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동자동 건강권 배움터 ④] 우리가 꿈꾸는 의료제도를 향해 한 걸음

쪽방 주민들이 느끼는 한국의 의료 현실

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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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동에 발을 들여놓은 지 벌써 한 달이 넘고 건강권교실을 한 지는 3주째다. 사랑방 식구들은 강의시작 전에 쪽방과 공원을 돌며 건강권 교실을 알리고 달라진 의료급여제도에 대해 마을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도 하냐며 반가워하는 아저씨, 의료급여제도가 어떻게 바뀌는지 붙들고 길게 이야기를 나누는 할머니, 건강권 교실을 시작하기 전에 항상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익숙해진 얼굴이 많다보니 주민들과 앉아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었다는 점과 “뭐 하러 이런 걸 하냐, 결국 우리 데모하는데 이용하려 하는 거 아니냐”며 항의하는 아주머니를 만났다는 점이 이전과는 다르게 나타난 풍경이었다.
주민들과 얼굴을 자주 맞대다보니 친근감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교실사업을 하는 우리는 여전히 먼 이웃들이니 두렵다는 경계심도 느껴졌다.

그림 속으로 고고~, 우리네 삶 속으로 고고!

오늘도 건강권 교실은 새로운 얼굴들이 보였다. 사실 건강권교실에서 새로운 얼굴들이 항상 있다. 오늘 오신 분들은 그동안 건강권 교실이 뭔지 궁금해하다 마지막이라니 한번은 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참가하신 분, 더위를 식히려 동네를 돌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걸 보고 들리신 분들이었다.
여는 마당은 ‘그림 속으로 고고’라는 것으로, 모둠 별로 ‘상황을 그린 그림판’을 주고 그게 어떤 상황인지 생각하고 모둠별로 토의해서 발표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림에는 병원과 그 앞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 심각한 표정의 아저씨가 그려져 있다.
모둠별로 열띤 토론을 하고 발표를 한다.

위 사진:한국의 수급권자에게 병원은 ‘돈 벌어 병원’


“수술해야 하는데 병원비가 없어 이걸 어떻게 하나 고민하고 있는 거에요”
“아내가 아픈데 돈이 없어 고민하고 있어요”
“돈이 없어 치료받다 도망나온 거에요”

네 모둠이 발표하는데 참가자들의 경험이 물꼬 터지듯 나온다. 자신도 쓰러져서 응급차에 실려 병원 응급실에 갔는데 응급진료비 3만원이 없어 쫓겨날 뻔한 이야기, 아파도 그동안 가족들에게 연락도 못해 아픈 사실을 숨겨야했던 이야기 등 참가자들의 삶이 묻어나온다.
뿐만 아니라 참가했던 모든 사람들이 공감했듯이, 이야기에는 우리나라 의료현실이 드러난다. 돈이 없으면 치료받을 수 없는 ‘이윤 중심’, ‘영리추구’의 진료행위가 한국 의료의 현실이라는 것을 참가자들과 공유하였다.

위 사진:돈 없으면 치료받을 수 없는 현실을 말한다.


병원에 대한 서러웠던 기억들

그렇다면 사람이 자신의 건강권을 지키려면 어떤 의료제도가 필요할까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두 번째 프로그램을 함께 했다. 본마당인 ‘동자동 세(new) 병원’은 증상별 환자들인 세 모둠이 각기 다른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후 세 병원에서 다르게 느꼈던 점을 모둠별로 발표하는 역할극 형태의 프로그램이다.
의사 역할을 맡은 사람 셋이 ‘돈 벌어 병원’, ‘아직은 병원’, ‘와~우 병원’을 각각 개업하고 모둠별로 병원에 가 자기 모둠에게 주어진 증상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떤 모둠은 의사의 가운을 보자 잊혀졌던 기억이 되살아났는지 병원에서 의사들에게 차별을 받았던 경험을 10여분을 말씀하기도 해 지체되기도 했다. 수급권자라고 대충 치료하는 듯한 말투, 만성질환자이니 약이나 타가라는 태도, 수급권자라고 귀찮아하며 진료를 안 하고 다른 병원에 가보라는 이야기만 하는 벙원 등의 이야기를 하셨다. 사실 수급권자들이 병원에 가면 차별을 받는 게 비일비재한 현실이다. 그렇다보니 의사가운을 보자 병원에서 당했던 설움이 생각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위 사진:의사 가운은 차별 받은 기억을 떠올렸다.


