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브라더’ 학교에선 자유로운 영혼이 숨 쉴 수 없다

[삘릴리~ 학생인권 마술피리] (8) 프라이버시에 대한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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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난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오두막에서는 왕의 모든 지배력을 거부할 수 있다.” 1765년 영국의 캄덴경은 이렇게 말했다. 제왕의 권력도 침범할 수 없는 최후의 공간, 프라이버시의 ‘오두막’은 몸, 소통매체, 사적 공간, 개인정보 등 다양한 형태로 우리 일상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맥락에 따라 오두막을 침입하는 ‘제왕’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학생의 경우는 교육과 보호라는 이름으로 프라이버시를 아예 향유할 수 없는 존재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뒤지지 못할 곳은 없다?

학교현장에선 가히 횡포라 부를 만한 자의적인 뒤짐이 일상다반사로 일어난다. 등굣길 교문지도에 걸리면 가방을 열어 보여줘야 교문을 통과할 수 있다. 운동장이나 체육관에서 조회나 수업을 하고 돌아오면 교실을 헤집고 몰래 소지품 검사를 하고 간 흔적을 만나는 일도 있다. 수업시간 중에 다짜고짜 들이닥친 학생부 교사들에게 가방과 사물함을 몽땅 열어보여야 했던 치욕스런 경험도 예사로 일어난다. 들뜬 마음으로 나선 수학여행 길의 첫 관문 역시 소지품 검사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절차를 밟아 소지품검사가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 법과 교칙은 침묵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3일 ‘학생의 날’을 앞두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와 수도권학생생활연구회가 수도권 중·고등학교 학생 205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학교생활 만족도 설문조사’에서 학생 87.5%가 소지품 검사에 대해 ‘불만’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이런 원성에 대해 학교는 귀를 닫고 있다.

[%=사진1%]학생 소지품을 대하는 학교의 막무가내는 학생의 몸을 대하는 태도와도 연결된다. 지난 6월 광주 송원여상 학생들이 체벌과 성희롱, 언어폭력 등 교사에 의한 인격 모독을 중단해줄 것을 요구하며 수업을 거부하는 일이 있었다. 여학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교사가 치마 길이를 문제 삼으면서 치마를 들춰보기까지 했다. 평택시 은혜고등학교에서는 교칙 위반 학생들을 따로 모아 단체기합을 주는 ‘푸른교실’을 운영하면서 생리통을 호소하는 여학생에게 생리혈을 막대기에 묻혀와 증거를 대라고 요구한 일까지 있었다. 지난 8월 27일자 KBS 에 등장한 해당 교사는 별다른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는 태도를 보여 보는 이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학생을 인격과 프라이버시를 지닌 존엄한 사람이 아니라 원하면 들춰볼 수 있는 사물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학교는 머릿속까지 헤집는 데 열심이다. 초등학교에서 아직도 이루어지는 일기장 검사는 학생의 프라이버시를 대하는 학교의 인식이 얼마나 바닥 수준인지를 잘 보여준다. 2005년 4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일기장 검사가 자유로운 글쓰기와 교사의 간여 없는 양심의 형성을 침해한다는 의견을 냈을 때, 학교 현장에서는 반발이 반성을 앞섰다. 교육부에서도 일기 지도가 교육적으로 문제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개학을 앞두고 밀린 일기를 하룻밤 사이에 꾸며내고, 검사용 일기와 진짜 일기를 따로 두고, ‘착한 아이’로 자기를 위장하는 현실은 ‘교육적 필요’ 앞에 지워졌다. 일기는 내면의 고백을 담는 그릇이고, 감시의 시선이 없을 때 비로소 자유로운 고백을 통한 치유와 성장이 가능하다는 당연한 사실도 잊혀졌다. 친구에게 보낸 편지를, 휴대전화로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교사가 공개 낭독하면서 학생의 감정과 사적 관계를 침범하는 일들도 있다.


