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노숙당사자모임과 함께하는 주거인권학교 ⑥] 일본 노숙인운동과 만나다

“노숙인 조직 활성화된 일본 가 살아보고 싶네”

이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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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영화제를 찾아가는 길

제10회 인권영화제가 개막하는 5월 6일, 비가 내렸습니다. 이 날은 다큐멘터리 를 함께 보고 후지이 다케시 씨와 일본 노숙인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습니다. 한국에서 한국 현대사를 공부하고 있는 후지이씨는 예전에 교토에서 노숙인 운동을 함께 했었습니다. 우산을 들고 노숙당사자모임의 아저씨들을 만나러 가니 여덟 분이 벌써 나와 있었습니다. 비가 와서 주말농장에 안 가신 것인지, 영화를 본다는 기대감 때문인지, 넉넉한 인원에 기분이 좋아질 만도 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평택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가뜩이나 험악한 사진으로 가득한 기사들을 인터넷으로 보며 가슴이 덜컥 했는데, 아뿔싸, 후지이 씨는 전날 저녁부터 전화가 불통이고 한밤중에는 인권운동사랑방 미류 씨가 연행되었다며 전화를 해왔습니다. 평택에서 연행되어 유치장에 있느라 연락이 안됐던 후지이씨는 다행히 아침에 풀려나 참석할 수 있었지만 미류씨는 오지 못했습니다. 노숙당사자모임의 송주상 씨는 평택에 다녀온 후 몸이 좋지 않다고 빠졌습니다. 이래저래 평택 상황은 날씨만큼이나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영화제란 즐거워야 좋을 것인데, 인권영화제에서 보는 영화들은 마음이 먹먹해지고 암담하기 일쑤라 오늘 프로그램은 시작부터 영 불편한 마음이었습니다.


노가다 vs. 노숙인

(2005, 김미례)는 건설일용직노동자들에 대한 다큐멘터리입니다. 일본의 건설일용직노동자 대다수가 일을 잃은 후 노숙인이 됐다는 사실에서 영화는 일본 노숙인들의 상황과 운동을 언뜻언뜻 비춥니다. 일본과 한국은 건설산업의 구조가 거의 유사합니다. 노가다란 남의 집을 지어주는 사람입니다. 마치 석탄채굴업이 부흥기였을 때 막장의 광부가 그러했듯, 더 이상 갈 곳 없고 잃을 것이 없는 최악의 조건에 처한 노동자를 떠올리게 됩니다.

남의 집을 짓다 보니 자기 집을 잃어버리는 역설적인 존재, 그리고 경제 거품이 사라지면 가장 먼저 쓰러지게 되는 취약한 존재가 노가다입니다. 결국 노가다의 대부분이 노숙인이 되어버렸다는 이유 말고도 자기 노동의 산물을 전혀 소유할 수 없고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점에서, 노가다는 건설일용직노동자들의 별칭일 뿐만 아니라 노숙인의 다른 이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실제로 지금 한국의 노숙인들이 생계를 위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노가다’입니다.

위 사진:10회 인권영화제 인권영화상을 수상한 김미례 감독의 <노가다>는 일본에서도 상영됐다. 지난 3월, 약 150여 명의 가마가사키 노동자들과 함께 한 일본 첫 상영회 모습. <사진 출처: 김미례 감독 홈페이지 http://mi-re.com>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우산을 접어도 될 만큼 비는 얼추 잦아들었습니다. 우리들은 문화연대 사무실로 옮겨 아늑한 방에 마주 앉았습니다. 처음 만난 후지이씨와 아저씨들의 대화는 시작부터 열렬하지는 못했지만, 아저씨들의 궁금증이 풀려 나오면서 아주 흥미로워졌습니다.


노숙인으로서의 권리

일본에서는 노숙인운동이라 불릴 만한 움직임이 90년대 들어서, 마치 우리나라의 IMF 이후처럼 일본의 경제 거품이 꺼졌다고 할 무렵에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 전에는 주로 건설일용직노동자들의 조직을 통해 이루어졌고 ‘노숙을 하게 하지 말라’는 요구가 강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차츰 그 요구는 노숙인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으로 변해갔는데, 노숙을 주거의 한 형태로 인정할 것과 노숙을 하면서도 안전하게 살 권리를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위 사진:노숙당사자모임 아저씨들과 후지이 씨가 일본 노숙인운동에 대해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당사자모임의 아저씨들은 일본에서 공원 등 집단적으로 모여 사는 공간을 중심으로 노숙인 자치회가 생기면서 전국 네트워크도 이루어지고 노숙인 조직이 생겨날 수 있었다는 것을 놀라워했습니다. 한국 같으면 그런 자치회가 어림도 없을 거라는 얘기지요. “일본에서 건설일용직 노동자들은 쉽게 조직됐나요?” “공원마다 노숙인들의 자치회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지?” 연거푸 물어대는 아저씨들의 얼굴에는 권리를 인식하고 주장을 표현하는 것 못지않게 당사자들의 조직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지를 알고 싶은 구체적인 열망이 보였습니다.


