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평등과 연대를 일굴 수 있기를

[발로 걷는 평화교육] 성미산 학교 수업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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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학기 동안 성미산 학교에서 매주 한 번씩 사회 수업을 했다. 수업을 마치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나는 이 수업을 왜 했던 걸까?’이다. ‘아, 그래. 아이들과 이런 얘기도 하면 좋겠어’라는 생각으로 무작정 시작했는데 과연 내가 잘한 짓인지 싶다. 그리고 수업을 마치고 나서야 이제 ‘교육이란 게 뭘까?’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교육에 대한 나의 첫 번째 바람은 교육이 사람들을 평등하게 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갓난아이의 경우에서 보듯이 사람은 누구나 배고프면 먹고 싶고, 졸리면 자고 싶고,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는다. 저 아무리 잘난 인간이라고 해도 먹고, 자고, 울고, 웃는 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사람이 평등한 거다. 평등은 거대한 이념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생각과 행동을 한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한국 사회는 버스를 운전하고 식당에서 밥 나르는 분들을 존중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회사 사장이 월급 주고, 부모님이 용돈 주는 것에만 감사해 할 것이 아니라 지하철 화장실 청소하는 분들에게도 깨끗한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주셨다고 감사할 줄 알도록 하는 것이 교육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그 사람에게서 나온 노동도 평등하기 때문이다. 또 그 노동이 나에게 이로움을 줬는데도 고마워할 줄 모른다면 그것은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 사진:성미산 학교 학생들과 함께

두 번째 바람. 교육이 사람들을 연대하게 하면 좋겠다. 세상 모든 것은 이어져 있다. 미국의 부자들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기름값을 올리는 동안 가난한 사람들은 밥을 지을 연료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조금 참으면 될 것을 당장에 참지 못하고 에어컨으로 실내온도를 1도 낮추는 동안 북극의 얼음은 녹고 있고, 이는 결국 또 힘없는 사람들이 살 곳을 잃게 만든다.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서로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참여하고 있다.

그래서 연대하자는 거다. 누구도 외롭지 않고 억울하지 않게.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그 행복이 하느님이나 훌륭한 대통령이 나와서 안겨 주는 선물이 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각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다른 이를 위해서 무언가를 하도록 나서는 그런 삶 말이다. 나는 60억을 위해서, 60억은 나를 위해서라고나 할까.

세 번째 바람. 교육이 사람들이 자기 삶의 길을 찾도록 하면 좋겠다. 요즘 보면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많다. 10년 전, 20년 전과 비교해 보면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진 사람이 많은데 그에 비해 삶의 길을 잃고 사는 사람도 늘어나는 것 같다. 근데 삶의 길이라는 것이 과연 혼자 방에 갇혀서 생각한다고 얻을 수 있는 걸까?

삶의 길을 찾기 위해서라도 평등한 삶, 연대하는 삶을 살면 좋겠다. 콩 없이 두부를 만들 수 있을까? 팥 없이 팥빙수를 만들 수 있을까? 물과 햇빛 없이 나무가 자랄 수 있을까? 이렇듯 기본이 잘 갖춰져 있어야 뭐라도 만들 수 있고 태어날 수 있다. 사람은 어떨까? 사람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제대로 맺지 않고 삶의 길을 찾을 수 있을까? 깊은 외로움을 느껴본 사람은 알 거다. 사람이 결코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위 사진:마지막 수업작품 가운데 하나

바그다드에 사는 무함마드나 제이넵을 떠올리며 우리가 한국에 있는 미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하는 것은 단지 무함마드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건 바로 나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다른 존재들과 어울려 살아야 하는 존재로서, 다른 존재들과의 만남과 교류를 통해서 더 큰 기쁨을 얻을 수 있는 존재로서 살아보자는 거다.

그리고 교육이 해야 할 역할이 하나 더 있다면 바로 사람이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 수 있도록 생각할 기회를 만들어 주고, 행동할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일 게다.

덧붙이는 글
미니 님은 ‘경계를 넘어’(http://ifis.or.kr)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14 호 [기사입력] 2008년 07월 29일 16:5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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