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글와글 깔깔] KTX 귀향길

서울지방노동청, 눈 가리고 귀 막고

일침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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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노동청(아래 서울지노)은 KTX 승무원 불법파견과 관련 ‘불법파견이 아니다’라는 재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서울지노는 △열차팀장은 안전업무와 운전업무, 여승무원은 승객서비스 업무를 주된 업무로 하고 있어 차이가 존재하는 점 △유통이 여승무원 병가·휴가 승인 등 근태관리를 직접 담당하고 있는 점 △공사의 ‘열차운용계획표’에 따르기는 하나, 유통이 직접 승무원 교번표를 편성하고 이 교번표의 순서에 의거하여 여승무원을 배치하고 있는 점 따위를 들어 ‘도급계약의 한계를 일탈했다고 볼 수 없다’는 다소 추리소설 같기도 하고 SF소설 같기도 하면서, 연애소설인가 싶다가도 풍자소설을 한번 떠올려보게 하는, 어쨌거나 저쨌거나 소설의 허구성으로 가득 찬 포스트모던하고 아방가르드적이며, 전위적인(동어반복이라고? 어쨌거나!) 결론을 내놓았다. 병술년 한가위를 앞둔 2006년 9월 29일의 일이다.

위 사진:사진 속의 열차는 본 기사 속의 열차와 전혀 무관함


서울지노에서 근무하는 구라청(아래 구 씨) 씨는 추석을 맞아 고향으로 향하는 10월 4일 18시 서울발 부산행 KTX 10호차 8A석에 몸을 실었다. 창 측이라 경관이 시원했지만, 거꾸로 가는 역방향석이라 왠지 찝찝했다. 좀 있으니, 옆자리에 짙은 회색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중년의 남자가 와서 털썩 앉는다. “에이, 역방향이 뭐꼬! 내를 뭘로 보고…” 중년 사내의 투덜거림이 귀에 거슬린 구 씨는 중년 사내를 슬쩍 흘기다가 그만 눈을 딱 마주치고 말았다.

“선생은 어디까지 가능교?”
중년 사내의 느닷없는 관심에 구 씨는 귀향길이 피곤할 것 같다는 직감을 느끼며,
“예? 아…저는…부산까지…”
“아이고, 반갑구로, 동향이네! 나는 철도공사 임원이어서 공짜로 탔소!”
‘그러세요? 저는 대통령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보톡스도 안 맞고 쌍꺼풀 수술도 안한 관계로 그냥, 솔직히,
“흠...저는 공무원입니다. 참고로, 역방향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어데서 일하능교?”
“서울지방노동청입니다.”
“하이고, 이거 반갑네. 좌우지간 고맙습니다. 이번에 노동청에서 승무원들 문제, 파견이 아니라 도급으로 판정해줘서 한숨 돌렸소.”
‘그래도 예의를 영 모르는 사람은 아니네...’ 중년 사내에 대한 얄미운 마음이 순식간에 싸악 가셨다.
“뭘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건데요 뭘…흐흐”
“무슨 그런 겸손의 말씀을! 그 복잡한 문제를 아주 화끈하게 해결했드마는! 결정문이 예술이던데. 아~ 뭐라고 했더라?”
“‘공사와 유통간 체결·시행한 승객서비스에 관한 위탁계약의 본질적 부분이 도급계약으로서의 한계를 일탈했다고 볼 수 없어 공사와 유통이 파견법을 위반하였다고 볼 수 없다’ 흐흐... 바로 제가 썼습니다. 개인적으로 ‘한계를 일탈했다고 볼 수 없다’라는 부분이 제일 맘에 드는데요.”
“맞아요, 맞아. 헐헐... 저는 그 결정문을 보고 무릎을 탁 쳤지요. ‘캬~ 이런 문장은 노벨상 안 주나?’ 생각했다는 거 아입니꺼. 하하하... 가만 있자, 뭐라도 대접을…계란 드실랑교?”