노숙 조건의 양면성

이로부터 시작된 한-일 노숙 조건의 비교는 매우 열띠게 진행되면서 이런 얘기가 나왔습니다. 한국의 노숙인들은 일본의 노숙인들이 부럽고 일본의 노숙인들은 한국의 노숙인들을 부러워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은 종교단체에서 펼치는 구호활동이 매우 많아서 먹고 사는데 불편이 적습니다. 겨울 되면 잠바 주고 담요 주고, 동네마다 먹을 곳 많으니 골라 먹으며 다닌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은 노숙인들에게 제공되는 물품이 적다보니 먹고 사는 것에 더 어려움을 겪는다고 합니다. 이러다보니 한국의 노숙인들은 개별적으로 먹고 사는 불편이 적어 모일 필요를 느끼지 않을 때 일본의 노숙인들은 주거지역별로 모여서 서로 돕는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저 한 사람의 노숙인으로서 굶지 않고 사는 것이 목표가 아닌 당사자모임의 아저씨들로서는 노숙인들이 모여 조직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부러웠던 것 같습니다.


“당하면 복수하라”

후지이씨는 에서도 삽입되었던 일본의 다큐멘터리에 대한 설명을 보탰습니다. 그 제목은 꽤 당황스러웠습니다. “당하면 복수하라.” 간결하고 강력한 말입니다. 86년도에 만들어진 이 작품은 연출자가 두 명이며, 첫 장면은 첫 번째 연출자가 죽음에 이르는 것으로 시작한다고 합니다. 일용노동자들의 투쟁을 방해하는 조직폭력배에 의해 살해당한 것입니다.
이를 이어 받아 작품을 완성한 두 번째 연출자는 영화 제작과는 상관없던 활동가였는데 그 또한 완성한 후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이 두 번째 연출자가 일용노동자전국협의회 지도자였던 후나모토 슈지이고, 그가 남긴 말이 바로 “당하면 복수하라”입니다. 복수라는 말이 저열한 의미가 아니라 이렇게 품격 있는 표현일 수 있구나 하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실존의 벼랑까지 내몰려본 사람들은 복수해야 하는 이유가 명백하고 실행할 방법과 힘이 필요합니다.


연대의 이유

비는 그친 듯 부슬거렸고 평택 상황은 계속되었으며, 우리가 헤어질 무렵에는 서울에서도 촛불집회를 위해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을 것입니다. 평택에서 깨지고 다치며 목이 터져라 소리 질러야 했던 사람들, 그리고 서울에서 우산으로 비를 가리며 커피와 간식을 앞에 놓고 따뜻한 방에서 대화를 나누는 나. 어쩌면 나도 평택에서 싸우다가 경찰에 연행되어 오늘의 영화보기 프로그램이 진행될 수 없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자책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비록 걸쩍지근한 마음으로 시작했던 자리였지만 일본 노숙인 운동의 여러 모습을 듣고 한국의 노숙당사자들이 앞으로 어떤 활동을 펼칠 수 있을지를 가늠해보는 기회가 되었다면, 그리고 아저씨들의 가슴에 한국과 일본 노숙인들의 생활 조건은 달라도 국가를 뛰어넘어 연대하고 협력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게 했다면 오늘 이 자리는 충분히 의미 있었다고, 그렇게 여기고 싶었습니다.

“일본 노숙인은 한국에 와서 살고 싶다 그러는데, 나는 일본에 가서 살아보고 싶네.” 농담처럼 주고받은 말이 단지 더 좋아 보이는 생활 조건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노숙인의 권리를 주장하는 운동에 국경은 의미가 없으며 자유롭고 활발한 교류를 통해 노숙인들의 힘을 크게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것을 기대하는 말로 들렸습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평택의 아픔을 잊게 하지는 못하겠지만, 주거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왜 미군기지 확장 저지를 위한 평택 투쟁 때문에 다치고 갇혀야 하는지도 설명해주는 것이니까요. 미군기지 반대와 평화 운동이 그 곳 주민들만의 일이 아니라 평화를 염원하며 그것을 방해하는 것들에 반대하는 사람들 모두의 연대가 있어야 하는 이유니까요.


영화 <노가다>는...

‘노가다’ 일을 하는 감독의 아버지 이야기와 일본의 건설일용직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입니다.

노가다는 일본말로 ‘도카타’,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던 때부터 공사판에서 육체노동하는 사람을 부르는 속칭입니다.
일정한 주거 없이 ‘함바’에 거주하면서 임금 체불을 당하고, 저항하지만 도리어 살해당하기가지 하는 사람들. 노숙과 쪽방을 넘나들며 생계를 위해 ‘노가다’가 되었다가 나이든 몸과 만신창이가 된 건강을 지고 종이 박스와 신문지로 잠을 청하는 사람들. 감독은 이들에게 꾸준한 말걸기를 시도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현정 님은 서울영상집단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인권운동사랑방 신자유주의와인권팀과 함께 주거인권학교를 함께 준비하고 있습니다.
인권오름 제 4 호 [기사입력] 2006년 05월 17일 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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