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정의 인권이야기] 나에게 생긴 어떤 감각

이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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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그런 날이 왔다. 나의 삶과 또 활동들을, 쭉 되짚어 보게 되는 그런 날. 나는 어떤 사람인가부터 시작하여 내 안의 다양한 정체성들을 모두 꺼내다 놓고 하나하나 품평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책상 한 쪽 구석에 처박혀있는 해 지난 다이어리를 꺼내 읽어보기도 하고, 하염없이 멍 때리며 카페에 앉아있기도 했다. 이런 날이 올 때면 대부분, 작거나 혹은 커다란 삶의 변화가 있었다.

천주교인권위원회에 상임활동가로 함께 하게 된 것은 2010년 5월말. 6년여가 흐른 지금, 나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혹은 달라진 게 있을까? 머릿속에 떠다니는 질문들은 불쑥불쑥 더욱 크게 들렸다. 제주에서, 팽목에서, 세월호 특조위 앞에서…. 8월초, 제주 강정 평화대행진, ‘평화야 고치글라’에 이틀을 함께 걸었다. 불규칙한 식사, 인스턴트에 익숙해진 입맛, 운동과는 담쌓고 지낸 생활습관 등으로 원래도 좋지 않았던 체력은 최근 더 안 좋아졌다. 지난 2월, 백남기 농민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도보행진에 딱 하루 참여했다가 끙끙 앓아누운 이후로는 행진이라면 걱정이 앞섰다.


8월의 제주는 역시나 뜨거웠다. 걸으면서 제주와 강정마을에 처음 왔을 때를 생각했다. 지금보다 더 아파트가 없었고, 새로 짓는 건물 공사장이 없었으며, 렌트카도 많이 없고, 해군기지도 없었을 때. 구럼비가 있었고, 올라가 서볼 수 있었으며, 삼거리 식당이 있었고, 탁 트인 범섬을 하염없이 바라볼 수 있었을 때. 구럼비가 발파되던 날, 일기에는 “우리는 결국 어떻게 될까? 구럼비를 지켜낼 수 있을까? 자꾸만 두려워진다. 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될까봐.”라고 쓰여 있었다. 이제는 끝까지, 함께, 우는 것도 중요함을 안다. 그 때의 기록들을 들춰보다가 두고두고 부끄러웠던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지금은 강정마을에 대행진을 하거나 제주 평화의 섬 천주교연대가 해년마다 기념미사를 가질 때만 가게 되었지만, 그보다 훨씬 더 자주 강정에서 평화활동을 함께하러 가던 때였다. 해군기지 부지가 펜스로 둘러쳐졌고, 지킴이들과 활동가들, 주민들은 펜스를 뚫고 구럼비로 향하는 직접행동을 하기로 했다. 1년차 활동가였던 나, 뚫린 펜스 사이로 열심히 구럼비로 뛰어갔고 난생 처음 연행이 되었다.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으려 책상을 사이에 두고 앉았을 때, 사실 나는 두려웠었다. 엄청 ‘쫄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꺼진 휴대폰 배터리를 충전해야겠다는 말도 못했고,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연행되었을 때 알아야할 절차들에 대해 물어보지 못했고, 급기야 알고 있는 것들도 하얗게 지워지고, 대충 묵비권 비슷하게 조사에 임하고서는 경찰에서 하라는 대로 했다. 지문도 찍었다. 같이 연행된 사람들은 유치장에 갔지만, 난 밖으로 나왔다. 나름대로 많은 집회현장에 갔었고, 경찰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혼자 있던 그때의 ‘나’는 작아질 대로 작아져버렸다. 그리고 그 경험을 사람들 앞에서 편히 꺼내놓을 수 없었다. 왜 그랬을까, 바보 같은 나를 탓하며 정말 많이 창피해했다.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한 것은 한 사람으로서 내가 아니라 활동가답지 않은 나였다. 경찰서에서 내 행동 모두가 활동가 ‘답지’ 않다고 생각했고 몇날며칠 괴로웠다.

그래, 달라진 게 있다면, 지금 똑같은 상황이 온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리라는 것과 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일 게다. 날 변화시킨 것은 집회시위매뉴얼 공부나 『쫄지마 형사절차』와 같은 책을 열심히 읽었던 것도 있겠지만 활동하면서 만났던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 덕분이었던 것 같다. 강정마을 주민들, 밀양 할매 할배들, 쌍용자동차와 유성기업 노동자들, 세월호 생존자와 유가족들 그리고 보석 같은 활동가들…. 그 옆에서 기웃거리면서 차곡차곡 모아온 삶의 이야기들에 기대어 나는 조금씩 달라지고, 자라났다. 힘들 때 어떻게 하면 기운이 좀 나는지, 책에서 글자로 보던 인권은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 끝까지 싸운다는 게 무엇인지, 우리는 왜 웃을 수밖에 없는지. 그 이야기들은 나도 모르게 가졌던 인권활동가라는 이름의 무게를 내려놓게도 하고, 또 짊어질 수도 있게 했다. 그리고 마음 보관법도 배웠다. “스무 살이 됐으니까 이제 뼈대는 만든 것 같아요. 거기다가 시멘트를 딱 바르고. 안 좋은 생각은 장롱 아니면 금고 속에 넣어두고. 냉장고 안에는 여러 가지 마음 보관해두고.” (다시 봄이 올거예요,2016).

이 되돌아봄의 시간이 나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궁금하다. 또 앞으로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지도. 한 마디로 정리해보면, 지금까지 나의 활동은 인권인지 몰랐다가 돌아보니 그것이 인권이었다, 정도려나. 어디에 있든 이것만은 놓치지 않고 붙잡고 살 수 있다면 좋겠다. 서로서로 기대어 자라날 수밖에 없는 삶의 이야기들, 그것이 권리가 되고, 인권이 되어 자라나는 과정들에 대해서.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삶이, 이야기가 듣고 싶다.


덧붙이는 글
이은정 님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97 호 [기사입력] 2016년 08월 18일 10: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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