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군은 노충국, 김웅민, 박상연, 오지헌을 기억하는가?

[기획] 죽음을 기억하라 (13) 노충국·김웅민·박상연·오지헌

김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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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주] 모든 죽음은 산 자들에게 안타까움을 남기지만 어떤 죽음은 산 자들을 부끄럽게 한다. 이런 죽음은 죽은 자가 의도했든 아니든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남긴다. 생물학적 죽음을 수반하지는 않더라도 사회로부터 배제되어 사실상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사회적 죽음도 있다. 죽음마다 다양한 사연이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죽음을 부르는 한국사회의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런 죽음이 계속되리라는 점이다. <인권오름>은 노무현 정권 시기인 2003년부터 최근까지의 죽음 가운데 점점 잊히고 있지만 산 자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죽음을 기록함으로써 한국사회 인권의 현실을 점검한다.


지난해 말 전역을 1개월여 앞둔 병장 ㄱ씨의 형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해왔다. 훈련 중 사고로 동생이 다리를 잃었고 혼수상태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도움을 달라는 전화였다. 일정상 부산에 있는 병원으로 내려갈 수는 없었지만 가족들과 매일 통화를 하며 적절한 대응을 위해 함께 노력했다. 불행 중 다행히도 군 조사 결과 ㄱ병장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는 것이 밝혀졌고, 군은 신속하게 ‘공무중 상해’로 처리하여 국가보훈처에 국가유공자 심사를 의뢰했다. 가족들이 원하는 모든 편의와 치료를 위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 말이다. 가족 구성원 전원과 통화를 하고 안심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들의 사고로 인한 충격과 함께 애간장이 탔을 가족들을 생각하면 바로 현장에 가서 힘이 되어 주지 못 했던 상황이 몹시 송구했다. 하지만 군에서 순순히 자신들의 과오와 책임을 인정하고 나오니 이상하다고 생각되면서도 안심하고 그 사건을 한동안 잊고 있었다.

위 사진:2005년 11월 4일 국방부 앞에서 열린 노제에서 노충국 씨의 가족들이 관을 부여잡고 있다. 노충국 씨는 전역 보름만에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석달 동안 투병하다 같은해 10월 27일 사망했다.


“병원 옮기지 않으면…탈영병으로 처리…”

두 주쯤 지나 다시 전화를 받았다. 동생이 혼수상태에서 깨어났고, 위험한 고비는 넘겼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매우 다행이라 여기며 함께 기뻐하였는데 그는 근심어린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동생이 깨어나자 군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혼수상태에 있을 때는 가족들이 원하는 대로 다 해주겠다고 하더니 동생이 깨어나고 상태가 호전되자, 이제 전역이 얼마 안 남았고 위험한 상황을 넘겼으니 더 이상 민간 병원 치료비용을 군에서 부담할 수 없다고 하며 열흘 안에 국군통합병원으로 옮기라는 말만을 ‘명령’하고 갔다는 것이다. 가족들과의 통화는 다시 매일 이어졌다. 군의 반응을 세심하게 살피며 가족들이 원하는 바를 계속 주장하라고 조언하면서 함께 논의를 이어갔다.

고분고분할 것 같았던 가족들이 강하게 나오자 군의 반응은 수시로 변했다. 급기야는 열흘 남짓 남은 전역일 이전까지 국군통합병원으로 옮기지 않으면 ㄱ병장을 탈영병으로 처리하고, 병원비 지급을 중단하겠다는 ‘협박’까지 해왔다. ㄱ병장은 다리가 절단된 사실을 알고 매우 큰 충격을 받아 정신적인 안정과 상담 치료 등이 필요한 상황이었으며 머리와 안면에 2번의 수술을 남겨놓은 상황이었다. 가족들은 보조기구를 착용하고 스스로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처음 수술 받은 병원에서 재활치료와 남은 수술을 받기 원했다. 불안해하는 가족들에게 가족들과 ㄱ병장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무엇을 불안해하시느냐며 가족들이 원하는 바를 끝까지 주장하라고 조언했다. 전역일을 넘긴 ㄱ병장은 처음 수술 받은 민간 병원에서 지금까지 치료를 받고 있다.

