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언제까지 사건 해결을 피해자들에게만 맡길 것인가

이제라도 가습기 살균제 사건 해결을 위한 정부 역할을 다해야

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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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주>

세상에 너무나 크고 작은 일들이 넘쳐나지요. 그 일들을 보며 우리가 벼려야 할 인권의 가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질서와 관계는 무엇인지 생각하는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넘쳐나는 '인권' 속에서 진짜 인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나누기 위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매주 논의하고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권감수성을 건드리는 소박한 글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때로는 촉촉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언제나 사건의 진실과 해결은 피해자와 그의 가족들이 밝힌다. 국가기관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기에 피해자들이 나선다. 검찰도, 사법부도, 행정부도 사라진 곳에 피해자들과 시민들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아프지만 현실이다. 최근 언론을 통해 알려진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도 마찬가지다. 이미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사망임을 2011년에 밝혔지만 이로 인해 죽거나 병에 걸린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와 가해자 처벌을 위한 노력은 하지 않았다. 그건 정부가 할 일이 아니라며 개개인이 알아서 하라고 했다. 그러니 기업들은 피해자들에게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결국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의 해결이 어려웠던 이유는 피해자들이 전국 각지에 흩어져있기 때문도 아니며 인과성을 증명하기 어려워서도 아니다. 바로 책임자 처벌과 피해자 구제를 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없기 때문이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정부가 보여준 모습과 다르지 않다.

이미 2011년에 밝혀진 사실

2011년 4월 서울아산병원의 의료진이 임산부를 중심으로 7명의 원인미상 폐질환 환자 7 명을 발견하여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에 신고한 후 역학조사가 시작되었다. 질병관리본부는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환자군이 사용하지 않은 대조군에 비해 위험도 47.3배 높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 후 가습기 사용시 첨가하는 살균제가 원인이라는 가설과 독성실험으로 인과성을 확인, 2011년 11월에 보건복지부와 식품의 약품안전처는 가습기 살균제를 시중에서 회수하고, 유통을 중단시켰다. 하지만 살균제를 만든 기업들에 대한 수사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이 제품을 제조·유통한 업체를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시작했다. 2012년 8월 사망자 9명의 유족 등이 옥시레킷벤키저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생산·유통·판매업체 10명에 대해 과실치사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그러나 검찰은 보건당국의 역학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며 이듬해 3월까지 수사에 나서지 않았다. 피해자들이 기업을 고발한지 4년이 지나고 공소시효가 다 다가와서야 기업이 유해물질임을 알고서도 제조‧판매했다는 정황을 포착했다. 피해자들이 조사도 촉구하고 처벌도 촉구하니까 겨우 움직인다.

2016년 1월 서울중앙지검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건 특별수사팀’이 설치된 후 3개월여 동안 옥시, 롯데 등 제조‧판매사에 대한 여러 차례의 압수수색과 200여명의 피해자에 대한 확인 조사가 이루어졌다. 아직 신고 되지 않아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피해자들이 있지만 정부가 이에 대한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신고조차 받지 않고 있다. 4월18일부터는 제조‧판매사들에 대한 소환조사가 진행된다.

검찰이 은폐정황 증거를 찾고 발표하자 롯데마트는 사과를 하고 피해자보상을 하겠다고 밝혔다. 기업들은 이미 5년 전 질병관리본부의 조사발표로 알았던 책임을 이제야 알았던 듯 태도를 취한다. 뒷북 사과가 가능한 것은 한국에 기업의 책임을 묻는 제도와 관행이 없기 때문이다.

기업의 책임을 묻지 않는 정부

“4년 전 검찰이 조사를 시작했다면, 살균제의 위험성을 알고도 판매한 가해자들, 기업들의 책임을 물을 수 있었을 겁니다. 이제라도 검찰이 수사를 시작한 것은 다행이지만, 왜 그들이 증거를 인멸하도록 시간을 보냈는지 답답합니다. 작년 메르스로 사람들이 죽어갈 때 전국 각지의 병원에서, 집에서 사용하던 손 소독제 제조판매사가 옥시레킷벤킨저입니다. 가장 많은 사망자를 만든 옥시싹싹을 만든 회사입니다. 사과 한마디 없이 살인기업이 버젓이 영업을 하는데 오히려 피해자들은 죽거나 엄청난 치료비를 물며 힘들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15일 살인기업 선정식 기자회견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대표를 맡고 있는 강찬호 씨가 한 말이다. 그의 딸은 네 살 때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죽을 뻔하다 겨우 살아났다. 2011년 원인을 알 수 없는 간질성 폐렴을 앓았다. 처음에는 단순 감기인 줄 알고 감기약을 복용했지만 아니었다. 가습기로 인해 딸의 폐는 섬유화(폐가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으로 폐의 기능이 곤란해지는 상태)가 상당히 진행됐다. 겨우 딸은 살았지만 살균제를 만들고 판매한 기업의 사과 등 책임지는 일은 보지 못했다. 온전히 피해자들이 알아서하라는 정부의 태도에 그는 평범한 일상을 보낼 수 없게 됐다. 그는 다른 피해가족들과 함께 살균제를 만든 책임자들을 조사하라고 요구했고 전국에 피해자들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뛰어다녔다. 작년에는 딸과 함께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대한 책임을 촉구하기 위해 옥시레킷벤키저 본사가 있는 영국으로 찾아가기도 했다.

