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을 침해받은 사람이나 그룹이 그/녀들의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 펼치는 광범위한 운동을 가리켜 당사자 운동이라고 부른다. 당사자 운동에 대해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는 않지만, 현실에서 미묘한 고민의 지점을 제공한다. 가령, 비당사자를 운동에 개입할 수 없도록 하는 상황이나, 당사자의 정체성으로 인한 인권침해를 보편적인 의제로 설정하지 못했을 때 집단이기주의로 매도되기도 한다. 또 다른 한편, 한국사회는 여전히 당사자들을 ‘인권침해자’가 아닌 ‘무능력자’ 혹은 ‘낙오자’로 규정한다. 낙인을 넘어서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하고, 운동사회 내에서도 당사자의 경험을 운동 전략 속에 녹이는 고민이 필요하다. 빈곤, 장애, 평화와 관련해 활동하는 당사자/비당사자와 함께 각 운동의 경험을 나누어 보았다.



1. 말문을 열며 : 나의 당사자성은 무엇?

(은아) 저는 여성이고, 여기 계신 분들보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아요. 왼손잡이에 비장애인이면서 장애를 가진 엄마와 함께 살고 있어요.

(형수) 저는 남성인데요. 제가 장애인이라는 숨길 수 없는 정체성을 갖고 있죠.

(여름) 제가 사회에서 차별을 받았던 경험은 아마 여성이기 때문에 느낀 것 같아요. 또 대추리지킴이로서 주민이라는 당사자성도 있죠. 살면서 국가폭력의 실체를 몸으로 뼈저리게 느꼈으니까.

(은숙) 저는 여성이고, 노숙하시는 분들을 지원하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매일 공권력과 싸우면서 분노를 느끼는 당사자성이 있어요.

(은아) 당사자성이라는 것이 태어나면서 주어지는 것도 있고, 환경적인 요소도 있고, 자기가 선택하는 것도 있겠죠. 그런 의미에서 당사자성은 변화하고 이동하는 성격이 있네요.

2. 당사자, 당사자성이란?

(은아) 지금 사회에서 당사자성은 동전의 양면 같아요. 당사자를 두고 어떤 사람은 ‘무능력자, 낙오자, 이기주의자’로 부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인권침해자, 희생자, 문제제기자’로 규정하기도 하죠. 엄청난 ‘호명’의 차이를 느끼죠.

(여름) 평택의 경우 당사자 문제가 “미군기지 확장 지역 예정지역의 주민이냐? 외부 세력이냐?”로 나뉘죠. 특히 외부세력은 언론에 의해 ‘주민들을 이용해서 미군기지철수와 반미운동을 하려는 질 나쁜 사람들’로 통하고 있죠. 평화바람은 그 경계에 있어요. 마을에 들어간 지는 2년이 넘었는데, 처음 이 싸움을 시작할 때부터 주민들과 함께 했지만, 그렇더라도 어쩔 수 없이 바깥에서 들어온 ‘외부세력’이기도 하거든요.

(은숙) 노숙운동에 노숙 당사자는 별로 없어요. 당사자모임이 결성되어 있지만 주체적으로 자주적인 결합을 못하고 있는, 아직 걸음마단계예요.

(형수) 장애인운동에는 장애인, 비장애인이 함께 있어요. 당사자를 구분하기란 어려워요. 하지만 비장애인은 장애인 당사자가 아니라고 규정되죠. 특히 장애인운동은 장애인이라는 실체가 늘 호흡을 하고 있기 때문에, 늘 부딪쳐야 합니다. 오랫동안 자기 결정권이 억눌려왔던 장애인들에게 당사자성이 강조되면서 그들의 의견이 중요시되지만, 사실 당사자성은 운동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거든요. 한 쪽에서는 “장애인만이 운동의 당사자이고, 비장애인은 연대하는 수준이다”라고 하죠. 저는 장애인운동의 당사자는 장애인운동에 공감하는 모든 사람이라고 여기지만 현 상황에서는 큰 공감을 얻고 있지 못해요.
사실 당사자인 저도 장애인 운동의 당사자를 물으면 대답하기가 어려워요. 과거 전문가나 비장애인이 정책을 만들고 운동해왔기 때문에, 지금은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를 크게 내야한다고 주장하는 편이죠. 제가 걱정하는 것은 그것이 옳은 방향이라 하더라도 상처받는 비장애인이 굉장히 많다는 거죠. 그런 이유로 운동을 떠나는 사람을 많이 보아왔어요.