인터넷이 들끓어야 해결되나?

이번 사건을 진행하며 노충국, 김웅민, 박상연 세 젊은이의 죽음이 계속 떠올랐다. 여전히 군은 자신들의 명예와 업무의 편의를 국민의 생명보다 더 중히 여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군의 안일한 의료체계와 무책임한 대응으로 청춘의 황금기를 ‘신성한’ 국방의 의무에 바친 세 젊은이는 군 복무 중 발병한 암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한 인터넷신문과 함께 유족들을 만나고 문제점들을 정리하여 국방부를 상대로 싸움을 시작했으나, ‘전역한 예비역’의 일은 군이 책임질 것이 아니라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공중파 방송에 노충국 씨의 투병 중인 안타까운 모습이 방영되고 여기저기서 그동안 비슷한 경우를 당했으나 호소할 곳조차 찾을 수 없었던 이들의 사연이 공개되어 여론이 들끓자 군은 먼저 대화를 요청해 왔다. 그러다가 노충국 씨가 세상을 떠나고 여론이 급격히 나빠지고 유족들이 군의 확실한 사죄와 재발방지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장례를 치루지 않겠다고 강력하게 맞서자 국방부 장관이 국회에서 국민에게 사과를 하고 ‘군의무발전 5개년계획’을 수립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노충국 씨가 세상을 떠나고 9일 만에 장례를 치루겠다고 하자, 헌병대는 국방부 회색 건물이 정면으로 보이는 국방부 민원실 옆 주차장을 미리 비워두고, 자물쇠로 잠겨있던 바리케이드까지 치우고 노제를 지낼 수 있도록 모든 편의를 제공해 주었다. 국가유공자가 되고, 국립묘지에 묻히는 일도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노충국 씨가 눈을 감은 다음날 보훈처와 국립묘지 측으로부터 질병으로 사망한 병사가 국립묘지에 묻히는 일은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노충국 씨의 국립묘지 안장은 어려운 일이라는 답변을 듣고 절망했었다. 관련 심사와 절차 역시 매우 복잡하여 보통 6개월 이상 걸리고, 회의도 한 달에 한 번만 열리기 때문에 결과가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다시 인터넷이 들끓고 언론이 떠들어 댔다. 국방의 의무를 하던 중 발병한 병으로 전역 직후 사망했는데 국립묘지에 묻히지 못해 냉동고 안에 안치되어 있다는 거짓말 같은 사연이 공개되었다. 또 유족들과 언론의 끈질긴 노력 끝에 당시 노충국 씨를 진료했던 군의관이 진료기록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군은 궁지에 몰렸다.

6개월이 걸린다던 국가유공자 심사와 국립묘지 안장 결정은 이후 불과 6일 만에 결정이 났다. 노충국 씨의 뒤를 따라 곧 세상을 떠난 김웅민, 박상연 씨에 대한 국가유공자 심사와 국립묘지 안장 결정 역시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불가능하다고 했던 일이 언론이 보도하고 인터넷이 들끓으니 즉각 해결되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국민들의 비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군의 심정이 간절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이 있은 후, 2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유사한 사례로 국가유공자 인정을 받거나 국립묘지에 안장이 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비슷한 사례들은 얼마든지 더 있었지만 인터넷이 들끓어주지 않고 공중파 뉴스가 보도를 하지 않으니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똑같은 이유로 투병 중이던 오주헌 씨도 지난해 11월 30일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를 위해서는 한풀이 노제조차 준비하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이 쓰리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다시 한 번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위 사진:2005년 10월 31일 열린 ‘노충국씨 사망사건 진상규명 및 군대내 의료접근권 보장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발족 기자회견


군은 변했는가?

