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부르는 개발, 이대로 계속하자?

[기획] 죽음을 기억하라 (12) 오산 수청동 철거용역과 철거민

장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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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주] 모든 죽음은 산 자들에게 안타까움을 남기지만 어떤 죽음은 산 자들을 부끄럽게 한다. 이런 죽음은 죽은 자가 의도했든 아니든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남긴다. 생물학적 죽음을 수반하지는 않더라도 사회로부터 배제되어 사실상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사회적 죽음도 있다. 죽음마다 다양한 사연이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죽음을 부르는 한국사회의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런 죽음이 계속되리라는 점이다. <인권오름>은 노무현 정권 시기인 2003년부터 최근까지의 죽음 가운데 점점 잊히고 있지만 산 자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죽음을 기록함으로써 한국사회 인권의 현실을 점검한다.


2005년 4월 16일 강제철거에 동원된 한 철거용역이 철거과정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돌아보면 지금까지 전국의 수많은 서민들이 살던 주택을 철거당하거나 개발 현장에서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맞고 집을 잃었다. 그리고 처절하게 거리에 나앉아 천막에 의지하며 주거권을 찾으려고 투쟁해 왔고 이런 과정에서 철거민이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산 수청동에서는 거꾸로 철거용역이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다.

강제철거와 철거용역의 죽음

당시 수청동 철거민들은 대부분 소형빌라를 소유하고 열심히 노동하는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개발시점으로부터 적어도 수년 전에 주택을 구입하고 그곳에서 실제로 주거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1년 9월 택지개발예정지구지정 공람공고를 낸 대한주택공사(아래 주공)는 공고 1년 전인 2000년부터 주민등록 전입신고가 유지된 집주인들에게만 이주자택지를 제공했다. 주공은 여기에 미달된다는 이유로 인근지역 전세 가격의 절반도 안 되는 보상비 이외에는 어떤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 주민대책위원회가 현실적인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강제 이주를 거부하자 주공은 철거용역(철거깡패)을 개발지구에 상주시키며 주민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협박과 폭력을 가했다. 결국 주민들은 용역들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2005년 4월 15일 밤 망루(철탑)를 세웠고 농성을 시작했다. 당시 지역 여론은 무리하게 철거민을 진압하면 사상자가 발생할 것임을 경고하고 있었다.

위 사진:경찰은 오산 수청동 현장을 완전히 봉쇄했다. [출처] 전국철거민연합


수청동에서 시작된 망루 작업은 상주하던 용역에 의해 곧바로 발각되었다. 즉시 동원된 철거용역과 경찰은 다음날 망루 침탈 작전을 논의하고 진압을 시도했다. 주공의 지시에 의해 철거 용역들은 소화기와 공격용 무기를 소지한 채 망루 옆 건물로 잠입했다. 곧이어 이들과 망루에 있던 철거민들은 투석전을 시작했다. 이때 두 건물 사이로 용역 몇 명이 나무 합판을 머리에 이고 망루 밑으로 다가섰다. 이 과정에서 콘크리트 덩어리에 의해 합판이 깨졌고 용역 한 명이 머리에 상처를 입고 쓰러졌다. 사람이 쓰러지고 나서야 철거 시도는 중단되었다. 사인에 대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심장마비일 수도 있고 머리에 큰 충격을 받았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 후 약 2달간 철거민들은 용역과 경찰에 둘러싸여 다양한 인권침해를 당했다. 경찰은 전기와 수도를 끊었고 생리대까지 포함해 생필품의 반입을 금지했다. 생필품과 의약품을 들여보내려던 전국철거민연합과 오산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 등 14명이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5월 17일부터 경찰이 대형 철제 새총으로 철거민들을 향해 골프공을 쏘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이를 입증하는 사진이 공개되자 26일 경찰은 화성경찰서장을 대기발령했고 경비교통과장을 직위해제했다. 이어진 경찰의 감찰조사에서 경찰이 철거민들을 향해 골프채로 골프공을 날린 사실이 밝혀지자 경찰은 29일 일산경찰서 방범순찰대장을 직위해제했다.

결국 주공의 의도대로 망루는 철거되었다. 참여정부를 자임하던 노무현 정권은 6월 8일 폭력경찰을 동원해 망루농성장에 대해 무자비한 강제철거를 자행했다. ‘테러집단’도 아닌 수청동 철거민 30여 명을 끌어내기 위해 경찰 2500명과 경찰 특공대 50명이 투입된 것이다. ‘공권력’이라는 ‘명분’으로 정부가 막강한 물리력을 동원한 것은 주거생존권을 요구하는 힘없는 철거민들의 소박한 요구를 말살한 행위였다. 이 사건으로 불의의 죽음을 당한 철거용역, 죽음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고 감옥에 갇힌 철거민들은 모두 ‘공공의 이익’으로 치장된 국가폭력에 내몰린 희생자들인 것이다.

