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수다] 민중총궐기 평가 '뒷담화'를 끄집어 내다

정리/최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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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에 걸친 민중총궐기가 끝났다. 우리에게 놓인 조건은 무엇이고 어떻게 싸울 것인가는 항상 고민스러운 주제이다. '뒷담화'를 넘어 소통이 필요한 지금, 총궐기에 관한 활동가들의 평가는 어떤지 의견을 나누어 보았다. 바쁜 일정 탓에 섭외의 어려움으로 다양한 입장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우리 운동이 다시 한 걸음을 떼기 위해 지켜야할 ‘원칙’과 발휘되어야할 ‘유연함’ 사이에서 활동가들의 고뇌를 들어보았다.

수다쟁이들

사회: 최은아(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수다쟁이: 김완(문화연대 활동가)/ 김종필(한미FTA저지 범국본 활동가)/ 박석진(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손상열(인권단체연석회의 운영진)/ 안성민(사회진보연대 활동가)




#1. 민중총궐기를 둘러싼 동상이몽

(최은아) 민중총궐기의 애초 그림은 6월 항쟁이나 탄핵정국과 맞먹는 대규모 국민이 참여하는 ‘저항운동’ 이었죠. 애초 기획한 규모는 아니었지만 한미 FTA에 관한 반대 여론작업은 성공한 측면이 있어요. 하지만 ‘뻥궐기’라는 혹평도 존재합니다.

위 사진:한미 FTA 범대위 김종필 활동가
(김종필) 서울을 포함해 전국 동시다발적인 집회를 광역별로 진행한 점, 노동자와 농민이 실질적인 연대투쟁을 이룬 점은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애초 그림보다 크지 않았고, 시민의 참여가 없었던 점이 한계로 지적되었죠. 전농과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조직화된 대중을 중심으로 투쟁이 전개되다보니 큰 조직 중심으로 갔고,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단체들의 의견은 소수로 남았어요.

(안성민) 한미FTA범국본(아래 범국본) 상층에서 논의하는 것과 각 부문단위, 활동가들, 조직되지 않은 대중이 생각하는 총궐기 상에 괴리가 있었죠. 11월 총궐기로 다 모이자는 것은 각각의 사안들이 벼랑 끝까지 내몰렸고, 현 정부가 이러한 정책기조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타협의 여지도 없으니 힘을 집중해서 싸우자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반면 범국본은 각각의 사안들을 모아서 총궐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진중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범국본은 한미 FTA 사안 관련해서 반대여론을 모아내고 유리한 고지를 점하자는 식으로 총궐기를 구상했고, 각 단위에서는 총궐기를 정권과 마지막 힘겨루기를 하는 총력투쟁으로 그렸던 것이죠. 이런 점에서 ‘뻥궐기’라는 평가가 있을 수 있죠. 지속적인 실망과 허탈감, 좋은 평가를 내렸을 때의 난망함 등 만감이 교차하는 것 같아요.

(손상열) 공감합니다. 그런데 범국본이 한미 FTA를 중심으로 여론화하는 계기로만 생각한 것도 문제지만, 부문들의 상황도 크게 작용했어요. 인권단체들도 총궐기 때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을 했는데 막상 인권단체들이 놓인 11월 국회 상황이 만만치 않았어요. 일부는 국회 일정에 집중을 하다 보니 인권단체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갖고 총궐기에 모여 결합하는 것에 대한 그림이 나오지 않았어요.

(김완) 총궐기를 왜 해야 되는지에 관한 이해가 다른 것이죠. 반민주 정권에 대한 일련의 흐름들, 신자유주의 세계화 흐름의 문제에 대한 총체적인 투쟁으로 총궐기의 상을 갖고 있었던 것은 유의미했으나 실제 총궐기는 한미 FTA 반대 이상을 획득하는 데 실패했어요. 한미 FTA 연내 타결이 내년으로 넘어가면서 11월 총궐기를 해야 되는 이유가 애매해진 상황이 물리면서 총궐기를 왜 하는 것이고 이후에 상황은 어떤 것이냐 등 단기적 전망이 불투명해졌죠.

#2. 대규모 집시법 불복종은 시작되고

위 사진:인권운동사랑방 최은아 활동가
(최은아) 1차 총궐기에서 ‘관리되는 집회’에 대한 비판이 있었죠. 2차, 3차 총궐기에서는 집시법을 위반한 대규모 불복종 직접행동이 진행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이걸 ‘가투’라고 불렀죠. 위법한 집회인줄 알면서도 참여한, 부정의한 법을 의식적으로 어긴 행동이라고 볼 수 있겠죠.

