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가난’과 정의롭지 못한 돈

[내 삶의 불복종 ⑧] 삼성의 장학재단 기금을 거부한 공부방 활동가

이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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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생김새만큼이나 참 다양하다. 그 중에서 많은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어떤 것을 거부하면서 살아가기도 한다. 가령,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도 있고,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개인정보의 누출 우려 때문에 신용카드를 쓰지 않는 사람, 이마트에 가지 않는 사람, 자가용 차를 타지 않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정치적 이유로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무언가를 거부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기획 연재 - 내 삶의 불복종]에서는 무언가를 의식적으로 거부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도 다르듯, 무언가를 거부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역시 자신의 삶의 방식을 굳이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려 하지도 않는다. 다만, 소통의 힘을 믿는다. 자신의 문제의식을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이 자신의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또 그런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그것은 ‘운동’이 될 것이다. 그런 운동은 삶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부조리한 사회의 문제들도 바꿔나갈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자, 당신에게 강요하는 대신 자신의 삶의 방식을 그저 묵묵히 실천하며 나지막히 읊조리고 있는 우리 옆의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지난 2월 삼성 고른기회장학재단에서 공부방 등을 대상으로 공모사업을 진행했다. 내가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모임에서는 회원들의 찬반논의 끝에 일단 이번 공모사업에 불참하기로 했다. 이 결정 후 “삼성으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한다면 다른 대기업으로부터도 지원받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 “어차피 쓰려고 하는 돈, 제대로 쓰면 되는 것이지”, “공부방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환경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가로막는 것 아니냐” 등과 같은 말을 주변에서 들었다.

공부방 활동가로 일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빈민운동의 철학인 가난·생명·공동체를 삶으로 받아들였다. 가지려고 해도 가질 것이 없으니 저절로 가난하고, 가난해서 소비를 못하니 뭇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 적어 상생하는 공동체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난·생명·공동체를 내 삶에서 실현하는데 크게 힘들지 않고, 덜 먹고 덜 쓰겠다는 삶이 특별히 주변인들과 불편한 일을 만들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때때로, 공부방이 외부 지원을 받게 되는 경우가 생길 때면 나의 개인적인 삶과 공부방의 현실적인 이해관계가 충돌하게 된다. 나는 자발적인 가난을 선택했지만, 공부방 어린이는 스스로 가난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칫 나의 선택이 공부방에 참여하는 어린이에 대하여 지금보다 나은 교육환경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되며, 남에게 영향을 미치는 내 삶의 선택이 온전히 나만의 선택일 수 있는지, 나의 선택에 자신이 없어진다.

이번 삼성 고른기회장학재단의 작은배움터 공모사업도 그 같은 경우다. 공부방 교육여건을 강화하는 기회일 수도 있는데 공모사업에 불참하기로 결정했다. 이성적으로는 바람직한 선택이었다고 자신하지만, 한편에서는 공부방 재정이 지금보다 더 안정된다면 아이들과 눈 맞출 시간도 더 많아질 것이고 더 많은 아이들을 공부방 활동으로 끌어들일 수도 있을 것이고 더 섬세하게 아이들과 만날 수도 있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거나 저러거나 사회의 소외계층을 위해 쓰겠다고 하는 돈 그냥 받아서 제대로 쓰면 안될까’ 싶은 마음이 자꾸 고개를 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엘지사회복지재단으로부터 몇 해째 시설기자재 지원비를 받아 컴퓨터를 샀고, 디지털 카메라, 청소기를 샀다. 씨제이사회공헌의 온라인 기부사이트를 통해 청소년 진로탐색교육도 한 바 있다. 나름의 기준은 있었다 해도 삼성이나 엘지나 씨제이나 다같은 대기업인데 유독 삼성이라고 안하는 것은 일관성 없는 태도가 아닐까.

그런 마음을 진정시킨 것은 공부방이 무슨 교육을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해 초심으로 돌아간 생각의 끄트머리였고, 현재도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사회현상에 대한 분노였다. 공부방은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가 순환하는 공동체의 일원임을 알아차리고 함께 더불어 이롭게 사는 삶을 선택하고 실천하는 교육의 현장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재계 1위 삼성은 무노조경영, 불법 대선자금 제공, 편법 증여, X파일, 시사저널 사태, 경제 살리기를 위해서는 법치도 양보해야 한다는 등과 같이 오랫동안 여러 가지 반사회적인 행태를 지속하고 있다. 그런 삼성이 단순히 국민 정서의 악화를 걱정하여 사회헌납을 하였을까. 하지만 그런 행태에 대한 반감도 다 심증일 뿐 확증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런 행태에 대해 규제하는 법이 없는, 미법(未法)인 상황이어서 법대로라면 불법(不法)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긴 삼성뿐인가! 법은 최소한의 규제여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기득권은 자기 권리를 위해서는 법에 없는 것은 해도 된다는 논리로 일관하고, 또 많은 사람들은 그 말에 동의한다. 과연, 법에 없는 것은 무엇이든 해도 될까?

행복한 삶의 잣대는 오직 물질적 풍요일 뿐이고, 그것을 위해서는 삶의 다양성을 포기하라고 부추기는 자본주의의 메시지. 자신의 절대 이익을 포기하게 하는 명확한 법이 없는 이상 영리 추구는 무한하다는 기업주와 그에 기생하는 지식인이 있는 한 가난은 끝없이 유전될 것이고, 사회는 더욱 양극화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석기시대도 아닌데, 자기 삶의 진정성을 찾는 교육이 아닌 당장 먹고 사는 것만이 삶의 최대 목표인양 교육의 할 일인양 몰아가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는 당연히 법에 없는 것은 무엇이든 해도 되고, 먹고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점점 팽배해져 가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특히나 빈민들은 현재도 가난하고, 앞으로도 이런 사회구조가 지속된다면 가난을 벗어나기 힘들다. 비록 가난하게 살지만 돈의 유혹에 종속당하지 않고 정의롭지 못한 돈은 거절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면서 자신의 삶의 진정성을 깨닫고 행동하는 삶을 고민해 가다보면 그 과정에서 내 삶의 진정성을 성찰해볼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이현희 님은 공부방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6 호 [기사입력] 2007년 03월 21일 2: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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