휴대전화 소지를 금지하는 진짜 속내

학교의 프라이버시 통제는 특정 물건의 소지 자체를 금지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대표적으로 학생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것이 휴대전화 금지․압수 규정이다. 경기도 교육위원회에 따르면, 2007년 도내 883개 중고등학교 중 절반 가까이가 휴대전화를 발견할 경우 바로 압수 조치하고 있었다. 같은 해 3월말에는 대전 시내 149개 중고등학교 교장들이 ‘학교에 휴대전화 안 가져오기 결의대회’까지 열었다. 학습에 방해되고 정서 안정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 이유다. 그러나 진짜 속내는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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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학생이 소통에 대한 욕구 따위는 가지지 않고 공부에만 몰두하기를 바란다. 학교는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비밀로 남겨지기를 원한다. 그런데 휴대전화는 그 공고한 질서에 균열을 낸다. '따르릉따르릉' 울려대는 전화 소리와 '딩동' 문자메시지 알림음은 학교의 꽉 막힌 생활이 결코 견딜 만하지 않음을 알려주고, '찰칵찰칵' 학교가 저지르는 인권침해 현장을 기록한다. 최근 몇 년 간 가혹한 체벌 현장을 고발한 동영상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휴대전화의 힘이었다. 2006년 수원 청명고는 학생들이 두발규정의 일방적 개악에 항의하는 교내 집회를 잇달아 열고 이 같은 사실이 언론에까지 보도되자, 주동자와 언론과 인터뷰한 학생을 적발하겠다며 학생의 휴대전화를 강제로 압수해 통화기록과 문자메시지 내용을 죄다 들여다봤다. 이처럼 인권침해 사건이 일어나거나 학생들의 저항 행동이 일어날 때마다 학교가 취하는 가장 첫 번째 조치가 입단속과 휴대전화 소지 금지 조처다. 지난해 국가인권위가 휴대전화 열람과 소지 금지를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결정했지만 이 결정은 여전히 무시되고 있다.


정보야 나오너라, 뚝딱!

최근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잇달아 터지면서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데 반해 학교의 정보인권 감수성은 차오를 줄 모른다. 교복에 이름표를 박음질해 다니게 하는 일은 물론 가정환경 정보, 신체검사나 보건실 이용을 통해 획득되는 건강정보, 지문과 같은 생체정보 등을 다루는 데도 예민함이 부족하다. 지난 7월 자신이 살던 임대아파트 15층에서 몸을 던져 자살한 신나래 학생도 기초생활수급자라는 사실이 친구들 앞에 공개되면서 여린 마음에 큰 생채기를 입었다고 한다. 2005년 전북에서는 14개 학교가 돈을 안 낸 학생들을 가려내기 위해 급식소에 지문인식기를 설치해 문제를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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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라면 정보 제공 동의를 받았을 법한 일도 학생들에게는 생략되곤 한다. 상업적 목적이든 국가의 필요에 의해서든 ‘정보 사냥꾼들’이 학교를 호시탐탐 노리는 이유다. 지난해 11월에는 국책연구기관인 직업능력개발원이 전국 1백여 개교에 설문조사지를 보내 학생의 실명과 보호자의 휴대전화 번호, 친구 2명의 이메일 주소를 기록하도록 하고 성관계 경험, 성폭행 가․피해 경험, 부모의 이혼 경험까지 적도록 했다. 몇몇 학교에선 설문 내용이 문제가 있어 협조를 거부했고 교사단체를 통해 문제가 알려졌지만, 이미 대다수 학교가 교육청의 협조 공문에 따라 설문 대상 학생과 학부모 명단을 동의도 받지 않은 채 넘긴 후였다.


성적 공개에다 교실 안 CCTV 설치까지

2003년 도입 당시부터 정보 집적에 따른 위험 때문에 엄청난 반대에 부딪혔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이제 네이스는 학생과 교사를 엄청난 성적 압박으로 몰아넣는 전국 감시망 구실을 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교육당국은 자녀의 중간․기말 성적을 포함한 학교생활기록 전반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하는 학부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어느 학급에 내걸린 “엄마가 보고 있다.” 급훈처럼 학생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학부모의 감시 아래 놓이게 된 것이다. 올해부터 시행에 들어간 ‘교육관련기관 정보 공개에 따른 특례법’과 시행령에 따라 2010년부터는 학교의 성적 등급 분포가 홈페이지에까지 공개될 예정이다. 이 경우 학생들이 교육경쟁이란 냉혹한 채찍질에 더욱 내몰릴 수밖에 없다. 부활된 일제고사 다음엔 교원평가가 기다리고 있다. 다른 교육, 다른 수업을 꿈꾸는 교사들의 숨통도 함께 조이게 된다.