3. 당사자성에 주목하는 이유

(은아) 인권운동 하면서 기자회견이나 실태조사 등 당사자를 대리하는듯한 운동의 한계를 느껴요. 활동가 이외에 운동의 주체가 없는 거죠. 대안을 이야기할 때, 그것이 누구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져야 하는가 고민을 하면 결국은 누구와 연대할 것이냐의 문제로 남는 거죠. 빈곤당사자와 연대하고, 미군기지에 반대하면서 농사짓는 주민 당사자와 연대하는 활동을 하면서 인권운동은 ‘그 무엇’을 본 것 같아요. 항상 몸으로 싸우는 당사자가 있는 운동의 존재감은 크게 다가왔어요. 인권침해 당사자는 없고, 당사자와 함께 하지 못하는 인권운동에 대한 반성에서 당사자 운동을 주목하는 것이죠.

(여름) 기지가 이전하다는 얘기는 2003년부터 불거지기 시작해서 그해 여름부터 주민대책위를 꾸려서 활동했어요. 주민의 입장에서는 집과 땅을 빼앗기는 상황에서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죠. 주민들이 직접 피해를 받고 있는 것이 드러나면서 기지반대 싸움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죠. 주민들이 직접 싸우게 된 것이 우리 운동의 성과이죠.

4. 그러나 현실에서

(은아) 머리로는 소위 ‘당사자’와 활동가들이 같이 가야한다고 여기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이상과 현실이 부딪치기도 해요.

(여름) 주민들이 요구하는 것과 활동가들이 제시하는 대안이 다를 때 딜레마에 빠져요. 주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삶과 고향 터전을 잃지 않는 것과 경제적인 문제죠. 그렇다고 미군기지를 반대하지 않는 것은 아닌데……. 최근 대추리 주민 생계지원을 위한 물품판매 사업을 하고 있는데, 간혹 운동단체에서 ‘대추리 주민이 보상협상 들어간 마당에, 우리(운동단체)가 경제적인 지원을 뭐하러 더 해줘야 하냐?’라는 말을 들었어요. 주민들이 이주협상에 들어갔다고 해서 미군기지 반대한다는 입장을 포기한 건 아니거든요. 마음이 아프고 막막하고, 운동진영이 이래선 안되는데…여겨졌어요. 4년 동안 같이 싸웠잖아요. 생계를 같이 책임져야 되는데. 주민들이 내린 결정과 운동진영이 생각하는 방향이 엇갈린 상황인거죠.

(은아) 운동의 추상적인 대의 속에서 당사자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사례네요.

(은숙) 당사자모임 활동가들과 저희들도 차이가 있죠. 일방적인 계몽이나 강요, 재촉하면 안 되고 그들에 대한 지지를 중심으로 잡고 일관되게 하려고 저희 스스로 마음을 잡아가지만, 현실에서는 충돌이 있을 때도 있죠. 가령 저희는 일방적으로 노숙인들에게 물질적인 지원을 하는 것은 지양하는 편인데 당사자 분들은 그런 것을 나눠주자고 해요. 이런 상황을 잘 넘겨야 하는데, 저희들이 일방적으로 설득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노력은 하지만 그 상황에 부딪히면 견제가 안 되는 것 같아요. 활동가들이 중심을 잡을 필요가 있죠. 어떨 땐 당사자들의 삶에 밀착하지 않은 채, 큰 틀에서의 정치적 지향만을 이야기하고 싶을 때도 있어요.

(여름) 최근 인권단체들이 작년까지 먼저 대추리를 떠난 주민들에 대한 생계 및 직업 안정성에 대한 실태조사를 기획한 적이 있어요. 먼저 떠난 사람들의 현재는 남아계신 분들의 미래이거든요. 정부의 보상 내역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형식적인지를 드러내기 위해 기획했던 건데, 지금 남아계신 주민 몇 분이 “나간 사람을 뭘 조사해!” 하시면서 실태조사에 반대하시더라구요. 협상 안하고 남아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나를 배신하고 먼저 나간 사람들이라는 분위기가 있어서 험악해요. 먼저 저는 주민이자 활동가이잖아요. 저희가 보기에는 두 분 모두 국가폭력의 피해자인데, 그럼에도 감정적으로 간극이 있어서 쉽지 않아요.

