업에서 일하는 감정노동자들이 겪는 스트레스는 사회적으로 널리 인지되고 있다. 그런 만큼 서울시를 필두로 한 공공부문의 대응도 적극적으로 이어져 왔다. 2007년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는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출범한 120 다산콜센터의 경우, 이러한 홍보 전략으로 인해 언어폭력을 포함한 악성 민원의 비중이 높아지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자체 대응책에 이어 2014년 서울시 인권위원회 정책 권고에 따른 개선안을 마련했다. 올해 1월에는 ‘서울특별시 감정노동종사자의 권리보호 등에 관한 조례’가 공포되어 시행 중이다.

감정노동 해소를 위한 사회적 대응으로 서울시는 지난 2년 간 18개 민간기업 및 소비자단체와 함께 ‘감정노동자와 함께하는 기업․소비문화 확산을 위한 공동협약’ 체결했다. ‘감정노동자와 함께하는 기업 실천약속’, ‘감정노동자와 함께하는 소비자 실천약속‘도 이어졌다. 이들 기업은 언론보도를 통해 감정노동 해소에 발 벗고 나선 선의의 기업으로 소개되었다. 그러나 정작 해당 기업 노동자들의 노동실태는 알려지지 않았다. 감정노동자는 ‘보호’되어야 할 객체로 대상화되고, 노동자들의 주체적인 대응 가능성과 권리의 확장은 찾아보기는 어렵다.

위 사진:2014.10.22. 협약체결 사진, 왼쪽부터 제일제당(주) 김민규 상무, (주)이마트 이용호 상무, 녹색소비자연대 이성환 공동대표, 서울시 조현옥 여성가족정책실장, 기업소비자전문가협회 정길호 회장, 아주캐피탈(주) 최용배 상무 <사진 출처: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 홈페이지>

한국통신 114 전화번호 안내 업무를 분사해 설립된 KTcs의 경우, KT의 업무 뿐 아니라 30여 군데에 이르는 중앙‧지방정부와 공공‧민간기업의 콜센터 업무를 수탁 받아 운영하는 대표적인 통신‧서비스 기업이다. 콜센터 상담업무가 기업의 주요 임무이기 때문에 악성 고객에 대한 ‘고객 유형별 대처방안’ 등이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별도의 규제 장치 없이 노동자가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처리하는 수준이다. KTcs는 감정노동 관리와 관련한 업무영역을 독자화해 KTcs CS아카데미에서 관련된 친절교육, 모델 개발, 컨설팅, 강사훈련, 감성회복‧힐링 프로그램 개발 등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프로그램의 주요 내용은 노동자가 업무에서 느끼는 문제 해결을 우회하는 방식으로, 긍정과 감사의 에너지 충전 및 애사심과 동료애 고취 등 감성적 접근이 주를 이루고 있다.

사회 각계에서 감정노동에 대한 대응 논의가 활발해지고 각종 캠페인이 지속되고 있다. 덕분에 ‘손님은 왕이다’를 감정노동자의 기본인식과 태도로 상정하고 무조건적인 친절을 강요하던 과거에 비하면 나아졌지만, 업무에 대한 노동자의 자율성과 통제력 보장에는 인색하다. 감정노동의 문제는 여전히 고객‧소비자의 의식 개선이나 사업주의 시혜적 조치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된다. 감정노동은 기업의 관리․통제 전략 속에서 심화되어 왔지만, 서비스산업의 급증과 함께 발생하는 불가피한 영역으로 치부되고 있다. 감정노동은 노동자 개인이 감내하고 수용해야 하는 것, 혹은 고객‧소비자의 성숙한 태도로 극복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기업의 이윤을 위한 노동 통제 속에서 감정노동은 고도화되지만 이러한 사실은 은폐된다. 기업은 오히려 감정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각종 규제 장치를 마련하고 캠페인을 벌이며 이를 이미지 제고를 위한 방편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감정노동, 노동자의 권리로부터 재조명해야

2015년 프라임경제에서 발간한 ‘2015 컨택센터 산업 총람’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전국에 약 3천여 개의 콜센터가 있고 37만 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아웃소싱을 중심으로 형성된 콜센터 시장은 공공부문의 경우에도 직영이 15%에 불과하다. 5천 명에서 1만 명에 이르는 콜센터 노동자를 주요 공공기관 및 민간기업에 전문적으로 파견하는 용역업체가 있을 정도로, 외주화가 기본 고용형태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러한 산업구조와 고용형태로부터 콜센터 노동자의 고충이 시작된다. 공공과 민간을 막론하고 콜센터는 민원인과 고객을 만나는 최전선에 위치한다. 민원인과 고객의 각종 문의와 불만, 요구에 대해 상담하고 안내하는 역할을 하지만, 대다수의 콜센터 노동자들은 외주업체 소속이다. 원청과의 유기적인 업무 공조나 문제 해결을 위한 적절한 재량권이 부재하는 상태에서, 신속하고 정확하고 친절한 응대만을 강요받는다. 이는 철저히 모니터링 되고 점수화되어 평가의 기준으로 작용한다. 인센티브와 고용을 좌우하는 평가의 압박은 노동자가 감정노동을 거부할 수 없는 굴레가 되지만, 불안정한 고용과 기업의 이윤을 위해 심화되는 감정노동은 자발적인 선택으로 둔갑한다.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의 권리는 지워진 채로 고객‧소비자의 인식을 개선하고 기업이 규제 장치를 마련해서 감정노동자를 보호하자는 식의 ‘건전한 소비문화’에 대한 지향이, 사회적으로 감정노동을 소비하는 방식으로 굳어지고 있다. 감정노동에 대한 사회적 문제제기는 민주노총과 서비스연맹의 노동현장 실태조사라는 의제 발굴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이에 대한 사회화와 대응은 소위 ‘진상 고객’ 및 ‘블랙컨슈머’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확산된 감정노동의 해결방안은 노동자의 권리와 기업의 책임을 우회하는 방식으로 나아간 측면이 크다. 감정노동자의 노동권과 자율성, 기업이 져야 할 책임은 사라지고 추상 수준의 캠페인과 홍보를 통해 감정노동은 불특정 다수가 함께 감당해야 할 사회적 비용으로 오인되고 있는 것이다. 명백한 사회적 착시현상이다.

감정노동을 둘러싼 논의가 이렇게 왜곡된 데에는 노동운동 진영에도 책임이 있다. 감정노동자의 대다수가 여성이고, 그 중 대다수는 비정규직이며, 갈수록 더 많은 노동자들이 간접고용화되고 있다. 그리고 서비스연맹 산하의 사업장과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미조직 상태이다. 감정노동을 강요당하며 수행할 수밖에 없는 당사자들이 스스로를 조직하지 못하고, 기존의 노동조합이 같은 업종 혹은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감정노동자들을 조직해야 할 동료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감정노동을 둘러싼 프레임은 점점 반노동적으로 고착되어 왔다.

감정노동에 대한 시각과 대응이 이대로 정착되고 구조화된다면 감정노동자의 권리 확보와 조직화는 더욱 요원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감정노동의 문제를 사회화한 힘이 현장에 있었듯이, 굴절된 논의를 노동자의 입장으로 되돌릴 힘 역시 현장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위 사진:2015.12.1. 다산콜센터 상담사 제대로 된 직접고용 약속 및 박원순 시장 면담 촉구 기자회견 <사진 출처: 정의당 김일웅 블로그>

덧붙이는 글
나어릴때 님은 불안정노동철폐연대의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79 호 [기사입력] 2016년 03월 30일 21:2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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