돈을 안받다니? 이런 데가 우리나라에 있어요?

‘돈벌어병원’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이윤 중심의 의료제도를, ‘아직은병원’은 무상의료제도를 실시하지만 건강권을 실현하기 위한 다른 제도는 아직 미흡할 수 있는 의료제도로 영국과 비슷하고, ‘와~우병원’은 무상의료제도인데다 주거나 작업환경을 도움을 줄 수 있는 공동체와의 연결이 잘돼 건강권 실현에 유익한 제도로 쿠바와 비슷하게 설정하였다.
세 병원을 도는 중에 참가자 한분이 ‘와~우병원’에서 다리 아픈 환자를 위해 주거공동체와 연결해 계단이 없는 곳을 알아봐주겠다는 이야기를 하자 “이런 데가 우리나라에 있어요? ”라며 “사실 사는 곳만 좀 괜찮으면 건강도 나아질텐데”라고 쪽방을 벗어나고픈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세 모둠 모두 가장 인상깊었던 곳은 ‘와~우병원’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는 ‘아직은병원’만 돼도 건강하게 살 것 같다고 하였다.

“돈별어병원은 우리나라랑 비슷하고, 아직은병원은 10년후의 우리나라 같고, 와우병원은 30년후의 우리나라같이 느껴진다.”
“돈벌어병원이 우리나라랑 비슷하긴 하지만 수급자에게 저렇게 친절한 병원은 없다.”

위 사진:증상별로 세 모둠으로 나눠 각각 병원 진료를 받았다.


건강권이란 병이 있는 사람이 병이 다 나아 질병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건강한 삶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권리의 실현’이기에 건강권을 실현하기 위해 한 사회에서 해결해야할 것들이 많다. 주거, 노동환경, 영향, 의료제도 등등. 그중에서도 의료제도는 최소한의 건강권을 실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어서 건강권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발표가 끝난 후 무상의료가 실시되고 있는 나라를 소개한 후 무상의료란 ‘잘사는나라’, ‘선진국’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가 어떤 방향으로 의료정책을 이끌 것인가하는 판단과 결정에 달린 것이라는 사실을 읽을거리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돈 벌 목적으로’ 병원을 운영하는 것을 방향으로 한다면 ‘무상의료’는 실시하기 어려운 것이고, ‘국민소득이 많지 않아도’ 국민들의 건강권을 중요시하는 나라라면 ’무상의료‘란 실현가능한 것이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10년 후, 30년 후의 한국모습이 ‘아직은병원’이나 ‘와~우병원’처럼 되기 위해 현재 참가자들이 무엇을 해야할 지 생각해보자며 마무리했다.

위 사진:본마당 프로그램으로 진행한 ‘동자동 세(new) 병원’.


남은 일

강의를 마치고 의료급여제도 개악을 막아내기 위한 기자회견 및 불복종운동이 있다는 것을 소개하며 참가가 가능하신 분은 오시라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평생 주변에서 멸시당하고 힘있는 사람한테 속아온 삶이어서일까?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행동하기를 힘들어하셨다. 사실 행동한다고 바로 바뀌지는 않는다. 7월 1일부터 시행되는 의료급여제도 개악을 막아내는 것은 쉬운 싸움이 아니지 않은가. 더구나 아직 주민들에게 있어서 우리는 함께 싸울 ‘우리’라기 보다는 바른 소리만 하는 ‘그/녀들’이기 때문에 강하게 설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결국 우리나라 의료제도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 것인지 동자동 주민들과 공유하는 것까지만 함께 했다.

‘권리를 인식하는 것이 권리를 확보하는 첫걸음이지 않는가.’
그러니 건강권교실을 하며 이제 싸움의 첫 걸음을 내딛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다음 걸음을 준비해야겠구나하는 마음으로 무거워진 발걸음을 옮겨 만나샘을 나왔다.
인권오름 제 61 호 [기사입력] 2007년 07월 03일 22:2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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