좀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최근 남아있는 주민들의 이주협상 관련해서 많은 운동진영이 회의적이에요. 주민들이 마을을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간다고 했을 때에는 사실 운동에 대한 배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주민들을 뭐하러 도와주냐, 이런 게 있거든요. 갈등이 되죠. 운동에 있어서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투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관한 문제죠. 주민이 시혜나 도움의 대상이 아니잖아요.

사실 평택 문제는 모든 사람이 당사자일 수 있어요. 1차 당사자는 물론 주민이지만, 기지가 건설된 이후 건설된 기지가 하는 역할을 보면 한반도에 사는 사람은 침략전쟁의 당사자가 되지요. 주민을 도와준다고 했을 때 안 도와주면 끝이지만, 같이 한다고 했을 때 주민들이 비록 지금은 물러섰지만 같이 싸워야 한다고 했을 때, 그건 내 문제이거든요. 그래서 주민들이 정리했다고 해서 운동진영까지 끝났다고 생각하면 안되죠.

(형수) 연세대에서 특수학교 학부모들과 함께 천막농성을 했어요. 싸우고 나서 문제가 잘 해결되었을 때 좀 쉬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어머니들이 나서서 저희들을 야단치시는 거예요. 운동이라는 것을 이제 막 보기 시작하면서 권리에 대한 욕구들이 터져 나오는 거지요. 그리고 엄마들끼리 싸우면서, 천막에 온 사람과 안온 사람, 열심히 한 사람과 덜 한 사람을 나누어 다투시는 거예요. 또 다른 사례는 투쟁의 과정에서 당장 본관 점거가 필요하다고 활동가로서 판단이 들지만 어머니 당사자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그럴 땐 당사자들이 하자는 대로 하기는 해요. 겪고 나면 변화가 생기고 전략에 대해서도 이해하시게 되요.

(여름) 어느 날 마을 총회를 하는데 “지킴이는 들어오지 말라”는 거예요. 2년 동안 같이 살았는데. 그때 한창 언론에서 주민 아닌 사람들의 개입에 대한 비난이 심했거든요. 이주 결정과 같은 주민들이 결정하는 사안에 대해 저희가 사실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요.

(형수) 그럴 때 너무 외로워요.

(여름) 주민들이 회의해서 결정하는 것을 보았는데 ‘이게 지금 우리 수준에서 조직의 상황이고 우리의 민주주의구나’ 이렇게 인정하는 게 가장 편해요. 주민들의 독자성을 인정해야 해요. 이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하죠.

(은숙) 예전에 영화 을 보았어요. 노숙당사자가 철거직전의 3.1아파트를 점거해 살았거든요. 집이 없는 노숙당사자가 주거권을 주장하기 위해 빈집을 점거했는데 “야~ 이거 대단하다” 그러면서 언론에 많이 보도되었어요. 영화 은 이걸 다룬 것이거든요. 영화를 보면서 당사자가 들러리나 꼭두각시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조직화 과정에서 조직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과정에서 그 분들에게 당신이 받고 있는 인권침해를 알리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직접행동으로 나오게끔 해야죠.

(여름) 주민들을 앞세워서 투쟁한다고 사실 욕도 먹었어요. 이주 결정 이후 주민 한 분이 “정말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그렇지만 너희들, 우리 앞세워서 그렇게 하지 말아라” 그런 말도 들었어요. “너네가 너희 투쟁, 즉 시민사회단체가 기지를 막아내기 위해 너네가 활동할 수 있는 것이 뭔지를 정확하게 세워서 가야한다”고 주민이 얘기했어요. 한편으로는 주민 싸움이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단체들이나 활동가들이 자기 계획들이 있어야 하죠. 그렇지 않으면 주민들을 왜 볼모로 잡느냐라는 문제제기가 생기거든요. 핵심은 우리가 이 사안을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고 같이 싸울 계획이 있느냐는 것이죠. 언제나 주민들을 바라볼 수는 없잖아요. 주민들이 항상 옳은 것도 아니고, 힘든 상황에서 후퇴할 수도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방향을 견제하기 위해서 우리가 투쟁을 하는 거죠. 누구의 몫으로 남길 수 있는 것은 아니죠.