위 사진:2005년 6월 8일 대형 컨테이너 2대를 타고 진압을 시작한 경찰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죽음 뒤에 가려진 책임

어떠한 경우에도 강제철거는 심각한 인권침해이다. 개발과정이 공익사업이라는 명분에 부합하려면 민주적인 절차와 함께 끝까지 협의를 통한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 때문에 1993년 유엔인권위는 △강제철거(퇴거)는 인권에 대한, 특히 적절한 주거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이고 △정부는 강제철거를 없애기 위한 즉각적인 조치를 취해야 하며 △정부는 현재 강제철거의 위협에 직면한 모든 사람들의 점유안정을 위한 협의를 하고, 관련된 사람이나 집단의 효과적인 참여와 자문, 협상에 기초하여 강제퇴거로부터 완벽하게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취해야 하고 △모든 정부는 강제철거되는 사람이나 지역사회에 그들의 희망과 필요에 따라 적절한 보상과 충분한 대안적인 거처나 토지를 제공해야 하며 △여기에는 영향을 받는 사람이나 집단과 상호 만족할 만한 협상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권고한 것이다.

강제철거에 이르게 된 과정도 문제지만 주공과 철거용역업체도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 왜 주공은 양옆 건물 위에서 이미 투석전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그 밑으로 용역을 진입시켰을까?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사고를 유발해서 그 빌미로 경찰을 끌어들이고 경찰의 힘을 빌려 철탑을 철거하겠다는 의도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철거를 담당한 용역경비업체도 경비업법 2조 1호에 ‘시설경비업무’와 ‘신변보호업무’ 등으로 역할이 규정되어 있음에도 여기서 벗어난 강제철거를 자행했다. 강제철거가 철저히 경찰의 묵인과 방조 하에 이루어졌다는 점도 문제이다. 경비용역업체 직원의 증언에 따르면 현장에서 경비업체 측이 강제철거시기를 늦추려고 하자 경찰은 오후 2시까지 진입하지 않으면 병력을 철수시키겠다고 위협하며 강제철거를 독려했다고 한다.

철거용역의 죽음과 관련해 1심에서 철거민 11명은 상해치사 등의 혐의로 징역 2년 6월에서 6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에서 서울고등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이재환)는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하여 위 빌라를 점거하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54일간 농성을 한 것은 법치국가에서 용인될 수 없다”면서도 주공이 경비용역업체 직원을 무리하게 투입한 점 등을 감안해 5명에게 실형을 낮춰 선고하고 나머지에게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했고 이들 중 다수는 아직도 감옥에 갇혀 있다.

개발과 경기부양 그리고 주거권의 죽음

개발 이익에 눈먼 건설자본과 이에 편승한 정권은 주택 건설을 이유로 개발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주거권을 무시하고 오직 극대 이윤에만 초점을 맞춰 왔다. 하지만 철거민의 입장에서는 개발인근지역의 땅값과 집값, 전월세의 폭등으로 이주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자녀들의 교육문제와 직장문제 때문에 무작정 떠날 수도 없다. 이런 이유로 60~7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십 명의 철거민들이 철거용역과 ‘공권력’에 의해 사망했지만 개발은 그칠 줄 모른다. 그리고 오늘도 용산과 수원시청 앞에서 그리고 전국의 ‘개발독재’ 현장에서 장기간 투쟁하는 철거민들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노무현 정부의 개발정책을 이어받는 것도 모자라 주택공급 확대를 명분으로 전국을 ‘뉴타운’으로 만들 기세이다. 하지만 주택을 건설하기 위해 서민들의 주택을 빼앗는 행태가 언제까지 정당화되어야 하는가? 가난한 노동자들의 주거권을 착취하는 ‘경기부양’이란 과연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인가? 일당을 벌기 위해 철거용역으로 나섰다가 고인이 된 20대 초반의 청년, 지금도 감옥에 갇혀 있는 수청동 철거민들, 그리고 앞으로 계속될 죽음 앞에서 우리는 집요하게 물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장창원 목사는 오산노동자문화센터 대표입니다.
인권오름 제 86 호 [기사입력] 2008년 01월 08일 19:3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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