(김완) 총궐기가 총궐기답게 민중의 분노로 떨쳐 일어나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하니까 합법집회냐 불법집회냐 그런 논란이 있는 것 같아요. 1차 때는 질서를 지키는 총궐기가 되었고 2, 3차 총궐기는 불복종을 자발적으로 선택했다기보다는 주어진 조건이 불복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손상열) 1차 총궐기에서 집회 시위의 자유에 대해 강하게 대응하지 못했어요. 끝까지 행진해보려고 경찰과 협의해보다가 안 되었고, 24일 정부가 담화문 발표하면서 말리기도 했어요. 경찰이 1차 집회금지를 통보했을 때, 맞받아쳐서 불복종을 선언하고 집회 시위 자유를 지키는 투쟁 속에서 2, 3차 총궐기를 했으면 좋았을텐데……. 신자유주의가 노동자, 농민의 경제·사회적 권리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정치적 권리도 침해하는 상황이죠. 그동안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은 정해 놓은 틀 안에 있었고 집회에 관한 큰 문제의식이 없었습니다. 길들여진 집회 시위 방식에 대해 되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김종필) 1차 때 서울 집회 참여하고 나서 모두들 허탈해 했어요. 반면 2차, 3차 총궐기 때에는 1차에 비해 참가자들이 활기차게 집회에 참가했죠. 대중투쟁이라는 것이 기획되고 관리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분노가 자신의 방식대로 자연스레 표출될 수 있을 때, 더 많은 힘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레 보여주었어요. 제도적인 틀 안에 매몰되어 그것을 지키는 방식으로 가서는 집회 시위의 자유도 그렇지만 한미 FTA 저지도 해법을 찾기 어려울 겁니다.

(김완) 상상력을 발휘하는 집회가 그려져야 하고, 집회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대오도 있어야 합니다.

(박석진) 대안이 될 수 있는 상상력의 필요성을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지금은 상상력은 없고 뒷담화만 있는 것 같아요. 책임 있는 비판이 되기 위해서는 당장 대안을 내놓지는 못하더라도 뭔가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정당한 비판이더라도, 대안이 없는 상황에 부딪치면 답답해지죠.

위 사진:인권단체연석회의 운영진 손상열 활동가
(손상열) 집회 시위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 획기적인 이벤트일 것 같지는 않아요. 집회를 잘 조직하는 것은 거기 모인 사람들의 정치적 에너지를 분출시키게 만들면 됩니다. 2, 3차 총궐기에 나왔던 사람들이 좋았다고 말하는 것은 획기적인 이벤트를 해서라기보다는 집회 시위에 대한 정권과 자본의 공격에 맞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죠. 틀에 갇힌 집회는 감동이 없어요. 꼭 출석 체크하는 것 같아요.

#3. 집회 시위의 자유, 감수성이 살아 숨쉬기 위해서는…

(박석진) 집회 시위에 관한 현재 운동 사회의 관성도 문제입니다. 1차 서울 총궐기는 어떻게 그렇게 ‘관리되는 집회’에 머무르게 된 것이죠?

(김종필) 집회 신고할 때 스스로 자기검열한 면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1천 명만 행진하고 1차선만 쓰겠다’고 집회 신고를 낸 것이죠. 범국본에서 서너 개 정도의 조건을 달아 집회신고를 한 거예요. 경찰에서는 ‘조건부 협약’이라고 해서 왔더라구요. 경찰에서 조건을 단 게 5가지죠. ‘1차선만 써라, 행진 도중에 멈추지 말아라, 정리 집회 없이 해산하라’ 등. 범국본 상황실에서 미리 신고를 그렇게 했고, 그걸 조건으로 경찰이 받아들였기 때문에 애초 수위 높은 투쟁을 하기에는 조건 자체가 마련되지 않았어요.

(박석진) 왜 그렇게 집회신고를 냈는지 범국본 안에서 논의한 적 있어요?

(김종필) 사전에 미리 논의하지는 않았고 집회신고를 낸 사실을 알고 난 후에 물어본 적 있는데, ‘허가가 안 날 거기 때문에(그렇게 집회신고를 냈다)’라는 대답을 들었어요. 당시에 집회신고를 해도 계속 경찰에 의해 불허되는 상황이었죠. 몇 번 하다가 안 되어서 공간을 찾다보니까 나름의 현실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 같아요. 그걸 미리 논의하지 않은 것은 심각한 문제죠.

(손상열) 운동진영에서 집회의 자유를 스스로 제한하는 것은 문제라고 봐요. 경찰은 집회주최자들과 사회협약을 만들겠다 혹은 매 집회마다 양해각서를 체결하겠다고 하지만, 경찰도 알거든요. 그것이 잘 안될 거라는 걸. 사회협약이나 양해각서 역시 결국에는 운동진영 스스로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도록 인정하는 것이 될테고…….

위 사진:사회진보연대 안성민 활동가
(안성민) 1차 때 서울의 경우 전날 전술회의에서 도대체 얼마나 참석을 하게 될지 파악이 안 되었어요. 움직일 수 있는 대오가 확인되어야만 집회의 그림이 나오는데 그게 안 되면 똑같은 논의만 반복하게 되죠. 1차 총궐기 때 거리점거를 시도했는데, 잘 안되었어요. 한 번 실패를 하고 나니 사람들이 자신감이 떨어져서…결국 잘 안되었어요.

(박석진) 지도부의 문제가 분명 있지만 꼭 그렇게만 볼 건 아니군요. 참여자들의 어려움도 있네요.

