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앞에 선 차별철폐투쟁

[기획] 차별금지법안 뜯어보기 (19) 차별금지 법제와 반차별운동

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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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일 법무부가 차별금지법안을 입법예고했다. 성별, 장애 등을 이유로 고용 등 다양한 차별영역에서 벌어지는 차별행위를 금지하면서 피해자 구제 절차를 담고 있는 이 법안은 최초의 종합적인 차별금지법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하지만 다양한 소수자들의 경험을 온전하게 반영하지 못할 가능성과 함께 성적지향 등 다수의 차별사유를 제외함으로써 차별금지법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 또한 존재해 우려를 더하고 있다. <인권오름>은 그동안 반차별 운동을 해온 활동가들의 연속기고를 통해 정부의 차별금지법안이 과연 다양한 ‘소수자들’의 차별 현실을 바꾸고 반차별 의식을 확산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지 점검한다. <편집인주>


법 앞에서

카프카의 아주 짧은 소설 『법 앞에서』는 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매우 잘 보여준다. 어떤 시골 사람이 법 앞에 서 있다. 그는 법 안으로 들어가고자 하지만 문지기는 그를 막아선다. 그 문지기는 시골 사람을 위협한다. 원한다면 들어가 보라고. 하지만 자기는 힘이 무척 세며 설혹 자기를 뚫고 들어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다음엔 자신 보다 더 힘센 문지기가 있다고…. 그래서 그 시골 사람은 차라리 그 문지기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해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더 낫겠다고 판단하고 법 앞에 앉아 문지기의 허락을 기다리기 시작한다. 그는 갖은 방법을 다 써서 문지기를 회유하려고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번번이 법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거절당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흘러 이 시골 남자는 이제 거의 죽기 직전이 되었다. 이때 시골 남자가 그 오랜 시간 동안 한 번도 문지기에게 던진 적이 없던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어째서 여러 해가 지나는 동안 나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들여보내 달라고 하는 사람이 없는 건가요?” 그리고 이 소설은 문지기의 다음과 같은 대답과 함께 끝난다. “여기는 자네 이외에는 누구도 들어갈 수 없어. 왜냐면 이 입구는 오직 자네에게만 정해져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지. 그러면 이제 나는 가서 문을 닫겠네.”

끝나지 않는 유예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법무부는 지난해 10월 입법예고한 ‘차별금지법안’이 소수자운동 진영에서 크게 논란이 되었다. 그것은 입법예고에 대한 의견수렴 과정에서 원안에 포함되어 있었던 20개의 차별사유 중 성적 지향을 비롯해 학력, 가족형태 및 가족 상황, 병력, 출신국가, 범죄 및 보호처분의 전력 등 7개 사유가 삭제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핵심적인 7개 사유가 삭제된 법안에 대한 반대운동 및 올바른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운동이 바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대선정국, 삼성비자금 등과 관련된 논란과 시기적으로 맞물리면서 운동이 전반적으로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 초를 치는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국가인권위가 권고한 원안대로의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가능성은 그리 밝지 않은 것 같다.

정부의 차별금지법안은 최근 한국 사회에서 법이 소수자들의 권리문제와 관련하여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매우 잘 드러내주고 있다. 사실상 소수자들은 법 안에 존재하지 않는 자들이다. 그들의 삶에서 중요한 그들의 욕망을, 그리고 그 욕망을 구현할 수 있는 권리를 소수자들은 법적으로(법 안에서) 보장받지 못해 왔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수자들은 법 밖에 있는 자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법 안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카프카의 소설에 나오는 그 시골 사람처럼 “법이란 모름지기 모든 사람들이 언제든지 다가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수자들의 정체성, 소수자들의 욕망이 차별의 이유가 되지 않아야 하며 그들의 정체성과 욕망이 법 안에 등록되어 법으로 보장받아야 할 필요를 느끼는 것이다.

법은 소수자들의 요구에 대해서 무조건 거부하지 않는다. 법으로 소수자들의 권리를 완전히 인정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법으로부터 그들의 권리를 완전히 배제하지도 않는다. 마치 카프카의 문지기가 시골 사람이 법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용하지는 않지만 그 시골 사람을 아예 쫓아 내지 않고 그가 법 앞에 머물도록 허용하는 것처럼 법은 소수자들이 법을 아예 외면하도록 만들지는 않는다. 대신 법은 소수자들의 권리 보장을 유예한다. 이제 한국 사회의 법은 소수자들의 권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일정한 한도 내에서 법은 차별받지 않아야 하는 소수자들의 정체성과 욕망을 인정한다. 법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어느 수준에서는 용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수자들이 완전히 법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한명의 문지기를 통과해서 문 안으로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그 다음에는 또 다른 문이 나오고 그 문 앞에는 새로운 문지기가 버티고 서 있다.

