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침회 시즌 2 : 받든지 말든지 시상식] 검은 바다 저 멀리

일침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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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침회 시즌 2’는 ‘받든지 말든지 시상식’이니까 상을 줘야 마땅하다. 근데, 검은 바다 저 멀리 생명들이 공포와 고통을 겪고 있는데, 상 받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냥 이야기로 풀어보았다.


12월 7일 오전 7시 15분께 충남 태안군 부근 해상. 원유를 가득 싣고 이곳에 전날부터 정박해 있던 유조선의 측면을 해상크레인을 적재한 삼성중공업 소속 부선이 들이받았다. 유조선 오일탱크에 구멍 3개가 나 1만여 톤의 원유가 해양으로 유출됐다. 이날 삼성중공업 소속 예인선단(삼성 티-5호, 삼성 에이-1호)은 파고가 3~4미터로 높고 기상 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해상크레인을 싣고 거제도로 가다 예인선과 해상크레인 부선을 잇는 강선이 끊어진 뒤에도 사고 발생 5분 전까지 관제센터에 구난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땅 끝에서 300리 떨어진 곳, 깜깜한 물길을 뚫고 깊이 더 깊이 헤엄쳐 닿을 수 있는 머나먼 용궁에 지난 10여 년간 한 번도 울린 적이 없는 ‘긴급사태 1호’를 알리는 벨이 울렸다. 12월 10일 오후 1시 13분. 주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불안에 떨며 광장으로 떼를 지어 모여 들였다. 광장 한가운데 솟아 있는 산호초에는 여기저기 거무튀튀하게 얼룩진 초췌한 망둥이 무리들이 꼬리만 겨우 흐느적대며 서 있었다. 웅성웅성한 가운데 그 무리 중에서 입이 큰 이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이의 눈에도 검은 빛이 돌았다.

“우리는 탐험가들입니다. 지난 7일 아침 7시경 우리는 한반도 태안군 원북면 신도 부근 해상에서 그곳에 정박해 있는 유조선 근처 생태를 조사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바닷물이 소용돌이쳤고, 정신을 차렸을 땐 세상은 유조선이 토해 낸 검은 기름으로 까맣게 물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정신없이 내달려 그 지옥에서 빠져나왔지만, 함께 떠난 12명의 동료들은 실종되었습니다.” 그 이는 숨을 몰아쉬며 괴로워했다. “아마 지금쯤 수많은 갯벌 생명들의 숨이 끊어졌을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들이 석유를 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고 바닷길로 그것을 실어 나르기 시작할 때부터 이런 재앙을 걱정해왔습니다. 이제 그 재앙은 우리의 현실이 되었습니다.” 광장은 흐느끼는 소리, 분노하는 몸짓으로 휩싸였다.

위 사진:태안 만리포 북서 5마일 해상에서 발생한 유류사고의 기름띠가 북쪽 가로림만을 넘어 덕적군도 대이작도 앞 해상까지 번졌다. [출처] 녹색연합


용궁은 각 종족과 지역에서 모인 이들의 열띤 논쟁으로 술렁였다. 서해안의 대표적인 이매패류인 개량조개가 소리를 높였다. “여러분, 진정들 하세요. 물론 태안반도에 쫙 퍼져 사는 우리 종족 생각하면, 나부터도 진정하긴 쉽지 않지만.. 사고가 터진 지 벌써 닷새가 지났어요. 우선 하루빨리 우리의 삶터를 옮겨야 할 텐데…. 일단 적당한 피난처를 조사해 올 탐사대를 꾸려 남쪽으로 보내도록 합시다.” “그렇게 합시다.” 움직일 때마다 촘촘하게 박힌 비늘들이 은빛으로 춤을 추는 종족이 엄숙하게 말을 받았다. “우리는 석유에너지가 모든 생명을 위험에 빠뜨릴 거라고 경고해왔지만 인간들은 아직 그것에 집착해 전쟁까지 일삼고 있소. 통탄스럽게도 우리가 인간들의 석유에너지 사용을 막을 길을 없소. 하지만 최소한 이번 일이 어떻게 일어난 것인지, 누가 이런 재앙을 일으켰는지 파헤쳐야 하오. 그래서 바다생태계를 다시 회복시키는 책임을 물어야 하오.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진상조사단을 꾸려 현장근처로 가야합니다.” 무거운 침묵이 용궁을 삼켰다. 그.러.나. 시간마저 붙들어버린 것 같았던 침묵은 진상조사단에 합류하겠다는 비장한 목소리들에 의해 조금씩 깨져갔다.

