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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삘릴리~ 학생인권 마술피리] (7) 교육에 대한 권리

한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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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인권오름>은 ‘인권교육센터 들’과 함께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연속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학생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지만 학교의 변화는 더디기만 하고 뒷짐 진 국가의 태도 역시 여전합니다. 학생인권을 지원하는 법률과 정책이 부족한 상태에서도 학생과 교사들이 일어선다면 일구어낼 수 있는 변화는 많습니다. 변화를 위한 구체적인 설계도로서 학생인권에 관한 종합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이 가이드라인이 학생인권을 부르는 마술피리가 되어 인권이 꽃피는 학교를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학교 교육은 곧 입시 교육이라는 도식이 여전히 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학생들이 배움에 대한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는 경우는 드물다. 0교시와 야간 자율학습은 학습권의 보장으로 둔갑하고, 체벌은 학생의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한 교사의 적극적인 개입이라는 논리로 포장된다. 새 정부가 올해 들어 발표한 4.15 학교 자율화 조치 역시 ‘자율적인’ 입시 강화에 불과하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교육의 주체로 학생을 인정하고, 그들의 욕구에 부합하는 학교 문화를 조성하는 것은 왜곡된 교육권의 의미를 재인식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의 목표’가 빠진 학교 자율화 조치

교육의 목표는 학생의 사람됨과 잠재력을 계발하고 인권과 평화, 민주주의, 자연과의 공존 등 인류 모든 구성원이 자유롭고 평화롭게 지내기 위해 필요한 가치를 익힐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할 문제는 경쟁적 교육 풍토를 변화 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학교는 직접적인 교육 내용의 구성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학교 문화, 교사의 교육 태도, 학급의 급훈 등 잠재적인 교육 과정 속에서도 경쟁을 유발하고 암시한다. 입시를 교육의 중심에 둔 경쟁의 강화는 그 자체가 인권 침해 상황을 낳는 동시에 학생들 사이의 동등한 동료 관계 형성을 방해함으로써 서로간의 인권 침해와 분열을 조장한다. 교육에 대한 권리는 감당할 만한 수준의 배움을 요청할 권리여야 하는데, 고등학교 학생 대부분은 심각한 수면 부족을 호소할 정도로 감당하기 벅찬 교육 환경 아래 놓여있다.

위 사진:웃어넘길 순 없는 학급의 급훈들[출처;1318바이러스]
대학 서열화와 이에 따른 입시 경쟁의 첨예화가 사라지지 않으면 사실상 학생들의 교육권 실현은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정부는 4.15 학교 자율화 조치를 통해 단위 학교의 자율성을 높여 다양한 교육 기회를 보장하겠다고 하지만 문제의 핵심인 입시를 건드리지 않고 단위 학교에 자율을 부여한다고 해서 실질적으로 학생들의 교육권이 확장되는 방향으로 학교의 변화가 이루어질리 만무하다. 각 학교들은 본교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소위 일류 대학에 더 많은 학생을 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이고, 다시금 현재의 학교 규율을 강화하고 획일적인 교육을 강제할 것이다. 실제로 학교 자율화 조치 발표 이후 각 시도 교육청에서 추진하고 있는 계획들을 살펴보면 0교시 수업, 야간 보충 수업, 우열반 확대, 사설 모의고사 실시 등 주로 입시 체제를 강화하는 정책들로 채워져 있다. 자율화 조치 이전에는 그나마 ‘입시 경쟁 교육’이라는 지적으로 숨기고, 변명하는 시늉이라도 했지만, 이제는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대놓고 입시 교육에 ‘올인’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게 됐다. 정부는 사실상의 교육파탄을 공모하고 있으면서도 ‘학교 재량과 자율에 맡긴다’는 말로 입시 교육 강화에 대한 책임을 계속 회피하고 있다.

자율화만 있고, 자유는 없는 학교 - 쏙 빠진 학생 참정권

학교 자율화 논의에 학생 자치 확장이나 자유의 신장은 역시 포함되어 있지 않다. 교육 과정과 정책에 대한 학생 참여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현실은 이번 교육감 선거를 통해서도 이슈화된 바 있다. 교육 정책에 가장 직접적으로,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학생들에게 교육감 선거권/피선거권이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학교 안팎의 중요 사안을 결정할 때에도 법제화된 자치 기구가 없어 학생 의견의 반영은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생회가 있기는 하지만 심의․의결권이 없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으며 지도 교사의 사전․사후 간섭으로 자유롭게 의사를 결정할 수도 없다. 심지어 학생회의 이름으로 ‘두발의 자율적인 규제’가 결정되는 등 민주성을 가장하는 학교 당국에 이용당하기도 한다.

국제중 도입은 학교 선택권의 확대?

