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차별을 가르치나?

[삘릴리~ 학생인권 마술피리] (5) 차별에 맞서라 … 교육에서의 차별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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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인권오름>은 ‘인권교육센터 들’과 함께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연속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학생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지만 학교의 변화는 더디기만 하고 뒷짐 진 국가의 태도 역시 여전합니다. 학생인권을 지원하는 법률과 정책이 부족한 상태에서도 학생과 교사들이 일어선다면 일구어낼 수 있는 변화는 많습니다. 변화를 위한 구체적인 설계도로서 학생인권에 관한 종합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이 가이드라인이 학생인권을 부르는 마술피리가 되어 인권이 꽃피는 학교를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모두를 위한 교육’이라는 말은 교육에 접근할 기회마저 박탈당한 제3세계 가난한 어린이들의 모습을 가장 먼저 떠오르게 한다. 교실이 없어 땡볕에서 마당을 공책 삼아 글씨 쓰기를 배우는 아이들, 학교가 너무 멀어 배움을 포기하는 아이들, 가족을 먹여 살릴 돈을 버느라 채석장이나 카펫 공장에서 밤낮 없이 일하는 아이들……. 그렇다면 이런 문제들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한국은 모두를 위한 교육을 실현하고 있을까?

‘찌질이’들을 위한 교육의 자리는 없다

2006년 국가청소년위원회가 남녀 중고생 2,910명을 대상으로 학교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이나 인권침해 사례를 물었더니 29.6%의 학생이 ‘성적 차별’을, 20.1%의 학생이 ‘인신공격성 폭언’을 꼽았다. 성적 차별과 인신공격성 폭언은 공부도 못하고 뭐 하나 예쁨 받을 만한 구석도 없는 ‘찌질이’들이 경험하는 대표적인 폭력이다.

이제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은 지났다. 가난하고 못 배운 부모 밑에서 ‘똘똘이’가 생겨날 확률은 거의 없다. 그만큼 집안의 경제·문화적 자본이 학력에 미치는 결정력이 커지고 있는 셈이다. 예나 지금이나 학교와 지방자치단체들은 이른바 ‘인(In) 서울’, ‘명문대’ 진학률을 높이는 데만 목을 맨다. 최근에는 공부 잘하는 학생, 공부 잘할 준비가 되어 있는 학생들만 챙기는 태도가 한층 노골화되고 있다.

위 사진:지난 4월 19일 이명박 정부의 ‘학교 자율화 조치’를 비판하는 청소년 촛불집회가 열렸다. [출처;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2005년 전북 순창군은 전국 최초로 ‘옥천인재숙’이라는 기숙형 공립학원을 세웠다. 순창군은 국영수 성적만으로 2백 명을 가려 뽑아 매해 10억여 원을 쏟아 붓는다. 옥천인재숙과 비슷한 공립학원은 이미 전국 10개 도시 이상에 들어서 있다. 성적 우수자만을 위한 기숙사나 ‘면학실’을 운영하면서 특별 우대하고 있는 학교도 부지기수다. 이명박 정부가 발표한 ‘4·15 학교자율화 조치’ 이후, 이른바 ‘소수 1%만을 위한 교육’은 더욱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중이다.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이 여론의 눈치를 보며 우열반 편성은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학생들 입단속하며 우열반을 편성하거나 성적우수자 보충수업을 따로 실시하는 학교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우열반이라는 화마는 이제 초등학교까지 집어삼키고 있다.

일찌감치 ‘찌질이’로 낙인찍히고 교육 지원으로부터 제치어진 학생들이 학습에 대한 동기를 잃어버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학교 공부도 지겹고 차별대우에 지친 학생들은 학교를 떠난다. 그리고 학교는 이를 공정한 경쟁의 결과로 포장함으로써 또다시 폭력을 행사한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지난 5월 국가인권위원회는 교육기회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차별이라는 결정을 내놓았다. 특정 과목의 성적을 기준으로 하여 교재나 수업 등을 달리 편성하는 것은 특정 학생만을 우대하고 나머지 학생들에게는 열등감만 갖게 만드는 분리교육이라는 것이다.

