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에게 건강권은 유보할 수 없는 권리

[그대 건강권은 안녕한가⑧ 마지막 회]몸과 마음을 갉아 먹는 비정규직

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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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아래에서 오롯이 자아실현과 관련 없는 생계만을 위한 노동은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스의 노동’에 비유될 만하다. 노동과정은 심장과 간을 독수리에게 갉아 먹히는 것처럼 고통스러운데다 반복적이며, 그렇다고 달라질 전망조차 보이지는 않는 현실.
이중에서 비정규노동자의 삶은 더욱 비참해서 바다 깊은 곳 밑바닥처럼 빛조차 비치지 않는다. 구체적인 직종에 관계없이 비정규직이라는 조건이 한국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권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통계청이 2008년 3월에 실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서 비정규직은 858만 명으로 임금노동자의 53.6%이며 정규직은 741만 명이다.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는 상황에서 비정규직의 건강권은 비정규직만의 문제가 아닌 전 국민의 건강권이기도 하다.

위 사진: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는 노조들의 포스터들


전 세계적 신자유주의가 비정규직을 확산하고 있지만 한국만큼 비정규직이 광범위하지는 않다. 또한 비정규직이 갖는 특성 중 하나인, 고용과 실업의 반복이 주는 생활 불안정과 생계 유지에 미치는 영향은 유럽의 비정규직과 매우 다르다. 한국은 온전히 노동소득만으로 생활할 수밖에 없기에 실업은 곧 생계수단 박탈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비정규직-빈곤-불건강의 악순환

생계수단 박탈은 빈곤을 불러오고 빈곤은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한 ‘영양, 주거, 위생,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누리지 못하게 하고 최소한의 정신건강을 유지하는 ‘인간관계’마저도 단절하게 만든다. 더구나 한국 비정규직의 특성이 다른 나라와 달리 파트타임 형태의 노동보다는 기간제 노동 등의 임시직이 많다는 현실을 볼 때 ‘고용과 실업의 반복’은 자주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한 정신적․신체적 건강의 침해는 비정규직의 존재자체로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실업상태에 놓여있는 노동자의 사망률이 고용상태의 노동자의 사망률이 높다는 연구결과는 이미 유럽의 연구결과를 통해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 이향란, 최홍렬, 백도명, 고상백 등의 연구자들이 한국의 비정규직을 연구한 결과에서도 발표되었듯이, 비정규직의 건강은 정규직보다 더 나쁘다.

임시근로와 시간제 근로의 국제비교
임시근로 시간제 근로
나라 여자 남자 전체 여자 남자 전체
한국 21.5 42.7 23.6 6.3 12.3 8.8
일본 8.2 22.3 14.0 12.8 40.9 24.5
미국 4.2 4.2 4.2 7.8 18.3 12.8
유럽 15개국 14.0 15.5 14.7 6.8 32.0 18.6
OECD 13.8 15.0 14.3 6.7 29.0 16.8
「비정규직과 한국노사관계 시스템 변화 연구」(은수미 외, 2008)에서 수정 재인용
*주: 본 자료(OECD, 2006)는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전체 임금근로자 대비 임시근로와 시간제 근로의 추이임


노동권 침해가 건강권 박탈로 이어져

비정규직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또 하나의 큰 요인은 정규직에 비해 건강을 해치는 노동 조건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다. 정규직은 그나마 최소한의 노동권을 보장받지만 비정규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다. 휴게시간, 노동시간과 노동강도, 노동안전 등에 대한 안전장치가 제대로 없다. 얼마 전 보도된 <오마이뉴스> 기사처럼 많은 노동자들이 고용을 위해 건강권을 포기하기도 한다. 보도에 따르면, 여성 노동자는 ‘감전으로 팔이 잘려나갈 위험에 처했지만 재계약 안 될까 두려워 치료를 받지 않고 심지어 동료들에게까지 다친 것을 쉬쉬’하였다. 고용과 치료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건강권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정규직은 주 5일제가 대기업을 중심으로 정착되면서 노동시간이 줄어들기 했으나 비정규직의 노동시간은 정규직에 비해 여전히 길다. 장시간 노동은 신체 및 정신 건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적절한 노동시간과 휴게시간의 권리’가 노동권에 보장되었음에도 비정규직에게는 그림의 떡인 권리이다.

