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의 인권이야기] 이명박 정부, 라디오에 컨테이너박스를 쌓다

공동체라디오 미뤄두고, 영어FM 추진하는 방송통신위원회

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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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2일, 또다시 광화문에 갈 일이 생겼어요. 그런데 이번엔 ‘촛불집회’에 참여하기 위해선 아니었어요. 현 방송통신위원회의 ‘영어FM’ 사업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에 참여하려고 광화문에 위치한 방송통신위원회 앞에 간 것이죠. 아니, 이건 웬 광화문 사거리의 컨테이너 박스 쌓는 소리냐, 갑자기 ‘영어FM’이라니! 이 사실을 건네 듣는 지인들도 어리둥절해 하면서 무슨 말인지, 왜 반대하는지 묻더라고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역에서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저조차 기자회견 당일 아침이 되어서야 이런 황당한 일의 전모를 알게 되었을 정도예요. ‘영어FM’ 사업의 밀실 더하기 졸속 추진의 힘이랄까요? 지역의 소수자들과 커뮤니티를 위한 공동체 라디오에게 ‘주파수 없어’ 허가 내기 힘들다고 말하던 방송통신위원회가 무슨 재주가 있어 한 달 만에 ‘영어FM’ 사업자 선정까지 할 수 있었을까요, 정말 조화 속입니다.

위 사진:방송통신위원회가 공동체라디오는 제쳐두고 영어FM 사업을 추진하는 것에 항의하는 기자회견 모습.

방송통신위원회의 영어FM 사업을 비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영어FM’ 사업을 추진하는 데 시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고 밀실에서 독단적으로 추진했다는 점입니다. 국가의 작은 정책이라도 추진할 때에는 형식적으로나마 관련 전문가나 시민들의 의견을 들어 보는 ‘공청회’라는 걸 하도록 되어 있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조차도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국민의 기본권이라고 하는 방송참여권과 접근권 관련 사업을 추진하는데 내실 있는 공청회 한 번 하지 않았습니다. 시민들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사회의 다른 구성원과 소통할 수 있는 미디어를 만드는 과정에 대해 정보를 들을 수도,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의견을 낼 수 있는 통로조차 없다는 건 비상식입니다.

두 번째는 지역사회와 사회적 소수자들의 소통의 장인 공동체 라디오 사업은 뒤로 한 채 영어FM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공동체 라디오는 지역, 특히 주류 미디어에 접근성이 거의 없는 사회적 소수자들이 발언할 수 있는 통로입니다. 제가 참여하고 있는 비혼 여성 방송 <야성의 꽃다방>, 레즈비언 라디오 프로그램인 <L양장점> 뿐 아니라, 대구 성서 지역 노동자와 함께하는 <작업복에 희망을 싣고>,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담는 <괄호 밖 세상> 같은 방송들 모두가 지역의 공동체 라디오를 통해 이야기하고, 사회와 소통하고 있습니다. 시범기간이었던 지난 3년간, 공동체 라디오는 지역의 커뮤니티와 소수자 커뮤니티의 소통에 숨통을 틔우고, 차이가 있는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거창한 국가 정책 속, 그야말로 정치적으로 이용할 때나 쓰는 그 속 뻔한 슬로건인 ‘국민화합’이 아니라, 일상과 지역, 이웃들과 함께 차이를 안고 가는 소통을 통해 속도는 느리지만 꾸준히,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공동체 라디오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캐나다나 일본, 미국에서 그토록 많은 공동체라디오가 몇 십 년의 세월, 소수자와 시민들의 손으로 살아 숨 쉴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죠.

당연히 한국 사회에도 현재의 8개 시범사업을 넘어서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사업을 승인하고 확장하는 게 필요한 단계입니다. 그런데 방송통신위원회는 공동체라디오 확대는커녕 오히려 공동체 라디오 사업의 추진을 실질적으로 중단한 상태입니다. 설상가상으로 공동체 라디오의 출력은 1W까지만 허용하고 있는 현실에서, 영어FM은 그 1000배에 달하는 1KW를 내주었고, 주파수 없어서 방송허가 힘들다더니 영어FM 사업에는 2개의 주파수를 내주었습니다. 심지어 이 사업에 들어갈 11억의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방송발전기금 예산을 변경까지 했다니 도대체 영어FM 사업이 그토록 시급하고도 중요한 이유가 뭘까요?

정부가 언론을 통해 밝힌 사업의 내용은 이래요.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정보욕구를 충족시키고,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이해를 높이기 신규 영어FM 방송이 필요하다, (중략) 사업 주체도 사업의 공익성을 고려하여 지방자치단체로 한정 한다”

이걸 보면, 지금 방송통신위원회가 공동체 라디오 사업은 묶어 둔 채 영어FM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분명한 비상식임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국민과의 소통을 열변하는,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 간의 이해와 소통을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하는 정부가, 그 풀뿌리가 될 공동체 라디오 사업은 미루어 둔 채 ‘서비스’ 차원의 영어 FM이라는 방송 상품을 기획하고 있는 상황 분명 비상식이지요, 모순입니다. 아니, 일견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광화문에 쌓은 컨테이너 박스를, 라디오, 텔레비전에 못 쌓으리란 법은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공동체라디오와 같은 사회 구성원의 직접 발언의 장과 구성원 상호간의 작지만 진실한 소통의 장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래서 결국 우리들 앞에 묵묵부답의 거대한 컨테이너 박스만이 존재한다면 우리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요? 절망 앞에 서 있는 시민들과 사회적 소수자들의 발언은 어디에서 출구를 찾아야 하는 걸까요? 하루가 다르게 높아만 가는 이명박 정부의 닫힌 귀, 컨테이너 박스 앞에 답답함과 분노가 쌓여가는 건 저 뿐만은 아닐 겁니다. 시민들이 말할 수 있는 권리, 소통할 수 있는 권리들을 보장해야 합니다. 공동체라디오,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 이런 것들은 평화의 기본적이며 절대적인 조건이라는 걸 새삼 느끼는 요즈음입니다.
덧붙이는 글
수수 님은 마포FM의 ‘야성의 꽃다방’, ‘L양장점’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권오름 제 109 호 [기사입력] 2008년 06월 25일 6: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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