최근 당선된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은 앞으로 1년 10개월간의 임기 동안 ‘교육의 평등성과 수월성’을 동시에 추구해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임기 내 도입하겠다는 국제중학교는 공 교육감이 밝힌 교육의 평등성 실현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다. 공정택 교육감은 국제중학교의 도입이 학교 선택권의 확대라고 주장하지만 국제중의 도입은 사실상 중학교 입시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입시 경쟁이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되는 것을 말한다. 더불어 불평등한 교육의 심화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일등과 꼴찌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는 바꾸지 않고, 너도 일등이 될 수 있다는 환상만 불어 넣으며, 똑같은 트랙에서 의미 없는 달리기를 하게 만드는 꼴이다.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입시 이외의 다른 길을 택할 경우 적자생존의 세계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음을 학생들에게 각인시킨다. 획일화된 경쟁의 강화를 교육 다양성의 확보, 선택권의 강화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위 사진:4.15조치가 “학생들의 교육권과 발달권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청소년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더욱이 국제중은 모두가 선택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라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서울시교육청 계획대로라면, 오는 11월부터 대원국제중학교와 영훈국제중학교에서 신입생을 각각 160명씩 선발하게 된다. 분기별 수업료가 120만원, 1년 수업료는 480만원이다. 여기에 학교운영지원비나 급식비, 각종 학부모부담경비 등을 합하면 1년에 들어갈 돈이 1천만 원을 훌쩍 넘기게 된다.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학교는 아닌 것이다. 국제중을 도입하는 이유로 ‘해외에 장기 거주한 귀국 학생의 교육연계성’과 ‘국제 분야에 대한 교육 기회 제공으로 유학 욕구 수용’을 들고 있지만 이는 ‘조기유학’을 갔다 오거나 혹은 가려는 학생을 위한 것이라는 점, 다시 말해 특정 지역, 특정 계층의 선택지만을 고려한 정책일 뿐이다.

남용되는 학습권 박탈

학교 현장에서 학습권의 박탈 문제 또한 심각하다. 공부하고 있는 학생을 수업 시간 중에 불러내는 것은 손쉬운 처벌 수단으로 남용된다. 심지어 교무실로 불러내 잡무를 시키는 경우도 있다. 최근 촛불 시위가 한창이었던 지난 5월, 경찰이 광우병 촛불시위 집회 신고를 낸 전북의 한 고3 학생을 수업 중에 불러내 불법적으로 조사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집회․시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인데, 합법적인 국민의 기본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범죄인 취급을 하며 불법 수사를 행하는 것은 경찰의 직권 남용인 동시에 명백한 학습권의 침해이다.

학생 선수의 교육권은 어디에

학생 선수의 경우 과도한 경기 참여와 훈련으로 학습권 박탈 상황에 빈번하게 직면한다. 엘리트 체육 정책 하에 학교는 운동기능의 향상과 승리만을 위해 혹독한 훈련을 감수해야하는 고통의 장이다. 2003년 10월에는 전국체전 출전을 위해 무리하게 체중을 감량을 한 학생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으며, 2007년 4월에는 초등학교 운동부 코치의 과도한 기합과 폭력 행사가 언론을 타고 알려지기도 했다. 전체 코치의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남성 지도자들은 선수들의 출전 시간과 진학, 취업을 통제하는 제왕적인 절대 권위자로 군림하며 공공연한 구타와 가혹한 훈련, 무리한 합숙생활 등을 종용하는 등 구조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위 사진:국제중 반대 시위[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학생 선수는 선수이기 이전에 배움의 과정에 놓여있는 학생이자 존엄한 인격체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학교 당국은 학생 선수의 훈련과 합숙, 대회 참석 등 선수 생활 전반에서 교직원이나 선배에 의한 부당한 폭력, 과도한 기합, 언어폭력, 성폭력 등이 일어나지 않는지 감독해야 한다. 또한 부상으로 운동을 그만두거나 상급 학교 진학 시 선수로 진학하지 못한 학생은 큰 불안을 겪을 수 있으므로 학습 부진을 극복하고 새로운 진로를 모색할 수 있는 교육적 보살핌을 제공해야 한다.

학교 당국은 학생이 감당할 만한 최선의 교육을 제공할 의무가 있지만, 학교가 모든 학생에게 최선의 교육을 제공할 유일한 공간이 아닐 수 있음 또한 인정해야 한다. 학생의 교육권 보장을 위해 가장 중요한 전제는 학생들이 처한 상황과 다양한 일을 경험하고 싶은 욕망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학교에서 과도한 학습량을 주는 것이 교육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제반 조건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 그 진정한 의미다. 이러한 관점에서 탈학교 선택의 권리, 결석할 권리 등이 긍정적인 하나의 선택으로 자리 잡을 수 있어야 한다.

학생인권 마술피리 일곱 번째 소절: <교육에 대한 권리>

○ 학교 당국은 교육 목표가 학생의 전인적 성장을 지원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 학생은 배움의 내용과 형식, 일정 등을 결정하는 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갖는다.
○ 학생에게는 자신의 잠재력과 재능을 계발할 수 있는 다양한 배움을 누릴 권리가 있다.
○ 학교 당국은 모두를 위한 무상교육이 점차 확대되어야 한다는 원칙 아래 가용자원의 최대한도로 적절한 학습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학생에게서 학습권을 박탈하는 행위는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 학생은 차별 없이 교육시설과 프로그램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 학생선수는 선수이기 이전에 배움의 과정에 놓여있는 학생이자 존엄한 인격체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 한낱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의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18 호 [기사입력] 2008년 08월 27일 8:3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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