5. 당사자 운동의 폭발

(은아) 당사자운동이 폭발적인 힘을 갖는 계기가 있잖아요. 그 때 당사자들이 운동의 주체가 되고, 연대도 잘 되며, 운동이 사회적으로 확장되는 것 같아요.

(여름) “범대위가 주민을 꼬셨다” 이런 얘기하잖아요. 그런데 사실이 아니에요. 주민들이 2003년 7월 주민대책위를 결성했고, 범국민대책위는 2004년 2월에 결성했어요. 전략적 유연성으로 한반도가 침략기지가 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소수만 알고 있다가 이때 주민들이 나서게 되면서 전면에 부각이 된 거예요. 범국민대책위가 결성되고 시민사회가 붙기 시작한 거죠. 주민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죠. 또 이 문제를 반미뿐만이 아닌 평화와 생명으로 확장된 거죠. 막연히 전쟁이 일어난다는 문제가 아니라 자기가 일구었던 땅과 고향을 빼앗기는 등 주민들의 피해가 구체화하니까 그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죠.

(형수) 장애인이동권문제가 언론에 알려지기는 했지만 “버스와 지하철을 막아야겠다”며 나의 권리로 인식되어 당사자에 의해 폭발적으로 일어난 것은 오이도 사건이 큰 계기였어요. 그때 활동가들도 한 편으론 신나하면서도 당황스러웠던 것은 10년 동안 교육했던 재가 장애인을 당시에는 바깥으로 나오게 하는 것이 무척 어려웠는데, 그 사건 이후로 한번 나가보더니 이제는 나가야지 하면서 불붙기 시작해 버스 막고 지하철 막고 감옥 가고……. 활동가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붙기 시작한 거죠. 한편 혼란스럽고 또 다른 한편 에너지는 분출되는데, 이 에너지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이에요.

(은숙) 노숙 당사자 모임이 결성된 것이 2004년이에요. 노숙인에 대한 철도공안들의 폭력이나 가혹행위가 일상적이잖아요. (이에 대한 저항으로) 그때 그 곳을 지나시는 분들이 동의를 해서 장기간 천막농성을 했어요. 그때 적극적으로 노숙당사자분들이 결합을 했거든요. 당사자 문제에 당사자가 관심을 갖고 직접 행동하는 것이 처음이면서 당사자 모임이 결성이 되었는데 올해로 만 3년이 됩니다. 사람들은 당사자 아저씨들에게 기대를 많이 하는데 사람의 변화라는 것이 더디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당사자의 더딘 변화에 대해 고려를 하지 않아요. 이 분들도 갑작스럽게 역할이 주어졌고, 그 역할에 충실하게 하기 위한 방법은 잘 모르는데, 사람들은 너무 기대하고 그래서 많이 힘들어하세요.

6. 소통이란 호기심어린 용기들의 연대

(형수) 우리가 성차별 문제로 논쟁할 때 막판에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나오는 얘기가 있잖아요. “너 군대 가봤어?” “너 애기 낳아봤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논쟁할 때도 막판에 “비장애인이 장애인에 대해 뭘 알아?” 그러면 비장애인은 그 순간 할 말을 잃어버리게 되죠. 그게 장애인의 최대무기예요.

(은아) 당사자성을 무기화한다든가 당사자성을 배타적인 방식으로 풀어가면 힘들죠. 어떻게 연대해야할까요?

(형수) 경험하고 참여하는 것 외에는 없어요. 제가 장애인단체에 있어서, 평화운동에 별 연관이 없는 것 같지만 “평택에서 뭔가 같이 할 것이 있을 거야”라는 마음으로 가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보는 호기심어린 용기들이 연대할 수 있는 힘인 것 같아요.

(은숙) 의료급여 개악공대위 회의에 가면, 실제로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를 만날 수 있는 단체가 거의 없고, 활동을 하면서도 막상 수급권자를 만날 수 없었어요. 당사자가 있는 현장에 밀착하고 정책이 결합하는 균형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여름) 당사자를 지도하는 위치도 아니고 볼모로 잡는 것도 아니고 동등한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가 부족하더라도, 수준 차이가 있을 수 있는 것도 인정하면서 해결방안을 모색해야죠. 평택의 문제가 주민만의 것이 아니라 확장해서 바라 봐야하는데, 결국 함께 하는 것 말고는 없는 것 같아요. 기지를 막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이주해서 빈곤해질 상황까지 함께 해결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