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보자 폴짝] 기본적 생활은 누구에게나 ‘기본’이에요

중증장애인의 입장이 되어본다면?

고근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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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들은 ‘활동보조인’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나요? ‘활동보조인’은 장애로 인해 혼자서 식사, 용변, 목욕, 외출, 출퇴근, 등하교 등을 하기 힘든 중증장애인들의 생활을 보조하는 사람을 말해요. 아하~ 이제 알겠다고요? 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정부가 장애인의 생활을 보조할 수 있도록 활동보조인을 두어 왔다고 해요. 중증장애인들은 혼자서는 생활에 필요한 활동을 거의 하기 힘들기 때문에, 기본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서라도 활동을 보조해줄만한 사람이 반드시 필요해요. 그러한 이유로 중증장애인들이 활동보조인을 둘 수 있도록 정부에서 지원하는 ‘활동보조인 제도’는 장애인들의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제도이지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5월에야 비로소 장애인을 지원하는 활동보조인을 두게 됐어요. 그렇다면 이제 중증장애인들도 친구를 만나러 외출을 하거나, 학교에 가거나, 물건을 사러 갈 수 있게 된 것일까요?

위 사진:활동보조인이 장애 어린이의 생활을 보조하고 있어요. 활동보조인의 도움으로 장애 어린이는 먹고싶을 때 먹을 수 있고, 화장실에도 갈 수 있을 거예요. <출처; www.sheffieldchildrenfirst.org.uk>

슈퍼맨 놀이?

오늘은 목욕도 하고, 낮에 시장에 가서 물건도 사야하고, 동사무소하고 은행에도 들러야 한다. 그리고 친구 영철이도 만나야 한다. 마치 슈퍼맨처럼 돌아다녀야 하는 날이다. 최대한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어젯밤부터 머릿속으로 어딜 먼저 갈지, 무엇을 먼저 할지 계속 생각 중이다. 나는 뇌성마비 1급 장애를 가지고 있고, 혼자서는 활동할 수 없다. 정부에서 나의 활동을 보조하고 도와주는 사람을 지원하기 시작했는데, 그 사람의 보조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이번 달에 고작 3시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내가 활동보조인이 필요하다고 인정했지만, 겨우 한 달에 20시간만 지원해 준다고 결정했다. 활동보조인의 지원을 받으며 친구를 만나 마음 놓고 놀거나 영화를 보거나, 놀이공원에 갈 생각은 꿈에도 할 수 없다. 목욕 한 번만 해도 20시간 중 5시간이나 쓰게 되니까…….

뇌성마비 장애를 가지고 있는 동철 아저씨의 이야기에요. 다른 사람의 보조 없이 몸을 움직이기 어려운 동철 아저씨는, 정부가 활동보조인을 지원하는 제도가 생겼어도 영화를 보러 밖에 나오는 것도, 친구를 만나러 친구 집에 가는 것도 여전히 힘들어요. 하루만 집에 꼼짝 않고 있어도 밖에 나가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한데, 매일 매일 집에만 있어야 한다면 정말 답답하겠지요? 그리고 식사나 용변 같이 꼭 필요한 활동을 하기 위해 활동보조인의 보조를 받는 시간마저 제한을 받는다면 어떻게 살 수 있을까요?

인간다운 삶, 더 기다려야 하나요?

매일 밥을 먹고, 세수를 하고, 용변을 보는 일이 힘들고 어려워서 참아야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밥을 먹는데 혼자서는 먹을 수가 없어서 참았다가 한 번만 먹고, 더운 여름에 목욕을 하고 싶어도 혼자 할 수 없어서 1주일에 한 번만 하는 것으로 참아야 하고, 또 화장실에 빨리 가고 싶은데도 혼자 움직일 수 없어서 참아야 한다면 어떨까요? 매일매일 너무 힘든 하루겠지요. 또 위급한 상황에 놓여도 스스로 움직일 수 없어서 큰 위험에 닥치는 경우도 있어요. 추운 겨울 보일러관이 터져 방 안이 냉장고같이 추운데도 혼자라서 움직일 수 없다면, 가스가 새어나와서 위험한 상황인데도 혼자라서 움직일 수 없다면 어떨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에요.

하지만 실제로 겨울에 보일러관이 터져 얼었을 때 목숨을 잃은 중증장애인이 있답니다. 또 하루하루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중증장애인도 있어요.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 당연히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들이라서 생각해본 적이 없는 법 먹기, 용변보기, 목욕하기 등과 같은 일상을 혼자서 해내는 것이 힘들고 가족에겐 더 이상 맡기고 싶지 않아서 목숨을 끊기도 해요.

‘목욕하기’와 ‘외출하기’ 같은 기본적 생활이 중증장애인 혼자만의 어려움 혹은 가족의 고민이나 책임이 되어서는 안돼요. 그리고 그 때문에 중증장애인이 위험에 빠지게 되어도 안돼요. 기본적인 생활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중증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당연히 누려야하는 것이니까요.

위 사진:활동보조인의 도움은 장애인들이 생활하는 데 꼭 필요하기 때문에 정부에서 나서서 지원할 것을 장애인들 스스로가 요구하고 있어요. <출처; 장애인문화공간>

턱없이 부족한 활동보조시간

장애인들의 인권을 위해 운동하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최근에 정부가 시작하게 된 활동보조인제도는 중증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리라 중증장애인들 자신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모았어요. 하지만 실망스러운 일이 벌어졌어요. 대부분의 중증장애인들이 동철 아저씨처럼 턱없이 부족한 활동보조 시간을 정부로부터 지원받도록 결정되었거든요. 심지어 동철 아저씨 친구인 규식 아저씨는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인데도 활동보조인의 생활 보조를 한 시간도 받을 수 없다고 정부는 결정했대요. 그래서 규식 아저씨가 활동보조를 받으려면 돈을 내야 해요. 아주 기본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서 활동 보조를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인데, 그런 기본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 돈을 내야 한다니,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노릇이지요. 특히나 중증장애인들 중에는 직업을 갖기 힘들어서 돈을 벌 수 없는 중증장애인들이 많은데, 활동 보조를 받기 위해 돈을 내야한다면 목욕이나, 외출 같은 일상적인 일 역시 여전히 어려운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에요. 그 뿐 아니라 가족이 장애에 대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으로 어린이 청소년 중증장애인의 경우에는 훨씬 적은 시간밖에 지원되지 않아요. 그나마 학교에 통학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에요. 하지만 다른 동무들처럼, 장애 어린이·청소년도 친구도 만나고 운동도 하고 싶을 거예요. 또 병원에도 가야 하지요. 그런데 가족이 바빠서 함께 갈 수 없다면? 생각만으로도 너무 답답하고 안타까운 상황이에요. 장애는 가족의 책임이 아니라, 장애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회의 책임일텐데 말이지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네요.

중증장애인도 먹고 싶을 때 먹고, 가고 싶은 곳에 가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어야 해요. 인간적인 삶을 살기 위해 기본적으로 생활에 필요한 활동은 하면서 살아야지요. 그런데 그런 시간을 한 달에 몇 시간 이내로 제한한다고요? 아니, 돈 있는 장애인만 돈을 내고 활동 보조를 받을 수 있도록 알아서 하라고요? 정부에서 장애인 정책을 짜는 사람들이 중증장애인의 입장에서 하루 생활만 생각해보면 무엇이 필요한지, 얼마나 필요한지 알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인권오름 제 58 호 [기사입력] 2007년 06월 12일 22: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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