위 사진:사진 속의 인물은 본 기사 속의 인물과 전혀 무관함


‘열차에서 삶은 계란이라…’ 구 씨는 야릇한 감상에 젖어 정성스럽게 계란을 깠다.
“사실 승무원들이 공사로부터 지휘·감독을 받는다고 보기는 힘들죠. 공사 직원인 열차팀장은 어디까지나 안전 업무, 승무원은 고객서비스 업무 아닙니까? 완전히 분리된 일이지요.”
“그라믄요, 그라믄요, 헐헐헐”
“근데, 좀 천천히 드시지요. 참, 잘 드시네…”
“내가 삶았지만, 계란이 참 잘 삶겼...쾍..쾍..” 중년 사내의 목이 막히는가 싶더니 얼굴이 점점 푸른빛을 띄어가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아이고...큰일났네!!” 당황해 두리번거리던 구 씨의 눈에 제복을 입은 열차팀장이 들어왔다.
“저기요! 여기!! 여기!!” 달려온 열차팀장도 그의 시뻘건 얼굴을 보고 당황하더니 재빨리 무전기를 빼들었다.
“10호차 8B석에 응급환자 발생. 가까운 곳에 있는 승무원은 급히 현장으로 오시오.”
“승무원 김송희입니다. 9호차에 있습니다. 지금 이동 중입니다.”
무전을 받고 달려온 승무원이 그 철도공사임원을 일으켜 세운 후 등 뒤에 서서 팔로 허리를 감싼 후, 주먹의 엄지손가락 부분으로 복부를 강하게 누르며 위로 밀어올리자 그 철도공사임원의 입에서 계란 반 토막이 툭 튀어 나왔다.
“괜찮으세요? 승객의 안전을 위해서 배웠던 하임리히요법입니다. 음식물로 기도가 막혔을 때 사용하는 응급구조법이죠.”

구 씨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지금, 열차팀장이 승무원한테 업무 지휘를 한 것으로 봐야 되는 거…아닌가? 하필 내 눈 앞에서 이런 일이……. 일단 노동청 직원이라는 건 무조건 숨겨야 해.’

위험한 순간을 넘긴 철도공사임원은 승무원에게 ‘생명의 은인’이라는 닭살 돋는 말을 연신 침을 튀기며 내뱉었다.
“어라, 근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언제 입사했소?”
“입사 2년 차입니다.”
“아, 그라요? 혹시 나 기억 안나능교? 내가 신입 승무원들 교육한 적이 있는데. 나 철도공사 간부요! 헐헐... 김송희 씨가 신입 업무연수 때 본 교재 있지? 그것도 내가 만들었잖소. 큭큭,, 오늘 좋은 인연을 마이 만나네!”

‘저 사람, 제 정신이야? 아예 KTX 승무원은 불법파견이라고 TV광고를 해라’ 구 씨는 순식간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열차팀장은 철도공사 간부라는 말에, 옷매무새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는 한 마디 거들었다.
“김송희 씨 수고했어요. 공사의 교육이 빛을 발하는군요. 하지만, 나의 신속한 지휘가 없었다면 큰일 날 뻔했어요. 허허. 참, 9호차 문 개폐 상태 확인했어요? 어제 손 좀 봤다는데, 정지 상태에서 점검한 거라 운행 중에는 어떨지 모르겠군.” 열차팀장은 구 씨의 속 타는 마음도 모른 채 누가 들어도 업무지시가 분명한 말을 주책맞게 늘어놓고는 멀어져갔다.