17명으로 이루어진 진상조사단은 다음 날 새벽 바다를 뚫으며 전진했다. 용궁으로부터 삼사일 정도 올라온 지점부터 역한 석유 냄새가 풍겼다. 전진 속도는 조금씩 느려져 갔다. 구토와 부분 마비 증세를 보이는 동료들도 있었다. 그러나 멈출 순 없었다. 어디까지 올라왔을까. 물밑으로 파고 든 햇살에 반짝이는 수면 사이로 시꺼먼 기름 덩이들이 비쳤다. 모두 멈춰 죽음의 기운을 풍기는 그것을 노려보았다. 여기저기 죽은 생명체들이 떠다니는 것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누군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대로 가다간 모두 죽을 거예요. 저와 해리가 물 위로 튀어 올라 새들에게 정보를 캐 올게요. 새들도 기름 묻힌 우리를 해치진 않을 거예요.” 동료들은 말 대신 그들의 비늘에 키스를 하며 동지의 맹세를 했다.

수와 해리는 수면을 향해 헤엄쳐 올라갔다. 태양을 향해 힘차게 튀어 오르기를 여러 번 반복하다 수가 먼저, 그리고 해리가 다음에, 갈매기에게 낚아 채였다. 남은 동료들은 꼬리를 늘어뜨리고 기름 냄새와 공포 속에 파묻혔다.

수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해리가 작은 기포를 일으키며 다시 물속으로 뛰어 들어온 것은 삼십 여 분이 지나서였다. 모두가 해리를 둘러싸고 비늘을 어루만졌다. 숨을 가다듬은 해리는 갈매기의 말을 전했다.

“나는 다 보았어. 너의 몸이 기름에 물든 이유, 나의 친구들이 죽어간 이유 말이야. 태양이 꿈틀대며 수평선에 고개를 내밀어 오르고 있을 때였어. 원유를 가득 싣고 정박한 유조선을 해상크레인을 실은 배가 들이받았어. 괴물 같은 유조선 옆구리가 찢기고 검은 기름을 쏟아내기 시작했지. 해상크레인을 실은 배는 어디에선가 떠내려 왔어. 바람이 전하길 그 배를 예인하던 다른 배와 연결선이 끊어진 뒤 멈추지 못하고 떠내려 왔다는 거야. 그리고 그 배들은 모두 삼성중공업이란 회사가 운영하는 거라네. 넌 아직도 이해하지 못할 거야. 왜 유조선이 해상크레인 배가 가까이 온다는 걸 연락받지 못했는지, 왜 피하지 않았는지. 나도 이해할 수 없었지. 하지만 이젠 알아. 삼성중공업 소속 배들이 사고가 나기 5분 전까지 일체의 무선 통신을 하지 않았다는군. 사고가 나기 40여분 전에 관제센터가 예인하던 배 선장의 휴대전화로 ‘대형 유조선이 근처에 있으니 피해가라’고 경고했지만, 그때 예인선과 해상크레인을 실은 배의 연결선이 끊어졌다는 사실은 전혀 통보받지 못했다고 하네. 사고가 일어나기 5분여 전에야 ‘통제 불능 상태이니 유조선에 연락해 이동시켜 달라’는 무전을 관제센터에 쳤다는군. 이제 알겠어? 재앙은 그렇게 일어났던 거야....”

위 사진:삼성중공업 광고의 한 장면


“갈매기는 나에게 끔찍한 사고 현장을 보여줬어. 그리고 다신 이 근처에 오지 말라고 했어. 자기도 떠날 거라고...” 해리는 흐느꼈다. “지옥이야. 대학살이야. 눈알까지 까매진 오리와 수많은 생명들이 숨이 끊어지길 고통스럽게 기다리고 있어. 고무장갑과 마스크를 낀 많은 사람들이 힘겹게 기름을 걷어내고 있는 것도 봤어. 텔레비전과 신문들은 그 장면을 자랑스럽게 떠들어대느라 대학살을 몰고 온 삼성중공업이란 회사의 책임에 대해서는 웬일인지 입을 다물고 있대. 그 회사는 아직 어떤 책임도 지고 있지 않아. 우리의 생태계가 회복되기 까지 앞으로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몰라. 사고를 낸 당사자한테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그 오랜 시간 동안 바다를 다시 살릴 수 있겠어?” 해리의 흐느낌이 울부짖음으로 변했을 때, 다른 동료들도 분노로 몸을 떨었다.

“삼성중공업에 우리의 분노를 알려야 해. 그들이 바다와 갯벌을 살리는 무한책임을 져야 해.” 누군가 소리쳤다. 그들 위로 검은 기름띠가 몰려왔다. 태양이 기름띠를 뚫지 못하고 세상이 암흑 속으로 빠져들 때, 그들은 다시 전진을 시작했다. 용궁이 아닌 대륙 쪽이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아니꼬운 세상에, 일침회]는 재치있는 풍자와 익살스런 해학 담긴 수다로,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아니꼬운 세상에 일침을 가하고 싶어하는 이들의 모임입니다.
인권오름 제 84 호 [기사입력] 2007년 12월 18일 18:5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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