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날다] 밋밋한 강연에 양념 살짝 뿌려볼까

참여프로그램으로 역동적 강연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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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릉 따르릉♬
“여보세요?”
“인권교육 좀 부탁드리려구요. 인권에 대해서 1시간 정도 말씀해 주시고, 나머지 1시간은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강연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흔쾌히 수락하기 쉽지 않다. ‘주절주절 혼자 떠들고 돌아오면 무슨 재미야? 청중들이 무슨 생각으로 와서 무슨 생각을 갖고 돌아가는지도 모르는데 너무 허무하지 않아? 거절해 거절~!’ 마음 밑바닥에선 피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그렇다고 그냥 거절하기엔 머뭇거려진다. ‘인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한번이라도 더 만나는 건 축복이잖아? 2시간밖에 없는데 프로그램 진행하기엔 너무 빡빡하잖아?’ 그렇게 자신을 토닥이며 결국 강연을 수락하고 만다.

날개 달기 - ‘독백의 교육’만으론

독백의 교육을 할 것인가, 대화의 교육을 할 것인가? 이 물음은 지배교육에 저항하는 교육운동이 오랫동안 던져온 질문이다. 교육의 내용이 아무리 진보적이라 할지라도 교사-학생, 강사-청중이라는 일방적 구도가 깨지지 않은 교육을 과연 진정 진보적인 교육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라는 성찰이 그 속엔 묻어 있다. 그렇다고 시간, 공간, 참여자 수 등 물리적 조건을 고려할 때, 강연을 완전히 제쳐두기란 현실적으로 힘들다.

조목조목 귀에 쏙쏙 박히게 핵심을 짚어주는 ‘말발’, 졸릴 틈을 주지 않는 재치, 기존의 생각틀을 뒤흔드는 도전적인 질문, 열정과 지혜가 묻어나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 인권강연이라면, 감동의 도가니에 충분히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자질을 모두 갖춘 강사가 과연 몇이나 될까. 게다가 아무리 훌륭한 강사도 출발에서 헛다리를 짚으면 청중은 마음의 빗장을 걸고 귀를 닫는 법. 마지못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이들의 마음 문을 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더불어 날갯짓 1 - 빗장을 열어봐, 말문을 틔워봐

강연을 하더라도 혼자 떠드는 시간을 줄이고 잠깐이라도 인권교육 기법을 활용한 참여 프로그램으로 출발해보면 어떨까? 밋밋한 강연이 좀더 역동적인 교육으로 새단장을 할 수 있다.

얼마 전 한 성소수자단체에서 진행한 청소년인권 강연에서 자료에 코를 박고 들을 준비를 하고 있는 이들에게 먼저 색깔이 있는 종이를 나눠줬다. 청소년 하면 떠오르는 단어를 하나씩 적어보고 자신의 느낌을 종이를 접거나 찢어서 표현해보도록 했다.


“병아리요. 아직 더 자라야 하는 나이니까. 틀에서 벗어나고 싶겠지만 완전히 벗어날 수도 없는 존재 같아서 종이를 찢다가 조금 남겨두었어요.”
“투명한 유리요. 분명 존재하는데도 보이지 않잖아요?”
“절벽이요. 한 발만 잘못 헛디디면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 같기도 하고, 어른들이나 사회를 대할 때 절벽을 대하는 느낌을 가질 것 같아요. 그 마음이 너무 힘들 것 같아 꽁꽁 종이를 접어봤어요.”
“야동이요. 청소년 시기에는 워낙 성에 대해 관심이 많잖아요? 아이들이 야동에 너무 미쳐있으니까 슬쩍 저래도 되나 걱정도 되고…….”

이야기를 듣다 보면 청소년을 자기결정과 인권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청소년의 억압된 삶에 대한 안타까움을 참여자들이 이미 갖고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물론 청소년을 옥죄는 사회적 금기를 수용하는 듯한 발언도 튀어나온다. 이 정도면 참여자들이 교육과정에 갖고 들어온 경험과 관점을 대충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잠시라도 ‘청중’이 아닌 ‘참여자’로 초대받고 나면, 빗장이 열리는 소리가 가만히 들려온다. 이제 우리 사회가 청소년을 대하는 방식을 대표적으로 엿볼 수 있는 사진들을 칠판에 붙인 다음, 청소년에 대한 대표적인 편견들을 간략히 정리해준다. 이어서 청소년에 대한 보호주의적, 통제 중심적 접근이 낳는 인권침해 결과들을 조모조목 짚어준다. 청소년인권에 접근하는 원칙으로 강연을 갈무리한 다음, 그 원칙에 비추어 사라져야 할 말들을 말풍선에 채워넣는 정리 시간을 가져본다.