전역을 앞둔 병사들에 대한 건강검진이 2007년 5월 육군 12사단과 25사단에서 처음으로 시범 실시되었다. 2005년 11월에 우리와 한 약속을 국방부가 지키기 시작한 것이다. 국방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전역전 건강검진은 『장병들의 건강은 국방의 초석이며 군 복무중 상병(傷病)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대명제를 이행함으로써 대군신뢰도 증진 및 국민보건에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라고 밝혔다. 참으로 낯 간지러운 소리이다. “복무 당시 발병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가 없고 전역한 이후의 일에 대해 군의 책임은 없습니다”라는 소리를 2년 전 똑똑히 들었다. 국방부의 보건 책임간부라는 사람이 내게 말한 단어 하나, 표정과 억양까지 귀에 생생하다. 낙후된 장비와 부족한 의료인력 때문에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가 없어서 민간병원에 가겠다고 해도 군인은 군병원에서 치료해야 한다며 밖으로 내보내 주지 않던 군이다. 군의 자존심보다는 병사들의 건강과 인권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게 되었을까?

국방부는 군내 의료접근권을 보장하겠다며 많은 계획들을 발표했지만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먼저 전면적으로 실시하겠다던 전역예정자 건강검진은 군 의료인력 확보 문제로 어려워 전 군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22개 사단만을 대상으로 실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민간 의료인력을 대폭 늘리겠다고 발표했지만 2008년 처음 채용된 민간 의사는 30명뿐이다. 그나마 진료지원제도 개선을 통해 전 공상자 및 군 병원 입원 환자에 한해 전역일로부터 6개월까지 진료지원을 해 오던 환자관리지침을 개정해 비전·공상자 및 민간위탁 진료 환자까지 진료지원을 확대해 지원하도록 한 것과 간병인이 필요한 경우 간병비를 지원하겠다는 것은 나아 보인다. 이 개정 지침대로라면 처음에 사례로 든 ㄱ병장의 경우 현재 입원한 병원에서도 앞으로 6개월, 간병인을 두고 계속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역일로부터 6개월이라는 것은 통상 국가유공자 심사가 5~6개월 걸리는 것을 감안한 것으로 보이는데 장기적인 입원치료 등이 필요한 경우 군이 끝까지 치료를 책임진다는 확고한 원칙을 세우고 지켜나가는 것을 미루어서는 안 된다.

창군 60년이 된 ‘대한민국’ 군은 노충국, 김웅민, 박상연 씨 등의 희생이 있고 나서야 ‘군대 내의 의료접근권’이라는 기본적인 권리의 ‘개념’을 알게 되었다.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할 수 있고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당연한 권리가 “군대니까 참아라”, “엄살 부리지 마라”는 지휘관의 말 한마디로 내팽개쳐졌던 지난 60년간 우리는 과연 무엇을 했는가? 그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에 우리는 정말 몰랐던 것인가? 또 지금 그 죽음을 기억이나 하고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아직 ‘전시중인 국가’이기에 국민 모두에게 국방의 의무를 지울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려면 국민이 그 의무를 다하는 동안 국가 역시 국민을 보호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더 이상 군 복무 중 어이없는 죽음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최소한 국가의 필요에 의해 데려간 ‘5천만 국민의 자식들’의 생명과 인권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통해 군을 대폭 축소하고 지구상 마지막 냉전을 끝내야한다. 그래도 ‘국가’이기에 군이 꼭 필요하다고 한다면 징병제가 아닌 모병제로의 전환이 바람직하다. 이는 정부가 경직된 사고를 버리고 미래 지향적인 정책을 펼쳐 진정으로 국민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때 실현된다. 2008년 들어설 새 정부가 멀쩡한 땅을 파헤쳐 물길을 내겠다는 황당한 생각이나, 재벌들이 편하게 돈 벌게 해 주겠다는 정책만을 쏟아내지 말고 국민을 위한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친국민적인’ 정책을 펴나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덧붙이는 글
◎ 김덕진 님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입니다.
인권오름 제 86 호 [기사입력] 2008년 01월 09일 14: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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