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노숙당사자모임과 함께하는 주거인권학교 ⑤] 살(買) 수 있는 집, 살(住)만한 집

가격표 없는 ‘집가게’, 상상에 불과할까

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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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당사자모임 아저씨들과 함께 하는 주거인권학교 세 번째 시간이다. 매주 토요일이면 몇 분이나 오실까, 이번 주에 준비한 ‘집가게’ 프로그램은 재밌어 하실까, 혹시 지루해 하시지 않을까, 서로의 이야기를 잘 나눌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집은 많은데 살 수 있는 집은 없어

우선 각자에게 주어진 가구조건과 소득을 염두에 두며 집을 구해 보았다. 집가게에는 21채의 집이 전시되어 있었지만, 3남매 중고생을 둔 휠체어장애인 ‘태환 씨’는 방이 2개인 집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1층을 찾다보니 ‘태환 씨’의 소득으로는 3남매들이 각자의 방을 쓸 수 있는 집을 구할 수가 없었다.

각자의 조건에 맞는 집은 몇 채 안되다 보니 혹시 내가 살 수 있는 집을 다른 사람이 먼저 구해버리지 않을까 다들 조바심이 났다. 반면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재산이 많고 연봉이 수 천 만원인 ‘현석 씨’는 어떻게 재테크를 할까 궁리하면서 집을 여러 채 사들이고도 조금이라도 손해 보지 않으려고 초조해 보이기까지 했다.

위 사진:누가 먼저 가져가버릴까, 모두들 불안한 마음으로 집을 구하고 있다.


‘용훈 씨’는 “고시원은 집이 아니고 시설이라 환기가 안되고 사생활이 보장되기 힘들다”면서도 고시원을 선택했다. 보증금 없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구한 곳인데도 월세가 적지 않아 생활비가 부족했다. 고시원 얘기가 나오자 “공동생활이 오히려 서로에게 거리를 두게 되는 것도 문제”라며 서로의 경험이 오가기도 했다. 사생활이 보호되기 힘든 구조다 보니 이웃과 관계를 맺기가 오히려 어려워지고, 친구를 초대하는 등의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어려운 것.

살던 동네가 재개발돼서 집을 구하게 된 ‘경숙 씨’는 더 열악한 조건의 집으로 이사를 가야했다. 세입자가 재개발지역 주택의 입주권을 보장받지 못하다보니 포기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점유의 권리가 인정되지 않을 뿐더러 점유의 안정성은 계속 낮아질 수밖에. 현실이 답답한 ‘경숙 씨’는 차라리 “내가 살 자리를 요구하자”, “재개발 지역에 끝까지 남아서 우리의 권리를 찾기 위해 싸우자”는 적극적인 주장도 편다.


집을 선물해 볼까나

이번에는 집 가격을 모두 지운 채 서로의 상황에 맞춰 살만한 집을 선물해 보았다. 21개의 집을 고르는 재미도 있었고 집 크기, 방 개수, 난방시설, 교통, 주위 여건 등 다양한 집의 조건들을 따져보며 살기 좋은 집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집에 가격이 있을 때는 ‘시장에서의 값’이 집 선택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는데 선물을 하니 각자의 사정을 두루 고려해 집을 선택할 수 있었다.

위 사진:집이 상품이 아니라면? 가격을 없앤 집들


‘용훈 씨’는 떨어져 살던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얻었고, ‘태환 씨’는 아이들이 각자 방을 쓰면서 엘리베이터도 있는 건물의 집을 얻었다. ‘현석 씨’에게는 아토피 피부염으로 고생하는 딸을 위해 공기가 좋은 동네의 집을 선물했다. 아까 돈을 주고 집을 구할 때와는 달리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서로의 집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걱정해 주었다. 하지만 식구가 많아서 큰 집을 선물 받은 ‘태환 씨’가 “이렇게 큰 집을 선물로 줘도 관리비 때문에 못 살겠다”는 걱정을 하시니 마음이 씁쓸했다.

물, 전기는 국가가 관리하고 의료비는 건강보험에서 일정부분 책임을 맡으면서 왜 집 문제는 각자가 해결해야 하는 것인가. 인간의 생명이 시장에서 거래되면 안 되는 것처럼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집’도 사고파는 것은 아니어야 하지 않을까.


집이 상품인가?

한국 사회에서는 집이 상품이다. 건설회사는 살기 좋은 집보다는 팔릴만한 집을 짓는다. 어떤 사람들은 집을 통해 재산을 늘리고 집값이 오를만한 집에 투기하여 시세차익을 노린다. 이렇게 집값이 오르면 주거불평등은 더욱 심화된다. 주거취약계층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공공임대아파트, 다가구매입임대주택은 일반주택에 비해 비율이 너무 낮고 그조차 가난한 사람들이 이용하기에 턱없이 비싸다. “공공임대가 더 늘어났으면 한다”는 바람도 있었지만 기대에 앞서 우리가 부딪히는 현실과의 괴리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10년 전과 지금이 다르듯 앞으로 10년쯤 후에는 지금보다는 살만한 집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있었다.

싱가포르는 중형 주택이 한국보다 많은데 자기 집에 사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 싱가포르는 공공주택 토지를 99년 동안 빌려주고 주택구입에 필요한 비용의 80%를 저렴한 이자로 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의 구입능력과는 크게 상관없이 살 집이 필요한 사람에게 싼 값의 공공주택이 돌아간다고 한다.


주거권을 요구한다

싱가포르의 상황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주거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한국에서 누구든지 노력하면 원하는 집에 살 수 있을까? 지속적인 주택공급으로 전반적인 주거수준은 향상되었지만 저소득층의 주거수준은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으며, 소득계층 간 주거수준의 격차는 확대되고 있는데 저소득층이 원하는 집에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을까? 주거권이 실현되지 않고서는 인간다운 삶은 불가능하다. 상품으로서의 집의 기능을 우선시하는 의식은 주거권의 중요한 의미와 개념들을 우선시하도록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제도로 정착시키는 것까지 우리 모두의 책임일 것이다. 주거권은 모든 사람들이 살만한 집에 살 수 있는 권리일 테니까.

<집가게>는...

주거권이 실현될 수 있는 질서가 어떤 것일지 함께 고민해보는 프로그램입니다.

먼저 집가게에서 상품으로 취급되고 있는 집을 구해봅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조건카드를 보며 가구의 특성과 소득조건에 맞는 집을 구합니다. 그 후 어떤 조건이 만족스러웠는지, 아쉬운 점은 무엇인지, 집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어떤 것들인지를 서로 이야기합니다.
잠시 쉬고 나서 집의 가격들을 지운 표를 보며 각자의 조건에 맞는 집들을 서로에게 선물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각각의 경우에 어떤 조건들이 고려되는지를 비교해보면서 주거권의 실현을 위해 어떤 정책이 필요할지 토론합니다.
인권오름 제 3 호 [기사입력] 2006년 05월 10일 3:5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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