[%=사진4%]학교폭력 예방을 이유로 학교에 설치되기 시작한 CCTV 역시 확산 일로를 걷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9월 29일 현재 전국 1325개 학교에 CCTV가 설치돼 있고 학교당 평균 4.1대에 이를 정도다. 서울의 경우 설치율이 31.6%로 10곳 중 3곳이 넘는 학교에 CCTV가 설치된 것으로 드러나 전국 1위를 기록했다. 초등학생 대상 범죄가 늘어남에 따라 CCTV를 추가 설치하기 위한 특별예산이 편성된 데다 학교 자체적으로 예산을 마련해 설치하는 학교도 늘어감에 따라 CCTV는 더욱 증가될 예정이다. 범죄예방 때문이라고 하지만 CCTV가 예방에는 큰 효과가 없다는 것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마당에 CCTV는 책임 회피를 위한 명분 쌓기가 되기 쉽다. 더 큰 문제는 CCTV가 범죄 예방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용도도 다양해지고 있다는 데 있다. 올 초 광명 진성고는 학내 비리와 인권침해가 언론에 보도되자 교내 곳곳에 CCTV를 설치했다. 서울 배재고에서는 고3 교실에 면학 분위기 조성을 위해 CCTV가 설치되기까지 했다.

프라이버시가 사라진 공간에선 자유로운 영혼이 숨 쉴 수 없다. 학생은 홀로 있기도 하고 원하는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발전시키기도 하고, 자신에 대해 얼마만큼을 언제 알리지를 결정하는 경험을 통해 자율적인 삶을 일구고 연습할 수 있다. 교육과 지도라는 이름으로 가장 힘없는 자의 ‘오두막’을 함부로 밟고 들어가서는 안 된다.


학생인권 마술피리 여덟 번째 소절 : 프라이버시가 존중되는 학교

○ 사회의 변화에 따라 사생활의 의미가 다변화됨을 고려하여 학생의 프라이버시는 폭넓게 해석, 보장되어야 한다.
○ 공개를 목적으로 쓰이지 않은 학생의 사적 기록물은 보호되어야 한다. 사적 기록물에는 일기, 편지, 쪽지, 다이어리, 문자메시지, 사진 등이 포함된다.
○ 학생은 개인 물품을 소지하고 자기만의 공간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개인 소지품이나 사적 공간에 대한 검사를 할 때에는 증거물 또는 위험물품을 찾게 되리라는 합리적 이유가 있는 학생에 한해, 필요최소한의 범위 안에서 행해야 한다.
○ 학교는 타인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위협 등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어떤 물품을 특정하여 소지를 금하는 규정을 둘 수 없다.
○ 학교는 학생의 개인정보를 수집할 때 반드시 필요가 있는 정보인지 여부를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학생의 종교나 병력, 친구관계, 생체정보, 보호자의 주민번호 등 교육적 필요성이 입증되기 힘든 민감한 정보는 일괄 수집되어서는 안 된다.
○ 학교는 학생 개인정보가 외부에 유출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학교 구성원에 대한 공지, 인터넷 게시, 외부 기관의 정보 요청, 외부 연구․조사기관의 요청 등에 있어서도 당사자 동의는 필수적이다.
○ 감시카메라(CCTV), 등하교 알림 장치 등 학생의 사생활을 제한하는 효과를 지닌 장비를 도입할 때에는 정당한 설치 이유를 밝히고 학생에게 미리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몰래 촬영이나 녹음은 허용될 수 없다.
○ 학생은 자기 의사에 따라 주위 사람들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을 권리가 있다. 누구와 대화를 나누는지, 누구와 친하게 지낼지, 누구를 사랑할지 등은 학생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배경내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의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22 호 [기사입력] 2008년 10월 01일 9:3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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