계란에 목이 막혀 죽을 뻔한 철도공사 임원이란 사내는 한바탕 시끄럽게 떠들고 나더니 병든 닭 마냥 이내 곯아 떨어졌다.
“꾸륵꾸륵...” 구 씨는 배가 살살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계란이 상했었나?’ 짜증이 확 밀려왔다. 구 씨는 이젠 팔자 좋게 코까지 고는 중년 사내를 흘겨보고는 아픈 배를 쥐고 화장실에 갔다. 10호차와 9호차 사이에는 화장실이 없어 엉덩이에 기술적으로 힘을 주며 9호차 객실을 지나 9호차와 8호차 사이에 있는 화장실로 향했다. 9호차 자동문 레버를 오른쪽으로 잡아당겼다. 쉭~ 자동문은 구씨의 행선지를 알고 있다는 듯 참았다 뀌는 방귀소리를 내며 스르륵 열렸다. 구씨가 문을 유유히 통과하는 순간. 갑자기 문이 무서운 속도로 닫혔다. “악~~!!!”
왼쪽 다리에 묵직한 통증이 밀려왔다. 다리가 꼼짝없이 문 사이에 낀 것이다. 구 씨의 비명에 놀라 달려온 9호차 승객들이 레버를 다시 잡아당겨 보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웅성웅성… 다리의 통증도 통증이지만, 뱃속에서는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는 듯해 할 수만 있다면 엉덩이만 떼어내 저기 화장실로 던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구 씨는 한쪽 다리가 낀 채로 어정쩡하게 서서 자신을 안타깝게 쳐다보는 사람들을 향해 억지웃음을 날렸다. 저 쪽에서 아까 그 열차팀장이 허겁지겁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손님, 괜찮으세요? 이거 정말 죄송합니다.”
“빨리 문부터 열고 얘기합시다.”
“김송희 씨 빨리 열어요.” 돌아보니 맞은편 복도에 아까 그 승무원이 숨을 몰아쉬며, 뭔가 장치를 만지더니, 레버를 잡아당기자 문이 덜컹 열렸다. 구 씨는 순간 중심을 잃고 그만 앞으로 고꾸라졌다.
“손님, 다리 괜찮습니까?” 열차팀장은 오줌 마려운 아이 마냥 어쩔 줄 몰라 하며 구 씨의 안색을 살폈다.
“당신 같으면 괜찮겠소? 엉? 일단 좀 기다리쇼.”라는 말을 남기며 화장실을 향해 뛰어 들었지만, 화장실 문에 “사용중”이라는 불이 구씨의 얼굴 빛 마냥 붉게 빛나고 있었다. 순간 역방향석이며, 철도청 간부의 거들먹거림이며, 계란이며 열차에 타고부터 지금까지의 사건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짜증이 치밀어 얼굴이 화끈거리고 이마에 핏줄이 당긴다. “도대체 안전 관리를 우째 하능교? 엉? 머리 끼었으면 우짤 뻔 했소?” 구 씨는 웬만해선 안 쓰는 지방어를 섞어가며 불같이 화를 토했으나, 두 손으로 엉덩이 가운데를 누르고 있는 바람에 영문을 모르는 객실 안 사람들은 열중쉬어 자세로 항의를 하는 듯한 그가 마치 엄격한 군인이거나 혹은 참 점잖은 사람일 것이라고까지 생각했다.
“손님, 정말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열차팀장은 연신 허리를 굽히며 사과를 한 후 승무원을 8호차와 7호차 복도까지 데려갔다.

“김송희 씨, 아까 9호차 문 개폐 확인하라고 했잖아요!”
“…”
“일 그렇게 성의 없이 할거요? 지시사항이 있으면 이행을 해야지? 여기는 시속 300Km로 달리는 고속철도 안이에요. 우리의 조그마한 실수도 승객의 안전이 위험할 수가 있다구. 김송희 씨는 앞으로 특히 지켜볼테니 똑바로 하세요.”
긴장하며 9호차 출입문을 한 번 더 확인하러 가는 김송희 승무원에게 열차팀장이 한마디 더 던졌다.
“참, 추석 임시열차 추가 증편 때문에 부산역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서울행 37열차에 승무하라는 지시가 조금 전 공사에서 왔어요. 그러니 김송희 씨에게도 유통에서 바로 연락이 올거예요. 김송희 씨도 소속은 유통이지만, 실질적으로 공사의 ‘열차운용계획’에 따라 일해야 하니까.”

화장실을 찾아 엉덩이를 쥐고 엉거주춤 그들을 뒤따라 온 구 씨는 이 모든 이야기를 본의 아니게 ‘들어버렸다’. 그는 질끈 눈을 감았다. ‘난 아무것도 안 봤어, 아무것도 못 들었어!!!’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아니꼬운 세상에, 일침회]는 재치있는 풍자와 익살스런 해학 담긴 수다로,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아니꼬운 세상에 일침을 가하고 싶어하는 이들의 모임입니다.
인권오름 제 24 호 [기사입력] 2006년 10월 11일 1:4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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