이런 과정은 일종의 유예이다. 법으로 금지해야 하는 핵심적인 차별 사유들은 배제된 채로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 성적 지향, 학력, 가족형태 및 가족 상황, 병력, 출신국가, 범죄 및 보호처분의 전력으로 인한 차별이 법적으로 금지되는 것이 유예되는 것이다. 소수자들이 법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는 것은 언제나 유예된다. 소수자들의 권리는 법 앞에서 계속적으로 유예된다.

포함적 배제, 배제적 포함

이런 유예 상황에 대응하여 반차별운동은 법에 대해 어떠한 유예도 두지 말 것을 요구한다. 물론 이 요구는 너무나도 정당하며 시급한 것이다. 그러나 이때 운동이 이미 제정된 법, 혹은 제정되려는 법을 둘러싸고 전개될 때 문제가 미묘하게 변하게 될 위험이 있다. 당면 과제의 절실함과 시급함으로 인해 자칫하면 자기 권리를 실현하고자 하는 소수자운동의 투쟁적 힘이 법무부에 의해 삭제된 7개의 차별사유를 복원하는 것에 집중화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차별철폐운동의 성패가 차별금지법이 어떤 형태로 입법되느냐에 따라서 판단되는 착시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미 많은 사회운동이 자신들의 요구가 법에 의해 실현되지 않을 때 그 운동의 힘이 해소되는 것을 우리는 여러 차례 목도해왔다. 새만금 방조제 저지 투쟁이, 천성산 터널 반대 투쟁이, 이라크 파병 저지 투쟁이 이런 식으로 잦아들었다. 법이 이 투쟁들의 요구를 최종적으로 거부했을 때, 이 투쟁들에 결집되었던 힘들은 어느 순간 해소되어 버렸던 것이다.

운동이 법 안으로 들어가는 것에 지나치게 집중하게 될 때, 법을 통해 운동의 과제를 성취하는 것에 경도될 때, 운동이 법의 주위를 공전하게 되는 경향이 발생한다. 법을 아예 외면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완전히 법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저 법 앞에서 머물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또한 법은 이런 방식으로 운동을 포획한다. 완전히 법 안으로 포함시키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완전히 법 밖으로 배제하지도 않으면서 법 앞에 운동을 잡아 두려 하는 것이다. 운동이 법에 포함된 듯하나 배제되었고, 배제되어 있는 듯하나 포함되어 있는 역설적 상황이 오늘날의 법이 운동을 다루는 방식이다.

주사위는 다시 던져야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차별철폐운동은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물론 당면과제는 삭제된 7개 차별사유가 포함된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는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과제에도 불구하고 기억해야할 것이 있다. 그것은 국가인권위의 차별금지법안이 소수자에 대한 차별철폐를 자동적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즉 국가인권위의 원안대로 차별금지법이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소수자들이 어떤 유예도 없이 법 안으로 들어간 것은 아니란 말이다. 사실상 국가인권위의 원안은 그야말로 최소치의 것이다. 그 최소치조차 보장되지 않는 것이 문제이지 최소치를 보장하는 것이 차별철폐투쟁의 목표는 아니다. 차별철폐투쟁이 포함적으로 배제하고 배제적으로 포함하는 법의 포획에 걸려들어 법에 의해 운동의 성패가 결정되는 사태를 피하려면 다시 한번 차별철폐투쟁이 궁극적으로 목표했던 것이 무엇인지 환기해야할 것이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법적으로 금지시키는 것이 운동의 목표가 아니라 소수자들이 자신들의 정체성과 욕망을 긍정하고 구현할 수 있는 권리를 구성하고 쟁취하는 것이 운동의 목표이다. 법은 그 운동의 목표를 실현해가는 다양한 과정 가운데 거쳐 가야 할 통과지점이지 안착점이 아닌 것이다.

법무부에 의해 삭제된 7개 사유를 복원하여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도록 하기 위한 투쟁은 무척 중요한 투쟁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설혹 정부안대로 법이 제정된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이 차별철폐투쟁이 패배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법은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다. 법은 그저 통과해야할 하나의 지점일 뿐이다. 우리의 투쟁은 어쩌면 계속되는 주사위 놀이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한 번의 주사위 던지기로 나온 숫자가 게임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한 번 주사위를 던지면 어떤 결과가 나온다. 그러나 그것으로 게임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게임은 계속되고 주사위는 다시 던져진다. 그리고 주사위는 다시 던져야 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정정훈 님은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입니다.
인권오름 제 87 호 [기사입력] 2008년 01월 16일 18: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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