유네스코가 채택한 ‘교육에서의 차별 철폐 협약’(Convention against Discrimination in Education) 1조 역시 어떤 개인이나 집단에게 일정 유형이나 단계의 교육에 대한 접근을 배제하는 것, 저급한 수준의 교육에만 한정시키는 것을 차별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지난 2003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역시 한국정부가 제출한 정기보고서를 심사한 뒤, 한국교육의 지나친 경쟁 풍토가 아동의 잠재적 능력을 실현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쟁교육이 모든 아동을 불행에 빠뜨릴 뿐 아니라 특정 아동에게는 차별이 되고 있음을 정확하게 꼬집은 것이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의 결정도, 국제적으로 합의된 차별 기준도 신자유주의 경쟁교육의 광풍 아래서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가난한 학생들, 차별의 덫에 걸리다

위 사진:평택 은혜고등학교에서 ‘푸른교실’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에게 단체기합을 주고 있다. [출처; 임정훈]
전문계(구 실업계) 학생은 고등학교 진학에서부터 ‘낙오자’, ‘열등생’, ‘양아치’ 등 삐딱한 시선과 맞부딪혀야 한다. 집안 형편이 부유한 학생도 거의 없고, 먹고 살기에 바빠 학교일에 열성으로 참여할 수 있는 보호자도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학생을 깔보고 함부로 대하는 학교도 많기 마련이다. 지난 6월 광주 송원여상에서는 학생들 전체가 수업을 거부하는 일이 일어났다. 송원여상에서는 체벌, 언어폭력, 성희롱에다 뺨을 때리고 몸을 뒤지는 일까지 예사로 일어났다고 한다. 심지어 이 학교는 ‘왜요?’라는 질문을 금지어로 정해둘 정도였다. 얼마 전 평택의 은혜고등학교에서 지각이나 복장 불량으로 걸린 학생들을 방과 후에 남겨 단체기합을 주는 ‘푸른교실’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 현직 교사의 제보에 의해 밝혀지기도 했다. 인문계와 전문계가 함께 있는 이 학교에서 전문계 학생들은 더 혹독하고 모욕적인 취급을 당한다고 말한다.

지난 7월 6일 새벽에는 안양 근명정보산업고에 재학 중이던 신나래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있었다. 신나래 학생은 1급 장애인인 아버지와 노점상을 하시는 어머니와 함께 어렵게 살고 있었다. 나래가 다니던 학교에선 성적에 따른 차별 대우와 인격을 모독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났었다는 게 부모님의 주장이다. 기초생활수급자라거나 학교운영비와 급식비 등을 내지 못한 학생 이름이 반 친구들 앞에서 함부로 공개된 일도 있었다고 한다.

2006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전국 지역아동센터(공부방)를 이용하는 어린이·청소년 1,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10명 중 2명이 공부를 못하거나 집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교사로부터 차별당한다고 느낀다고 답했다. 기초생활수급자들을 얕보거나 가난을 개인의 잘못으로 비난하는 교사들의 시선, 급식비나 수업료 등을 지원하면서도 적선하듯 던져주는 학교의 태도는 학생들의 가슴에 예리한 비수가 되어 꽂힌다. 학교가 가난한 집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토닥이기는커녕 외려 더 큰 상처만 안겨다 주는 꼴이다.

유네스코의 ‘교육에서의 차별 철폐 협약’은 교육이 학생의 존엄과 양립하기 힘든 조건을 부과하는 것 역시 차별이라고 꼬집은 바 있다. 공부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 잘사는 학생과 가난한 학생으로 쉽게 구분짓고 체벌과 기합, 언어폭력 등으로 모욕적으로 대우하는 것은 학생들의 존엄을 해치는 조건을 부과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학생들 사이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아예 ‘없는 존재’로 취급하면서 나타나는 비가시적 차별문제도 심각하다. 성적정체성, 가족형태 등에서 이른바 ‘정상성’의 범주에 속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학교는 둥지가 되어주지 못한다. 오히려 낙인과 차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학생을 움츠러들게 만들고 자기 자신을 부정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데 어버이날에 아빠 손을 그려오라는 숙제를 받는 학생, 청소년의 성에 개방적인 교사들조차 ‘이성’교제만을 당연시할 때 자기의 사랑을 숨길 수밖에 없는 학생, 밤새 술 취한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다 지옥 같은 마음으로 등교한 학생, 밤늦게까지 아니면 새벽부터 교통비라도 덜 요량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다 등교한 학생들에게 학교는 과연 어떤 공간으로 다가갈까?