#4.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방식은?

(박석진) 예전에 광화문 파병반대 촛불집회 때도 보면 참가자들은 싸우고 있는데 집행부는 집회 종결 선언해버리고 무대 철거하고…집회 참가자들과 집행부들 사이에서 고성과 욕설이 오가는 경우도 있었잖아요. 이번 총궐기에서도 그런 논쟁이 반복되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1차 총궐기 때에도 그런 시도가 있었지만 3차 때에도 명동에서 롯데백화점 쪽으로 더 나아가려고 진출했다가 밀려나면서 연행되는 과정이 있었어요. 이것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해요. 이런 방식이 대중의 분노를 더 잘 표출하는 방법인가요?

(안성민) 명동으로 대오가 진입하는 과정에서 선두에 있던 대오에서 연행자가 발생했죠. 지도부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고, 상황을 파악한 후에도 후속대응을 못했어요. 지도부는 공지되어 있는 투쟁일정을 제외한 우발적 상황이나 참가자들의 자발적인 표출과 관련해서 현장에서 유연하게 상황을 판단할 수 없었고, 당시 그런 체계도 존재하지 않았죠. 예정되어 있는 것 이외에는 다른 지침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어요. 최대한 부당한 연행에 항의하고 석방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연좌를 했죠. 그러다가 거리로 나갔는데, 현장 판단이 성급했어요. 70-80명 정도가 도로에 나갔고, 경찰이 쳐서 곳곳에서 싸움이 벌어졌는데, 그 상황이 통제가 되지 않았죠. 상황을 책임 있게 정리하는 단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었어요. 그 상황에서 지도부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역으로 했어요.

(박석진) 1차 총궐기 때도 청계천으로 돌지 말고 더 싸워야 된다고 했는데 막상 싸울 때는 이후에 어떻게 계속해서 싸울지에 대한 상이 없었어요. 3차 때도 연행자가 있으니 항의를 해야 한다는 데 동의를 했지만 항의하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연행자는 더 늘었죠.(모두 웃음)

(김종필) 명동 밀리오레까지 왔을 때 전반적인 분위기가 좋았는데 7시에 촛불집회가 예정되어 있어서 거리 집회를 마무리했어요. 분위기를 이어 그 자리에서 계속 싸웠어야 했는데…앞에서 싸우고 있어도 대오를 뺀 거죠. 그런데 지역 참가자들이 지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도 있어서 계속 싸우기에는 한계가 있기는 했어요.

(안성민) 돌출행위들이 반편향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긍정적인 효과는 있죠. 자발적인 행동들이 여기저기서 나오는 것이 향후를 위해 필요하고 이러한 힘들을 책임있는 집행으로 잘 기획해야 하는데 반발감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쉽죠.

(박석진) 대중들의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이 언론에 의해 공격받는 소위 ‘폭력적’인 방식들뿐일까요? 그 방식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안성민) 도로점거 등 ‘폭력양상’에 내부적으로 민감할수록 내부갈등이 유발될 수 있죠. 폭력이라는 것은 대중의 분노가 있을 때 어떤 식으로든 표출되는데, 일괄적으로 통제했을 때 문제가 생기죠. 그래서 폭력과 반폭력, 합법집회와 불법집회에 대해서는 운동적으로 경계가 모호하고 상황마다 다르죠. 대중의 자발성을 이끌어내는 집회와 관성화된 집회 사이에는 경계가 모호합니다.

위 사진:문화연대 김완 활동가
(김완) 프랑스에서 이민법 시위 할 때 가스통까지 나왔잖아요. 그런데 프랑스 언론에서는 시위의 방식이 쟁점이 되지는 않더군요. 그것을 언급하는 것은 미국 언론이었거든요. 그런 논쟁이 일 때마다 폭력/반폭력에 갇힐 우려가 있죠.

(박석진) 맞아요. 그런데 그런 방식이 관성화될 때 폭력이 분노의 표출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화되는 것에 대한 경계가 있죠. 그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사례마다 일일이 폭력인가 아닌가라고 ‘심판’하려고 하면 안된다는 생각도 들어요. 1차 때, 여기서 정리할 게 아니라 더 싸워야 한다고 선동할 때 꿈쩍도 하지 않는 참가자들을 보면서 왜 그럴까를 고민했어요. 아직 서울에서 FTA에 관한 절박함이 대중적으로 조직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더 싸울 것이냐 덜 싸울 것이냐는 전술의 문제로만 논의되는 것은 협소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로점거를 하느냐 마느냐, 몸싸움을 하느냐 마느냐 등 전술적인 차원에서만 논의되는 것은 한계적이라는 거죠. 이분법을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어요. 더 싸우면 투쟁적이고 근본적이지만, 안 싸우면 보수적이고 투쟁하는 민중을 배반하는 행위라는 식으로 공식화되는 것은 오히려 질곡입니다. 대안적인 논의가 활발하게 토론되면 좋겠어요.
인권오름 제 33 호 [기사입력] 2006년 12월 13일 16: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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