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비의 두리번두리번] 6월 항쟁의 기억, 그리고 2007년

제2의 6월 항쟁이 꿈처럼 다가온다면

박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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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한미 FTA 6차 협상 저지를 위한 끝장 투쟁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6월 민주항쟁 20주년을 맞는 해답게 곳곳에서 6월 민주항쟁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과 같은 수구언론들도 자신들이 6월 항쟁에 공이 크다고 나발을 불어대고 있지요. 그런 가운데 박종철 열사에 대한 20주기 추도식이 부산과 서울, 그리고 그의 가묘가 있는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렸습니다. 그가 죽음을 맞았던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는 그의 대형초상이 내걸렸고, 509호 취조실에서는 추모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로 내건 경찰은 이번 행사로 톡톡히 이미지 홍보 효과를 보았습니다. 박종철을 죽인 경찰이 그의 추도식을 대대적으로 그곳에서 열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효과를 본 것이죠. 한편으로는 지난해 말 민중총궐기 때처럼 전국 곳곳에서 상경하는 농민들을 가로막고, FTA 협상장인 신라호텔을 완전히 봉쇄하는 폭력을 저지르면서 말입니다. 6월 민주항쟁의 정신을 올곧게 이어가려는 이들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군요.

위 사진:1987년 6월 항쟁 당시 시청 앞


박종철 열사가 죽음을 걸고 지키려고 했던 가치는 무엇일까요? 경찰의 수배를 받던 박종운이라는 선배를 끝내 목숨 걸고 지켰던 박종철, 그런데 그 ‘선배’께서는 “시장경제와 북한민주화를 이루는 것”이 박종철 열사의 정신을 올바로 계승하는 것이라는 헛소리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해댔군요. 하지만 과거 박종운이나 박종철 역시 자본주의를 넘어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사회에 대한 열망을 간직했던 사람이었을텐데, 지금의 박종운은 자본주의 찬양론자가 되어있네요. 많은 다른 ‘386’이나 뉴라이트들처럼 말이죠. 그는 한나라당 후보로 부천에서 국회의원에 나왔다가 두 번이나 떨어졌어요. 조변석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고 하지만 후배의 죽음을 두고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죽어간 박종철 열사의 원혼이 땅을 치고 울 일입니다. 종종 그렇게 변절해간 사람들에게 느끼는 연민같은 게 있는데요, 역사적 사실조차도 자신의 마음대로 조작될 수 있다는 확신 같은 게 너무 강한 사람들인 것 같더라고요. 입이나 다물고 있지, 말입니다.

동지도, 깃발도 간 데 없고…

저는 20년 전 6월 항쟁을 감옥에서 맞았습니다. 1986년 5월말부터 감옥살이를 하다가 1987년 7월 5일 정치범에 대한 가석방 조치로 세상에 나왔지요. 당시 김영삼과 김대중이 이끌던 야당 세력과 재야세력, 학생운동이 중심이 되어 5공화국 헌법을 개정하자고 했지만 전두환은 4월 13일에 개헌은 할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4.13 호헌조치) 이 조치는 전두환의 영구집권을 위한 정치적 결단으로 받아들여졌고, 이에 대한 불복종 저항운동을 벌였던 것이 6월 민주항쟁이었는데요. 저는 ‘4.13 호헌조치’를 영등포교도소에서 대전교도소로 이감가던 중 차 안에서 들었습니다. 그러다 대전교도소에서 하루는 교도관들이 군복을 입고 총을 들고 근무를 서는 거예요. 저게 무얼까 궁금하던 차에 면회갔다온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4.19보다 더 큰 데모가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하대요. 그때 저는 안 믿었어요. 전두환 신군부세력이 악랄하게 학생운동, 노동운동, 재야운동을 탄압해서 감옥마다 정치범들로 득시글대던 상황이었고, 그래서 반독재민주화투쟁이 터져 나오기에는 너무 열악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감옥이라는 곳이 어디서 데모 한 번 있으면 자신들의 희망사항까지 보태고 덧붙여서 뻥튀기를 하던 곳이니까요. 그런데 웬걸, 그 감옥 안에서도 최루탄의 매캐한 냄새를 맡을 정도가 되었어요. 데모 현장에서 그토록 눈물, 코물 빼게 만들던 최루탄 냄새가 그때는 어찌나 반가웠던지.

하지만 그 뒤에 꼴불견들이 벌어졌습니다. 6월 항쟁을 이끌었던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에서는 곧바로 이어진 노동자대투쟁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더니 투쟁의 성과를 다 자유주의자들에게 넘겨주었지요. 오늘의 87년 헌법이라는 것은 투쟁으로 이룬 것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민중들의 이해와는 거리가 먼 자유주의 정치세력들이 군부세력과 정치적으로 타협한 결과물이기도 하지요. 그 뒤에 6월 항쟁의 투사들이 줄지어 정치권에 입문합니다. 그들은 6월 항쟁 거리의 시위대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을 하나같이 자신들의 이력서에 내걸고 있어요. 민주화운동이 무슨 훈장이라도 되나요? 박종운을 비롯한 그들의 변신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동지는 죽었고, 그들은 깃발을 정반대로 바꾸었습니다. 그때 그 깃발, 어디에 있죠?