차별에 기대 학생을 통제하다

위 사진:학생들 사이에 위아래를 조장하는 선도부는 차별에 기대서 있기도 하다. [출처; 교육희망]

학교가 차별을 조장하고 활용하면서 학생 통제의 편리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잦다. 학교는 고학년에 대한 우대 정책을 통해 저학년에 대한 통제를 유지하곤 한다. 고학년부터 급식을 배식하는 일, 고학년 학생들로 선도부를 꾸려 저학년 학생들의 품행을 단속하고 벌점을 매기도록 함으로써 우월의식을 갖게 만드는 일은 학교의 흔한 풍경이다. 두발규정을 정하면서도 여학생에게는 두발 길이를 자유로 해주면서 남학생에게는 엄격한 제한을 둔다든지, 성별에 따라 기숙사 통금 시간을 달리 둔다든지 하는 학교도 많다. 그러다 보면 학교를 향해야 할 비판이 ‘이성’의 동료 학생들에게로 향하게 마련이다. 차별에 기댄 학생 통제 정책은 자연스레 학년 사이의 위아래를 굳건하게 만들고 성별 고정관념을 확산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다양성은 교육의 주춧돌

모든 사람은 어떠한 이유로든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는 부당하게 구분되고 분리되지 않는 것뿐 아니라 존재 그대로 다르게 사는 것도 포함한다. 학교가 예뻐하는 ‘주류’, 학교가 당연하다고 전제하는 ‘정상’에 끼지 못한 학생들은 교육에서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거나 부당한 구별이나 분리, 제한, 배제에 노출되기 쉽다. 차별에 기댄 교육은 차별을 공식적으로 가르치는 교육이다. 게다가 학교가 내켜하지 않는 학생을 학교로부터 밀어내고 부당한 ‘실패’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음으로써 차별을 키우고 지속시키는 결과까지 초래한다.

학교는 학생의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고 다양성을 교육의 주춧돌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수업, 학교규정 등을 포함하여 학교생활 전반에서 존재하는(또는 잠재하는) 차별을 확인하고 이에 맞서기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조직해야 한다. “비차별의 원칙은 권리의 인정과 실현을 위해 특별한 조치가 필요한 아동 개인과 집단을 찾아낼 것을 요구한다”라는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일반논평(5의 12항), “비차별의 원칙은 사회권의 점진적 실현과 자원의 가용성에 의해서도 제한될 수 없다”고 꼬집은 유엔사회권위원회의 일반논평(13의 31항)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학생인권 마술피리 다섯째 소절 : 차별 없는 학교

○ 학생은 학교생활 전반에서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없이 존엄하고 동등한 대우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합당한 이유 없는 분리, 구별, 제한, 배제는 물론 괴롭힘도 차별이다.
○ 학교는 모든 학생의 권리가 차별 없이 존중, 보호, 실현될 수 있도록 차별 근절을 위한 구체적이고 적극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의 권리 실현을 위한 적극적 조치로서 취해지는 우대 정책은 차별이 아니다. 분리교육은 합당한 이유와 해당 학생의 동의에 기반을 둬야 한다.
○ 성적을 이유로 한 차별은 금지된다. 교육과정과 학교생활, 시설 이용 전반에서 성적을 이유로 학생을 우대 비교하거나 학생의 참여를 제한할 수 없다.
○ 학교는 합당한 이유 없이 교육과정과 학교생활에서 여학생과 남학생을 구분하거나 한쪽 성에 불리한 대우를 해서는 안 된다.
○ 학교당국은 학년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학생의 의사를 동등하게 대해야 한다. 특히 하급학년의 경우에는 학생 의사를 충분히 파악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학교는 학년 사이의 위계와 차별의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모든 학생은 가정의 경제적 수준에 관계없이 동등하게 배움을 누릴 권리가 있다. 학교는 빈곤 가정의 학생이 편견에 노출되지 않도록 ‘권리에 기반을 둔’ 경제적, 정신적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가정 형편에 따라 다른 교육활동을 제공하는 것도 차별이다.
○ 학교는 다양한 가족형태의 존재를 존중하고, 특정한 가족형태만을 ‘정상가족’으로 인정하고 다른 형태의 가족을 비하하는 등 교육과정에서 편견과 차별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 학교는 가출 학생을 대할 때 가출의 원인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지원해야 한다. 가출 자체를 징계 대상으로 삼고 가출 학생에 대해 도덕적 낙인을 부여하는 것은 차별이다.
덧붙이는 글
배경내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http://dlhre.org)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14 호 [기사입력] 2008년 07월 29일 17: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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