강씨를 비롯한 피해자들은 가해기업들을 ‘과실치사상’으로 고발했지만 기업이 책임질지 알 수 없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기업의 책임으로 발생한 사망사고나 심각한 생명의 위협에 대해 책임을 지우는 관행과 법이다. 정부의 의지도 없다. 세월호 참사 이후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를 일으킨 기업과 공무원을 처벌할 수 있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요구가 커진 것도 이 때문이다.
위 사진:출처-환경보건시민센터 보고서 228호 2016년-14호, 4월18일


피해자를 적극 찾고 치료비 지원 계획 등 구체화해야

2011년 정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 대책을 국가가 책임질 일이 아닌 사안으로 규정했다. 가습기살균제는 의약품이나 의약외품이 아닌 일반 공산품이어서 그 동안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보상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였다. 피해보상을 받으려면 피해자들이 업체들에 개별소송을 하라고 했다.

2012년 10월 환경부 국정감사 이후, 환경부 산하 환경보건위원회는 가습기살균제 문제는 “제품 안전에서 발생한 문제로 소비자가 책임질 일”이라고 했다. 결국 국회가 나서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구제법’안을 발의했지만 아직 의결되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환경부는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병을 환경성 질환에 해당된다는 내용으로 방침을 세웠다. 그러다 여론이 좋지 않자 의료비 지원은 치료비와 장례비에 한정해 지원하기로 했지만 가습기살균제와 폐 손상의 인과관계가 확실한 1,2 등급인 피해자 168명만 지원하겠다고 했다. 1‧2등급인 폐이식 수술비용 평균 1억7천4백만 원이 든다. 직접적인 폐이식이 아니어도 다른 기관의 손상이나 약값으로 3‧4등급 피해자들도 사용한 수술비용이 억 단위이고 매달 약값만 300만원씩 부담해야 하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없다.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다가 건강피해를 입은 잠재적 피해자는 29만 명에서 227만 명으로 추산되는 현실과 동떨어진 결정이다.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피해자들이 집에서 주로 생활하는 사람들, 어린이나 임산부 등 체질적으로 약한 사람들이다. 게다가 가습기살균제 피해는 수개월 내에 급성으로 진행되다 보니 자신의 폐가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사람들도 꽤 많다.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 결과에서 도시거주 일반인구의 37.2%가 가습기를 사용했고 18.1%가 가습기살균제 사용 경험이 있다고 한 것을 고려하면 더 적극적인 정부의 피해자 조사가 필요하다. 이제라도 ‘가습기살균제 피해 신고센터’를 설치해 직접 추가적인 피해를 밝혀내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다.

위 사진:4월 16일 살인기업 선정식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모임이 특별상을 수상했다. 기업책임을 끝까지 밀고간 피해자와 가족들의 노고에 상을 주었다.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해야

또한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사망사건은 공산품을 구입한 소비자의 책임이며 국가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정부 태도도 바꾸어야 한다. 정부가 말했듯이 국민들이 사용하는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생활화학용품들을 철저히 관리하지 않았다. 공산품이라고 하더라도 건강과 생명에 영향을 주는 상품의 경우 어떤 화학물질을 사용했는지 철저히 정부는 철저히 관리 감독했고 국민들도 사용된 화학물질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이러한 대규모 사망사건이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2014년 알권리보장을위한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 등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한 모임들이 전국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생활화학용품을 포함한 공산품은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에 따라 안전이 관리됐는데 허점이 많았다. 안전인증은 자율안전확인제도를 통해 하고 있으나 공산품 제조업자 등이 안전기준에 적합하다고 ‘스스로 확인하여’ 안전인증기관에 신고하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자율안확인제도를 통해 시행되는 안전성 검사의 구체인 내용은 겉모양, 용량 등 매우 제한된 정보에 한정되어 있다. 2007년 이후부터 가습기 살균제가 자율안전 확인대상으로 포함되었음에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막지 못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2013년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약칭 화평법)이 만들어졌다. 이전보다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관리는 나아졌다고 할 수 있으나 여전히 한계가 많다. 기존 화학물질이 모두 등록대상이 되지 않으며, 등록주체도 화학물질 제조 수입업자에게만 한정돼 있다. 화학물질 안전정보 공유가 업체끼리 투명하게 오가도록 돼 있지 않다. 무엇보다 자료를 보호한다며 기업들이 영업비밀이라며 자료 보호를 요청하면 일정한 기간 공개하지 않도록 허용하고 있다. 화평법 도입을 반대한 기업들의 눈치를 보고 있는 셈이다. 이제라도 기업의 영업이익을 위해 상품을 구입한 소비가 건강과 생명을 잃는 일이 없도록 개정하고 정부는 유해 화학물질에 대해 국민들이 알 수 있도록 제도와 관행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참고 자료
- 가습기 살균제를 통해 본 화학물질관리제도의 현황과 문제점에 대한 고찰 (2013.11. 정남순)
- 환경보건시민센터 보고서 224호, 226호, 228호

덧붙이는 글
명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81 호 [기사입력] 2016년 04월 20일 15:5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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