20년 전과 다른 개헌론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을 들고 나왔는데, 영 신통치 않네요. 그런데 노무현은 아무래도 통합을 이루는 대통령이라기보다는 싸움꾼인 거 같아요. 고건을 그렇게 씹어대니까 고건이란 사람이 대권경쟁에서 자진해서 물러나네요. 다음에 노무현이 쓸 카드는 무엇일까요?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개헌이 아니라 대통령 임기에 관련된 것만 바꾸는 개헌, ‘원 포인트’ 개헌이라고 하던데, 말도 참 잘 만들어내네요.

6월 항쟁의 민주투사 노무현이 정치적 계산 없이 개헌을 제기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겠지요. 그는 벌써 개헌을 제안하면서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하는 겁니다. 앞으로 대권 경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얘기와도 같겠지요. 그런데 인권의 관점에서는 그런 임기말 대통령 말고 기본권에 대한 보다 확실한 강화가 여전히 필요한데요. 신자유주의 세력들은 개헌 뚜껑이 열리면 경제민주화 조항이나 사회복지조항, 노동권 조항과 같은 자신들의 경제적인 이익에 맞지 않는 조항들을 삭제하거나 후퇴시키려고 만반의 준비를 해놓고 있다고 합니다. 경제구조가 신자유주의적으로 변한 만큼 거기에 헌법을 맞추어야 한다는 입장인 거지요. 개헌론이 언제 또 불거질지 모르겠군요.

어쨌건 20년 전의 개헌운동은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서였다고 한다면 올해 논의되는 개헌은 이와는 전혀 성격이 다르지요. 지배세력의 권력 재편을 위해 이용될 따름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의 입장, 민중들의 입장에서는 어떤 개헌이어야 하는가를 면밀히 따지고, 미리미리 준비를 해놓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개헌’이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순간 우리에게 불리한 형국이 조성되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위 사진:지난 1월 16일 서울에서 진행된 한미 FTA 6차 협상 반대 집회


밥과 평화,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

한미 FTA 협상이 6차를 맞았고, 다음 달 미국에서 열릴 7차 협상에서 정치적 타결을 짓는다고 합니다. 지금 한국 정부 대표들은 어떻게든 협상을 타결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미국 측과 이견이 있는 부분들은 고위급 회담으로 돌려놓았다고 하고, 그 고위급 회담에서 타결지으려 한다는 얘기가 솔솔 흘러나옵니다.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으로 날아가 한미 FTA를 정치적으로 타결하는 일이 있으면 어떡하죠? 20년 전에 그랬듯, 거짓말처럼 항쟁이 올까요?

정부는 올해 한미 FTA만이 아니라 유럽, 중국, 일본, 아시아의 각국을 비롯해 세계의 20개국과 FTA를 체결하겠다고 의지를 불태우고 있어요. 정말 산 넘어 산이군요. 그래도 한미 FTA를 막아낼 수만 있다면 다른 FTA쯤은 막아낼 자신감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리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경제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미국의 군사패권주의 강화라는 측면도 갖고 있다는 거! 잊지 않았겠죠? 평택 미군기지 확장사업을 애초에 2008년까지 완성한다고 해놓고, 그걸 근거로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을 몰아내더니 아직 마스터플랜(MP)도 작성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하대요. 그리고 슬그머니 미사일방어체제도 만들어가고 있고. 한반도에서 군사주의적 대결은 점점 첨예해지고 있습니다. 그런 한편으로 남북정상회담이나 그보다 더 중요한 남북 사이의 급진전된 형태의 협상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고, 그래서 어떤 전문가는 한반도 평화체제가 만들어진다는 희망도 내놓고 있더군요. 그런데 북한의 핵무기는 어떻게 되는 거지요? 남한에 주한미군이 보유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핵무기와 이미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난 핵무기급 열화우라늄탄은 또 어떻고, 미국이 주도하는 각종 군사훈련은 또……. 에고고, 평화를 향한 길이 멀기만 해 보이네요.

민중들의 생존권적인 저항이나 평화를 위한 불복종운동에 대해 정부, 국회, 사법부는 세트플레이로 대대적인 탄압에 나서겠지요. 국가폭력이 기승을 부리는 이런 때에 인권운동도 대비를 해야겠네요. 힘도, 돈도, 조직도 별로 없는 인권운동, 올해도 가랑이 찢어질 판입니다, 그려. 가랑이 찢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올해 제2의 6월항쟁이 재현되고, 그래서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 걸음 더 진전될 수 있다면, 그것이 정녕 꿈처럼 다가온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요. 그것이 저만의 꿈일까요? 저 혼자 꾸는 꿈이 아니라 우리가 다같이 꾸는 꿈은 언젠가 현실이 된다고 어느 혁명가가 말했는데, 요즘 서울시도 그런 광고를 하고 있대요. 서울시장도 옛날에는 운동권이었기 때문일까요? 아무튼 오늘의 횡설수설, 두리번두리번은 여기까지입니다.
인권오름 제 37 호 [기사입력] 2007년 01월 17일 11: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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