위 사진:<매일노동뉴스>(2007.2.)


사회보장권의 침해가 낳은 건강권 침해

비정규직은 다양한 사회보장에서 배제 되어 있다. 정부가 우리는 전 국민 의료보장 시스템과 사회보험 시스템이 되어 있다고 과장하지만 그러한 사회보장시스템으로부터 비정규직은 배제되어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의 통계청 2008 자료 분석에 따르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국민연금 및 건강보험 가입률의 차이는 두 배 이상이다. 정규직은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직장가입률이 98.3%인데 비해, 비정규직은 각각 33.4%와 35.8%밖에 안 된다. 지역가입(11.7%)까지 감안해도 비정규직은 국민연금 가입률이 45.0%로 절반 이상이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건강보험은 지역가입(32.8%),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13.7%), 의료수급권자(2.0%)까지 포함하더라도 비정규직의 15.7%가 수혜대상에서 배제되고 있다.

위 사진:고용형태별 사회보험 및 노동조건 적용률 (2008년 3월, 통계청, 단위: %)


차별이 종용하는 차별화된 시선이 낳는 정신 불건강

정규직과의 차별은 단지 임금만이 아니다. 같은 일을 해도 그에 대한 평가나 시선은 차이가 있다. 2007년 3월 기준으로 신규 채용된 초·중등 사립학교 교사 가운데 비정규직이 무려 85.6%를 차지할 정도로 비정규직교사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교원노동자들의 고통은 단지 낮은 임금만이 아니었다. 기간제 교사들에 대한 학생들의 시선은 ‘실력이 모자라’거나 ‘무시해도 되는 선생’이라는 평가여서 일상생활 자체가 불안하다. 차별화된 시선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축시켜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 뿐만 아니라 주기적으로 겪는 실업의 상태는 정신적 황폐함과 인간관계망의 위축을 낳는다.

해법? 비정규직 자체를 없애야

앞서도 줄곧 이야기했듯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권을 해치는 것은 ‘비정규직의 존재’ 자체이다. 비정규직이 사라지지 않는 한 비정규직의 건강권이 보장되기 어렵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질서에서 비정규직이 줄어들지 않고 확산되는 추세에서 ‘비정규직의 종말’만을 기다릴 수 없다. 아니 ‘종말’을 앞당기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비정규노동자들이 삶의 질을 높일 뿐 아니라 인간적인 다른 권리를 누리기위해서 먼저 제도적으로 필요한 것은 건강권을 ‘노동권을 위해 유보해서는 안 되는 권리’로 인식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다. 이를 위해서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가해지고 있는 차별을 없애야 한다. 고용형태와 상관없이 임금 및 노동시간․휴게시간 등의 노동조건을 동일하게 하고, 사회보험 등을 모두 가입하게 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내적으로는, 비정규노동자들이 노동현장에서 가해지는 차별로 ‘위축된 자존감을 회복’하고, ‘저항할 수 있는 힘’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양산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구조적 인권침해에 ‘함께’ 저항하는 연대가 절실하다.
얼마 전 노동건강연대에서 조사한 ‘비정규직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의 정신건강’ 보고에서도 발표되었듯이 많은 투쟁사업장들의 노동자들이 ‘무력감과 우울증’을 호소한다. 우울증과 무력감을 함께 이겨내려면 ‘정신건강 치유프로그램’도 필요하지만 이것만으로 안 되기에 연대가 절실하다고 하였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립된 섬이 되지 않도록 만드는 연대는 주체들의 역량을 강화하도록 이끌 수 있을 것이다. 고용형태와 상관없이 함께 ‘비정규직을 폐지’하기 위해 싸우고 연대하는 이들의 실천을 통해서, 그리고 실천과정에서 오가는 끈끈한 연대가 자존감의 회복, 건강권 확보의 길을 열어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명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23 호 [기사입력] 2008년 10월 08일 21: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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