인권교육에 관한 개괄적인 강연을 요청받은 자리에서도 출발을 ‘인권교육 말주머니 채우기’ 활동으로 시작해 보았다. 인권교육의 의미와 가치를 규정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낱말들을 모둠별로 3가지씩만 골라보도록 한다. 존중, 눈높이처럼 인권교육이 견지해야 할 원칙을 발견한 이들도 있고, 평등, 차이의 인정, 행동(실천)처럼 인권교육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발견한 이들도 있다. 차별, 이데올로기처럼 인권교육 과정에서 비판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대상이 낚이기도 한다. 이렇게 참여자들이 직접 찾아낸 낱말들을 활용해 인권교육의 의미를 정리해준다. ‘그/녀들의 언어’로 인권교육 강연을 시작하니 청중의 자리로 돌아간 뒤에도 강연 내용 속으로 성큼 빠져든다.

더불어 날갯짓 2 - 배우가 된 강사


일종의 퍼포먼스를 통해 참여자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신 다음, 강연을 시작해보는 것도 좋다. 먼저 꽃 모양의 종이를 나누어준 다음, 가운데 불리고 싶은 이름을 쓰고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 5가지를 꽃잎에 적어보게 한다. 소중한 것은 생명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고, 추상적 가치일 수도 실재하는 무언가일 수도 있다. 돌아가면서 발표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참여자 수가 많다면 소중한 것 중 하나씩만 겹치지 않게 발표할 수 있다.

발표가 끝나면 이제 강사가 퍼포먼스를 실행할 차례다. “너 따위가 무슨!” “시끄러. 그런 불온한 생각은 허락될 수 없어!” “우린 땅 파서 장사합니까? 치료를 원하면 돈을 갖고 오세요.” 먼저 인권을 해치거나 제한하는 차별적, 억압적 논리들을 말하면서 꽃잎을 찢거나 구긴다. 점차 긴장하거나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는 이들이 나타난다. 이번에는 좀더 수위를 높여본다. 해고, 성폭력, 강제철거, 전쟁 등 인권이 심각하게 침해당하는 상황들을 언급하면서 꽃들을 긁거나 마구잡이로 떨어뜨린다. 강사가 가하는 폭력의 수위가 높아질수록 참여자들의 감정 변화도 강렬해지고 있음을 눈치 챌 수 있다. 인권이 꽃피었을 때와 인권이 파괴되었을 때 느낌이 어떻게 다른지 물어본 다음, 다시 접혀진 꽃잎을 펴주고 찢어지거나 바닥에 떨어진 꽃잎을 테이프로 붙여준다. 원상복구를 한다고 해도 예전과는 달리 상처가 남은 꽃들의 모습을 함께 지켜본다.

“인권이 침해된 다음 원상복구하는 것도 중요하고 가치있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처음과 같지는 않지요. 그래서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일이 더욱 중요합니다. 인권침해를 예방하는 가장 중요한 길 중에 하나가 자신의 인권을 알고 지켜낼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저는 인권을 알고 행사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습니다.” 이렇게 비교적 간단한 퍼포먼스 하나로 인권을 알고자 하는 동기를 충분히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 다음부터 진행하는 강연이 무턱대고 설명하는 강연보다 효과가 높을 것은 당연하다.

마음을 맞대어 - 두 마리 토끼 잡으려다 다 놓칠라?

아무리 간단한 프로그램이라도 참여하는 활동을 진행하려면 참여자 규모가 너무 크지 않아야 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강연이 50명이 넘는 대규모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럴 때는 어설프게 인권교육 프로그램을 접목했다가 발표시간이 너무 늘어져 참여자들의 흥미도 놓쳐버리고 준비해간 내용을 강연할 시간도 잃어버릴 수 있다. 밋밋한 강연에 인권교육 양념을 뿌릴 수 있는 조건이 그만큼 제한적인 셈이다. 간단한 활동으로 참여자들이 걸고 온 둔중한 마음의 빗장을 쉽게 열 수 있으리란 환상도 금물. 강연 들으러 왔는데 왜 귀찮게 이런 작업을 시키냐고 저항감을 표출하는 이들도 간혹 있을 수 있다. 아무리 간단한 작업이라 해도 청중이 느낌과 생각을 표현하는 활동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눈치껏 살펴야 한다. 조건이 맞지 않거나 마음을 움직일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강연내용을 더 알차게 준비하거나 쟁점 토론꺼리를 준비는 데 에너지를 쏟는 게 좋다. 우왕좌왕하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 다 놓칠 수 있으니까.
인권오름 제 54 호 [기사입력] 2007년 05월 16일 4:4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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